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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바오 효과

기사승인 2018.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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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재생 사업으로 인해 오히려 지역의 정체성, 사람, 역사를 잃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건설로 도시를 재생하는 시대는 끝났다

 

  빌바오 효과라는 게 있다.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에 있는 인구 약 35만의 도시가 빌바오다. 1997년 폐업한 옛 제철소를 리모델링, 구겐하임 미술관을 개관하여 일시에 도시 이미지를 변화시킨 것은 물론 관광객 유치를 통해 도시 재생의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는 도시다. 이렇게 낙후된 공장, 탄광, 발전소 등의 시설들을 문화적으로 재생하여 주변상권을 활성화 시키고 낙후된 도시 이미지를 일시에 바꾼 것을 빌바오 효과라고 부른다.
 

 이후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을 비롯해서 전 세계 도시재생이 필요한 곳에 문화공간을 건축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국내에서도 서울의 (구)당인리 화력발전소, (구)구의 취수장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인천 아트 플랫폼, 전주 팔복예술공장 외에도 부천, 부산 등 전국적으로 점점 확산되고 있다.
 

 이렇게 문화, 예술 공간을 컨셉으로 한 정부, 지자체 도시재생 사업의 사례들이 적지 않게 있지만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시작된 사례는 그 보다 훨씬 앞서 있는데 이 중 젊은 미술가들이 폐 공장 지역에 들어가 창작 공간과 갤러리를 열기 시작해 도시의 변화를 준 북경의 798 예술특구가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겠다.
 

 물론 더 오래 전으로 거슬러 가자면 이미 1960년대 초 파리 외곽의 폐 화학공장에 들어가 공연장과 창작공간을 연 프랑스의 태양극단과 1982년 일본 서부의 시골마을 '도가'에 공연장을 열고 일본 최초의 세계연극제를 개최하고 창작공간을 조성한 도가예술마을은 예술사에 남을 만한 업적이라고 할 것이다. 도가예술마을의 경우 민간의 자발적인 시작 이후 지자체와 정부가 주변에 유스호스텔과 예술공원, 공연장을 순차적으로 조성해 관광객 유치에 성공한 사례이기도 하다.
 

 수십, 수백 년의 도시 역사도 소멸하는데는 몇 년 걸리지 않는다. 상권이 이동하고 인구가 줄고 인구 분포가 고령자 중심으로 변하는 시대에 도시가 사라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도시를 하나의 생명체라고 본다면 도시재생은 죽어가는 몸에 줄기세포라도 이식해 기능을 되찾으려는 절박한 생존 본능이기도 하다.
 

 도시재생이 중요한 화두가 된 지금 혹시 일련의 공공사업들이 원도심의 오랜 정서, 사람, 역사와 충돌해 항원과 항체처럼 반응하지 않을까 염려한다. 당장의 이벤트성 사업이 원도심 또는 낙후된 지역에 피가 흐르게 할 수는 있지만 이 피가 내부로부터 지속적이고 자발적으로 생산될 수 있는지, 순환과정에서 내부 세포들간 층돌은 없는지 충분한 시간과 논의가 필요하다. 이 과정이 더디고 불편하다고 해서 생략한다면 우리는 도시재생 사업으로 인해 오히려 지역의 정체성, 사람, 역사를 잃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대학로 뒤편 낙상공원 일대는 공공미술을 통해 도시재생 사업을 했지만 지금은 관광객들의 소음과 그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 때문에 원주민과 사업 주체인 종로구 사이에 공공미술 작품 훼손으로 인한 소송이 장기화 되고 있다. 부산 감천문화마을 역시 원주민들의 일상을 구경하려는 관광객들로 인해 가난한 삶을 상품화 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창작공간이 필요한 예술가들이 자발적 모이기 시작해 핫 플레이스가 된 서울의 상수동, 연남동, 문래동은 상업자본이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예술가들은 모두 젠트리피케이션의 피해자가 되었다. 세탁소, 철물점, 복덕방, 동네슈퍼가 있던 자리는 모두 카페와 유명 레스토랑이 들어와 원주민들 조차 일상적인 삶을 지속하지 못해 떠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이렇게 변화된 도시재생은 이제 삶은 없고 소비만 남는 공간이 되고 있다.
 

 건설로 도시를 재생하는 시대는 끝났다. 여러 사람이 원탁에 앉아 지역의 기억을 되살리고 도시의 미래를 토론하는 기회를 기대한다. 수십, 수백 년의 도시역사를 다시 살리는데 10년, 20년은 길지 않다.

원영오 극단 노뜰 대표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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