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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흔적을 기억하십시오.

기사승인 2018.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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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생이라는 말이 이슈가 되고 있는데 시골을 재생하겠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시골은 정책 및 주류의 관심 밖에 있기 때문이 아닐가 싶다.

  한 이방인이 가을 들녘에 자전거를 쏜살같이 달린다. 하루에도 여러번씩 자전거로 뭔가를 잔뜩 실어 나르더니 제 방 가득 그것들을 채운다. 플락스틱, 양동이, 생수병 심지어 자동차 타이어와 휠까지, 이방인은 그것을 물로 닦고 세제로 씻고 드디어 자신의 방에 사람들을 초대했다.
 

 그리고 말한다. "당신의 흔적을 기억하십시오" 사람들은 그녀의 방에서 자신을 기억하게 된다. 혹 자동차 폐타이어 처리가 불편했던 누군가는 섬강변에 버렸는지도 모른다. 바로 당신이다. 섬강변에서 자전거 라이딩을 멋지게 한 당신, 생수병을 강변에 버렸는지도 모른다. 망가진 냉장고 처리 비용이 아까운 당신, 섬강변에 아직 있는 그 냉장고는 당신의 것이다. 헌 문짝을 새 문짝으로 교체한 당신, 당신의 헌 문짝이 섬강변에서 당신이 열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 한 달간 문막 후용리 마을에 한 오스트리아인이 섬강변을 청소하며 시간을 보냈다. 오스트리아의 숲속에 살며 미술작업을 해 오던 이방인은 한 달 동안 문막에 살며 우리 생활의 불편한 흔적들을 불러 모았다. 쓰레기에서 풍겨 나오는 악취를 제거하기 위해 그녀는 온 종일 세제로 닦고, 말리고, 다시 닦고를 반복했다.
 

 이방인은 우리 주변의 흔적을 예술로 치유하려고 한다. 영어에 "펠림시스트(palimpsest)" 라는 단어가 있다. 오래된 양피지위에 글씨를 쓰고 난 후 그 내용이 필요 없어지면 지우고 또 다른 글씨를 쓰게 되는데, 그것이 육안으로는 쉽게 보이지 않는다 해도 양피지위에 한 번 쓴 글씨는 흔적이 되어 사라지지 않는 것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이방인 예술가가 섬강변에서 모아온 쓰레기들은 냄새를 지워도 그 흔적이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 주변 누군가의 흔적이 분명하다. 모두가 도시화의 결과다. 도시민들의 집단 이익을 우선시 하다 보니 도시 쓰레기들은 외곽 혹은 주변, 구체적으로는 시골, 지방으로 모여든다. 도심에 발전소를 짓고 쓰레기소각장을 짓는다는 말은 들어 보지 못했다.
 

 재생이라는 말이 이슈가 되고 있다. '재생'은 망가져서 못쓰게 된 이후 다시 살려 보겠다는 것인데 그게 가능한 것인지 모르겠다. 시골을 재생하겠다는 말은 들어 본적이 없다. 한 번도 못쓰게 된 적이 없어 시골재생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시골은 정책 및 국가 서비스 등 여러 면에서 주류의 관심 밖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몇몇 경우, 도시에서 벌어졌으면 진작에 해결됐을 일이 시골에서는 더디고 무심하다. 거칠게 민원을 넣는 이도 논리적으로 따지며 권리를 주장하는 이도 그리 많지 않다. 그보다는 국가가 하는 일에 순응하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정부가 지역밀착형 생활SOC 사업에 12조 원을 쓰겠다고 한다. 예전에 보도블럭 교체 같은 곳에 쓰던 예산을 도시재생에 쓰겠다는 이야기다. 도시주변에 공연장, 도서관, 문화센터 등 일상에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곳에 쓰인다고 한다. 전국의 지자체들이 이 사업에 뛰어들기 위해 이미 각축전을 시작했다.

 그런 연유로 이미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몇몇 도시재생 문화공간들은 이들 지자체 관계자들의 방문으로 몸살을 앓을 정도다. 그런데 왜 꼭 도시재생이라는 말을 붙이는지 모르겠다. 도심이 아닌 시골은 이런 공공 사업에서도 소외된다. 적은 인구 때문에 가성비가 떨어지는 것과 유권자가 많지 않아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 이유일 것이다.
 

 문막, 부론만 해도 원주의 변방인 탓에 공공서비스는 언감생신이다. 젊은 세대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고 수도권 이주민들도 많아지는데 삶의 환경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섬강변의 아름다운 자전거 길은  낚시꾼, 자전거 라이더, 오프로더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가 오랫동안 방치되고 있다.
 

 생활SOC 사업이 시골 환경개선에도 널리 쓰였으면 좋겠다. 섬강변에 미술관이 생기고 도서관도 생기면 쓰레기도 예술이 되고 인문학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미술관, 도서관 주변에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는 않을 테니까. 아름다운 섬강이 도시인들의 여가로만 소비되지 않길 바란다.
 

 문막, 부론에 예술가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들이 쓰레기로 작품을 만들며 "도시" 당신의 흔적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영오 극단노뜰 대표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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