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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은 먹고 다니니?

기사승인 2018.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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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밥 맛있었어요. 쌤, 밥차 매일하면 안돼요? 그럼 우리 밥 걱정은 안하고 사는데…"

 

  해거름이 되면 광장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이 있다. 연식이 오래된 일톤 탑차에서 천막과 전기줄, 탁자와 의자를 꺼낸 이들은 순식간에 광장 한 켠에 포장마차를 생성한다. 탁자 위에는 40인분 전기밥솥에 담긴 밥과 카레거나 고기볶음일 반찬, 그리고 깍두기와 동그랑땡이 들어있을 반찬통이 놓여있다, 생수 물통에 전기를 꼽고 나면 준비가 다 된 것이다.
 

 "얘들아, 밥 먹자"
밥차가 오기도 전에 먼저 와서 기다린 갑녀와 을남이가 천막안으로 들어와 천천히 밥솥 뚜껑을 연다. 그러면서 하는 말 "오늘 메뉴 뭐예요?" 개구리 밥차가 월요일에는 장미공원(얼마 전 백간공원 부근으로 옮겼다), 목요일에는 따뚜 공연장 옆 공터에다 펼쳐놓는 풍경은 늘 이렇게 시작한다. 이런 날들이 횟수로 따지면 290여 회, 삼 년이 조금 못되는 시간동안 수 많은 자원 봉사자들이 한 뜸 한 뜸 만들어 놓은 풍경이다.
 

 밥차에 와서 밥을 먹는 청춘들은 얼굴 만큼이나 제 각각이다. 한동안 황야의 무법자처럼 무리 지어 자전거를 타고 나타나 밥만 먹고 시크하게 사라지던 중2 동엽일행은 중3이 되더니 통 얼굴을 비추질 않는다.  
 

 세월호 리본이 매달린 기타통을 폼나게 메고 오던 영민이는 인근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는 아주 가끔씩 찾아올 뿐이다. 영민이는 밥을 먹고 나서는 자작곡 기타 연주를 뽐내던 자칭 아티스트인데, 음악은 돈이 안된다는 부모님 반대에 막혀 그냥 취미로만 하기로 했다. 가출 이유가 궁금해서 물어보니 햄버거가 먹고 싶은데 자기가 사는 동네에는 햄버거 가게가 없어서 결국 원주로 왔다는 믿을 수 없는 사연의 주인공 인규. 그는 열흘 넘게 아파트 옥상층 계단에서 잠을 자고 밥차에서 밥을 먹는 생활을 하다가 홀연히 깨달은 바가 있어 스스로 집으로 돌아갔다. 인규는 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 학비를 벌기 위해 서울서 일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최근에 보내왔다.
 

 처음 천막이 열리던 날부터 줄곧 개근중인 성수는 노래를 좋아해서 늘 천막 안을 그가 선곡한 음악으로 가득 채운다. 무선 스피커를 타고 노래가 흘러 나오면 그가 온 것이고, 조용하면 아직 안 온 것이다. 성수는 얼마 전부터 밥차에서 시작한 보컬 트레이닝을 받고 있다. 밥차의 방문객들을 눈여겨 본 보컬 학원 선생께서 자원해서 강습을 해 주기로 한 덕분이다. 
 

 삼 주 동안 안보이던 지은이와 미영이 들어오더니 밥을 한 접시 그득 담아가지고 온다. 오늘 메뉴는 카레라이스다. 미영은 카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의외였다.
"배가 많이 고픈가 보네." "엄청 고파요, 오늘 첫 끼예요" 저녁 일곱 시가 진즉에 지났는데 첫 끼란다. "하루 종일 굶은거야?" "그런 셈이죠. 히히 근데 사실 이게 우리 아침이예요" 영문을 몰라 하고 있는데 그 모양이 또 재미있는지 둘이서 까르르 까르르 웃음깨를 턴다. "뭔 소리래?" "우리 다섯 시까지 자다가 좀 전에 일어나서 밥 먹으러 지금 나온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아침인거죠." "그럼 점심 저녁은 언제 먹는데?" "그야 모르죠. 운 좋으면 먹는거고…"
 

 저녁 일곱 시에 첫 끼를 시작한 둘은 우연하게 만난 비슷한 처지의 또래들과 삼삼오오 모여 그렇게 피씨방으로 공원으로 친구 자취방으로 다니면서 시간을 끌다가 일출 즈음에야 잠자리로 들어갈 것이다.
 

 밥차에는 자원봉사 활동가들이 많다. 대부분 인근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는 미래의 복지사들이다. 그들이 없으면 밥차에 오는 여린 청춘들은 혼자서 밥술을 떠야 한다. 서너 살이 더 많을 뿐인 자원 봉사자들을 '형 누나' 하면서 따르는 것도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고마워서 그럴 것이라는 짐작을 해 본다. 하지만 방학이 오면 타지에서 온 대학생 봉사자들은 원주를 떠날 것이고 그러면 또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방문객들이 늘어난다.
 

 배드민턴도 하고 보드 게임도 하면서 천막 안에 활기를 불어주던 지은이와 미영이가 밤 열한 시가 다 되자 천막을 떠날 채비를 한다.
"이제 어디로 갈 건데?" "몰라요, 또 어디 친구들이 있는데 가서 놀겠죠" "참 오늘 밥 맛있었어요. 쌤, 밥차 매일하면 안돼요? 그럼 우리 밥 걱정은 안하고 사는데…"
"…………"
그렇게 사라지는 미영이들을 보고 있으려니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생각이 비로소 든다.  다시 광장은 어둠으로 텅 비고, 아이들은 또 어딘가로 스미어 들어간다.(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밥차에서 아이들과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 들어줄 자원활동가를 모십니다. 길 위에 있는 청소년들은 방학이 없습니다. 6개월 이상 참여가 가능한 분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강유홍 개구리 밥차 활동가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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