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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문화와 배려

기사승인 2018.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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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려 없이는 세상을 바꿀 수 없고 배려 없이는 법과 제도가 아무리 잘 되어있다 해도 맑고 밝은 사회 될 순 없어…마음수련이 각자에게 필요한 때

  요즘은 어디를 가든지 거의 같은 화두로 이야기를 한다. 이름 하여 갑질문화다. 인류가 집단으로 살면서부터 갑질의 문화는 계속 이어져 왔지만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더욱 심화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대기업의 갑질부터 고객의 갑질까지, 학교에서는 사제지간에도, 회사에서, 선후배 사이에서, 관공서에서도, 심지어 법원에서도, 국회에서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널부러져 있고, 갑질 없는 사회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2016년부터 이어진 촛불의 위력으로 부패하고 무능한 정권을 물리치고 새로운 정권을 창출한 국민들이 이제는 그 힘이 각 분야에서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들끓는다. 그중 하나가 요소요소에 널부러져 있는 갑질 문화를 개선해보자는 아우성도 그 하나다. 한국사회는 부끄럽게도 천민자본주의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 기업인들은 기업을 해서 부를 축적하지 않고 정권과 결탁하여 부동산투기나 독과점을 통하여, 한편으론 노동력 착취를 통하여 부를 축적해왔기에 부의 쏠림현상은 당연한 것이 되었고, 정권과 결탁한 자본가는 자본의 힘과 정권의 힘이 결합하여 무소불위의 힘으로 갑질을 행사하여도 되는 그러한 환경이 60∼70여년간 이루어진 것이 대한민국의 자본주의 현실이다. 여기에 부지런하며 은근과 끈기의 국민성 덕분에 경제성장은 괄목할 만큼 성장했다. 허나 한국 국민은 동학농민혁명을 거쳐 4월혁명, 6,10민주화운동, 5,18광주민주화 운동 그리고 2016년 촛불혁명을 거치면서 세계가 놀랄 만큼의 민주화를 일궈낸 나라가 아닌가?
 

 짧은지면이라  배려에 대한 두가지의 사례에서 배워야 할 점을 생각해보자.
먼저, 하나, 1789년 프랑스 대혁명기에 레미제라불을 썼던 빅토르 위고를 통해서 미라젤 신부가 장발장에게 베푼 배려에 대한 교훈을 되새겨보자. 다 아시다시피 장발장은  제과점 창문을 부수고 빵 한개를 훔치다 잡혀 도형수가 되었고, 감옥소에서 탈출하다가 잡혀서 투옥되기를 4차례나 하면서 19년이라는 세월을 보내고 빈털터리로라도 그나마 출옥했으나 식당이나 여관등 가는 곳마다 도형수였다는 이유로 온갖 모욕을 당하고 쫒겨나는 신세였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미라젤 신부가 거처하는 주교관이었다. 미라젤 신부는 그에게 융숭한 대접과 잠자리를 제공해 주었음에도 장발장은 아침 일찍 일어나 은쟁반을 훔쳐 가지고 홀연히 떠난다. 신부의 시녀가 이 사실을 신부에게 알렸을 때 미라젤 신부는 그놈이 나를 배신했다고 하지않고 "은쟁반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의 것"이라고 설득하던 중 장발장이  헌병에게 불심검문을 당하여 도둑으로 잡혀 미라젤 신부에게 끌려 온다.

 그 때 신부는 그를 나무라지 않고 오히려 "왜 촛대는 안가져 갔느냐"고 촛대를 싸주면서 그를  잡아 끌고온 헌병들을 내쫒는 광경을 보여주면서 빅토르 위고는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장발장이 미라젤 신부를 찾아 왔을 때 신부가 건성으로 친절을 베풀어서 장발장이 회개하지 않았다고 혹여 생각하지는 않았는지를 곱씹어 보아야 하지 않을까? 미라젤 신부는 처음이나 두 번째 모두 장발장과의 만남에서 진정성으로 장발장을 대하였고, 바로 이러한 진정한 배려가 장발장의  운명을 바꾸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하나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볼 수 있는 이야기다. 지금부터 120여년 전인 1894년. 당시 조선의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 그리고 외세의 침략으로 인한 수탈로 민중들은 생존이 위협받고 한편으론 민족적 자존이 무너져가는 상황에서 조선의 민초들이 목숨을 걸고 저항한 것이 동학혁명이다. 비록 외세를 끌어들여 민중운동을 척결하는 조선의 정부 때문에 실패로 끝났지만 19세기에 조선의 최초이자 최대의 민중 혁명이었다.
 

 동학의 2대교주인 최시형은 조선말기 양반과 상놈의 질서가 엄중한 시절에 당신의 아들을 자기집의 하녀와 혼인하게 하여 직접 계급타파의 본보기를 실천한 분이 아니던가?
 

 미라젤 신부나 최시형 선생이 상대방에게 베푼 것과 같은 배려가 없이는 세상을 바꿀 수가 없다. 아무리 법과 제도가 잘 되어있다고 해도 맑고 밝은 사회가 될 수는 없다. 그것은 최소한의 규제와 규범일 뿐  미라젤 신부와 최시형 선생과 같은 마음을 가지려는 마음수련이 각자에게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든다. 한반도 상황이 시시때때로 변화가 오는데 곧 올지 모를 통일을 위한 준비도 여기서부터 출발하자.

성락철 강원시민사회연구원 이사장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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