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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여상(視民如傷)

기사승인 2018.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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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의 흥성은 백성 보기를 상처 돌보듯이 하는데 있으니 이것이 복이 되는 것이고, 나라의 쇠망은 백성을 흙이나 쓰레기처럼 하찮게 여기는데 있으니 이것이 화가 되는 것입니다"

 아직 오월인데 봄비가 장맛비처럼 요란스럽게 내립니다. 모처럼 바깥공기가 좋아 창문을 열어 놓고 밀린 글을 쓰고 있습니다.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면 우선 커튼을 걷고 창너머 치악산이 보이는지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미세먼지가 뿌옇게 끼여서 치악산이 잘 안보이는 날이 많아 출근하는 발걸음이 무거워집니다. 더욱이 요즘은 지방자치 선거철이라 출근길에 미세먼지 마스크도 쓰지 못하고 얼굴 알리기에 바쁜 후보들을 보면 괜스레 차안에서 미안하고 안쓰러운 생각이 듭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중앙정치인 국회의원 선거보다 지방의 방백(方伯)을 선출하는 지방자치 선거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중앙정치는 몇몇 의원들 노력에도 불구하고 양당의 대결적 흐름에서 개별 의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보이지만, 시장 군수 그리고 지역의원들은 정치적 논쟁보다 주민생활 속에서 불편부당한 문제들을 구체적으로 개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팍팍한 서민들의 삶은 중앙정치 무대에서 요란하게 떠드는 정치적 언어보다 디테일한 생활 속의 정책이 개선되어야 편안한 삶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대학에서도 그럴듯한 비전을 제시하며 총장이 폼을 잡고 언론에서 떠드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대학의 가장 기초가 되는 개별 학과에서 교수들이 학생들과 인간적 교류와 세심한 교육으로 제자를 키워나갈 때 그 대학이 발전하는 이치와 매한가지인 것 같습니다. 
 

 2005년 여름, 원주의 여러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원주정책대안포럼을 만들어서 30만명을 넘어서는 원주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립하고 시민들이 참여하는 지방자치를 실현하고자 노력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젊고 의욕이 많은 지역 활동가들을 추천하여 지방선거에 출마를 도왔지만 정당공천제도에 막혀 모두 낙방하는 아픔을 겪으면서 실패를 겪었습니다. 그 이후 지방선거는 인물과 지역정체성을 가진 정책보다 중앙정치의 정당번호에 의해 결정되는 악순환이 거듭 반복되어 왔습니다.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지방정치의 공천제도가 당내 경선으로 바뀌었어도 아직도 지역의 신선하고 젊은 활동가들의 생활정치를 펼칠 마당이 아쉬운 실정입니다.
 

 5월 아카시아 꽃이 필 때면 늘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묘소에 많은 분들이 모입니다. 올해도 24주기 기일행사에 전국에서 생명과 평화를 위해 애를 쓰는 분들이 모여, 선생이 서민들과 함께한 공동체적 삶을 되돌아보고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갈수록 무위당 선생을 잊지 못하고 많은 분들이 원주를 찾는 이유는, 힘들고 고단한 삶을 사는 민초들의 삶을 지극히 사랑하고 잘살게 해보려고 민주화운동과 협동운동을 몸소 실천한 모습 때문일 것입니다.
 

 기념관에 걸려있는 선생님 글씨 중에 '시민여상(視民如傷)'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원주시 공무원 분께 써주신 글로 '백성을 다친 사람 보듯이 하라'는 뜻입니다. 이 글의 유래는 와신상담하여 권력을 잡은 오나라의 부차가 초나라를 공격하며 진나라의 동참을 요청할 때 봉활이란 신하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라의 흥성은 백성 보기를 상처 돌보듯이 하는데 있으니 이것이 복이 되는 것이고(國之興也 視民如傷 是其福也), 나라의 쇠망은 백성을 흙이나 쓰레기처럼 하찮게 여기는데 있으니 이것이 화가 되는 것입니다(其亡也 以民爲土芥 是己禍也)."
 

 지금 우리사회는 '시민여상'이라는 말을 깊이 되새겨야 할 때 입니다. 작년 초 광화문에는 민초들의 촛불로 바다를 이뤘습니다. 왜 그들이 추운 겨울날 모였을까요. 단순히 권력을 바꾸기 위해 모였을까요. 권력이 바뀐다고 힘들고 고단한 삶이 바뀐다고 생각하는 민초는 없습니다. 민초들이 촛불 들고 일어난 이유는 백성을 개, 돼지로 생각하는 권력자들 때문이었습니다. 세월호에서 수백명의 어린 학생들이 죽어갈 때 권력자들은 평범한 교통사고 대하듯 사고처리하기 바빴습니다. 민초들에 대한 측은지심, 즉 지극한 사랑과 뼈아픈 눈물이 없었습니다. 결국 강력해 보였던 권력은 민초들의 촛불 앞에서 비참하게 무너졌습니다. 지금도 그정신은 미투, 대한항공 등의 사건들을 통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제 몇주 후면 새로운 방백들이 선출됩니다. 비록 민초들의 대표성이 있는 후보가 많아 보이지는 않아 아쉽고, 촛불정부라고 자랑하는 이들도 벌써 교만과 계산이 싹트기 시작하는 것 같아 걱정됩니다만 우리는 결정을 해야 합니다. 아름다운 통일한국을 꿈꾸는 민초들을 실망시키지 않도록 후보자 분들은 '시민여상'의 정신을 되새기는 6월이 됐으면 합니다.

 글쓴이: 황도근 무위당학교 교장

글쓴이: 황도근 무위당학교 교장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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