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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공예작가 이재현 씨

기사승인 2018.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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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 온기 실릴 때 더 빛이 나죠"

  한 곳에 머물러 생각할 여유를 주는 작품. 투박하지만 세련되고 비슷해 보이지만 개성이 짙은 작품. 이 모든 것이 수작업의 힘이라고 말하는 목공예 작가 이재현 씨(69세).
 

 "모든 공예의 재료는 기계가 아닌 사람 손과 만날 때 온기가 실려서 더 빛이 나게 되죠. 나무라는 재질은 특히 더 그렇고요. 공예품마저 기계로 뚝딱 자르고 다듬는다면 기성화 된 제품들과 무슨 차이가 있겠어요. 작품이라면 제품과는 달라야죠."
처음부터 끝까지 수작업을 고집하며 프로들에게도 인정받는 실력의 이 씨는 목공예 독학자다. 젊은 시절 회화작가로 활동하던 중 가족과 살 집을 손수 짓고 싶어 서울의 경량목구조학교를 다니며 홀로 목공예를 시작했다.

 그러기를 꼬박 30년.
나무를 자르는 작업부터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모든 과정은 예나 지금이나 그의 손을 거쳐 이루어진다. 작업도구라고는 나무를 자르는 톱과 칼이 전부다. 목공예는 나무 단면의 크기나 질감에 따라 혹은 칼로 깎아낸 방향에 따라 작품의 느낌과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에 기계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주재료인 나무도 집 앞마당에 수십 년 키운 산벗나무를 비롯해 고염나무, 참죽나무를 쓰고, 나무를 절단할 때도 절단기 대신 도끼와 톱으로 자른다. 나무의 질감과 감성을 그대로 살려낼 때 목공예의 가치도 상승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원형 보존을 위해 입히는 칠 역시 사람이 먹어도 해롭지 않을 만한 환경적인 재료를 사용한다. 그래서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데 2~3년이 걸린다.
 

 "나무는 오랜 시간에 걸쳐서 숨을 쉬고 스스로 모양을 만들어가죠. 작가는 그것을 지켜봐주고 기다려줄 수 있어야 합니다. 나무가 이제 칠을 해도 되겠다 할 때 칠을 입히고, 이제 완성되었다 할 때 끝인가 보구나 하죠." 그렇다보니 그의 작품은 마음에 든다고 얼마든지 살 수 있는 작품이 아니다.
 

 서울 토박이인 그가 원주에 정착한 건 1990년. 첫째, 둘째아이가 초등학생, 늦둥이 막내가 백일을 지났을 때다. 낯선 도시에 터를 잡은 그는 먼저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통해 원주를 배우기 시작했고 1996년부터는 생명미술시민작가로 활동하며 원주 곳곳에 벽화를 그렸다.  틈날 때 마다 만든 소품들로 소규모 전시회를 열어 목공예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이때부터였을 거예요. 원래는 가족들과 살 집을 짓고 싶어 귀농한 건데 나무를 알면 알수록 매력이 상당하더라고요. 결국 집 짓는 일은 뒤로 미루고 목공예에 빠지게 됐죠." 목공예 관련서적을 닥치는 대로 섭렵하고 인터넷을 통해 다양한 지식을 쌓았다. 그릇과 접시부터 책상과 의자, 큰 가구까지 만들지 않는 것이 없다.
 

 집 한 켠에 '핸드메이드 나무 공작소'라고 이름 붙인 작업실을 마련해 지역주민들에게 목공예를 가르치고 수시로 간이 전시회를 열었다. "작품에는 만든 사람의 감성과 철학이 그대로 배어 나와야 합니다. 작가의 감성이 얼마나 담겼느냐가 결국 작품의 가치를 결정짓기 때문이죠. 저는 앞으로도 기계로는 표현할 수 없는 수작업 목공예의 힘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수작업을 고집하는 그에게 또 하나의 꿈이 있다. 나무공예의 멋을 젊은 세대에게 알리고 전통을 이어가는 것. 일흔을 앞둔 이재현 작가가 오늘도 힘껏 나무를 패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구 문화에 익숙해진 젊은이들을 위해 우리의 전통을 기초로 하되 서구적인 디자인과 문양도 함께 곁들여낸다. 목공예에 흥미를 느끼게 하고 싶어서다. 그래서 지난 달 처음으로 정식 목공예전시회를 열고 지금은 지역 곳곳의 카페를 순회하며 카페전시회도 진행 중이다. 수작업 목공예의 진면목을 보여줄 생각이다.
 

 "목공예를 비롯해 우리의 문화와 예술에는 아름다움 외에 사람을 위로하는 힘이 있지요. 그 힘을 젊은 세대에게도 알려주고 싶은 게 제 꿈이자 목표입니다." 그는 부와 명성에 얽매이지 않으며 소신대로 창작하고 도전하는 작가, 가치 있는 작품을 위해 곱절의 수고도 마다않는 작가가 꿈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또한 앞으로도 수작업만 고집하는 목공예, 나무에게도 사람에게도 이로운 작품을 만드는 것이 소망이라고…
가족은 부인 용현숙(67) 씨와 2녀1남.
 

남미영 시민기자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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