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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선물

기사승인 2018.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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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수 씨는 한 해 동안 가장 즐거웠던 일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뜻 밖에 내가 와서 책 읽어주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일요일 오전에는 술미공소에서 주일예절을 마치고 호스피스병원에 간다. 이 병원에 잠시 근무하면서 길수 씨(가명)를 알게 된 것이 2년이 되어간다. 찾아오는 사람이 전혀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 말기환자에게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 것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였다. 오랫동안 사회에서 몹쓸 병으로 낙인찍히고 한 번 걸리면 죽는다는 병을 앓으면서 질병의 고통도 있겠지만 고독의 고통이 더 심했을 것이다.

 의사로서 해줄 것이 별로 없었다. 3개월에 한 번씩 기독병원에 가서 검사하고 관리를 받고 있으니 이곳에서는 욕창 치료해주는 것 외에는 주로 일반적인 요양케어를 해주는 것이 다였다. 이분의 외로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은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회진 중 하루는 혹시 지금 무엇이 제일 필요하냐고 물어보았다. 음악이 듣고 싶다고 하여 풍물시장에서 작은 휴대용 오디오를 사주었다.

 그는 그것을 하루 종일 켜 놓고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젊어서 그는 카페에서 가수였다고 한다.
입원실에 같은 병을 앓는 환자가 3명이 있었는데 한 분 한 분 돌아가시고 지금은 길수 씨 혼자 남아있다. 그래서 외로움은 더욱 심해졌고 곧 나한테도 죽음의 사자가 찾아오겠지 하는 공포감이 얼마나 심할까 생각해 본다. 멀쩡한 우리로서는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가 없다.
 

 병원을 그만두면서 봉사자로서 일요일마다 길수 씨에게 가기 시작했다. 말동무를 하면서 그의 외로움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었다. 먼저 동화책을 읽어주기로 했다. 길지 않고 재밌고 쉬운 책을 구입했다. 나중에는 중천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 그동안 "지하정원" "리디아의 정원"을 읽어드렸고 지금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는다. 나는 동화책 읽어주기를 배운 적도 없고 책 읽는 데는 소질이 없다. 그냥 마음만 가지고 더듬기도 하면서 천천히 읽는다.
 

 길수 씨는 10여 년 전부터 에이즈를 앓아왔고 지금은 팔다리를 전혀 쓸 수가 없는 와상상태의 말기환자이다. 대소변도 전혀 가눌 수가 없고 피부와 뼈만 있는 것 같이 보일 정도로 최악의 마른 상태이다. 비위관으로 음식섭취를 하고 있고 말도 아주 작게 힘겹게 한다. 듣는 것과 보는 것은 비교적 좋은 편이다. 풍전등화라는 말이 이럴 때 쓰일 것 같다. 조금의 감염이나 신체적 스트레스에도 이겨나갈 수가 없는 하루하루가 위험한 순간일 뿐이다.
 

 갈거리사랑촌에 있을 때 기관운영을 하면서 봉사하러 오는 분들이 몹시 부러웠다. 나 자신이 항상 봉사자의 마음자세로 근무를 하면서 복지기관을 공정하게 잘 운영하는 것도 봉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몇 년 전에 갈거리사랑촌을 그만두면서 제일 하고 싶었던 것이 직접 몸으로 하는 작은 봉사였다.
 

 3층 호스피스병동에 들어가 길수 씨 병실 입구에 있는 이름표를 먼저 조마조마하면서 보게 된다. 이름이 있으면 살아 있구나 한숨을 내쉰다. 어느 날 갑자기 돌아가시고 이름이 지워진 경우를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지난 해 말일이 일요일이었다. 오늘이 올해의 마지막 날인데 길수 씨는 한 해 동안 가장 즐거웠던 일이 무엇이냐고 물어봤다. 뜻 밖에 내가 와서 책읽어주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다음은 자신이 지금 숨 쉬고 살아있는 것이라고 한다. 내가 해준 것은 너무 작은데 받는 이에게는 커다란 즐거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큰 선물을 받은 듯 한동안 가슴이 뿌듯했다.

곽병은 갈거리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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