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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감영, 원주의 아들·딸 위한 선물

기사승인 2018.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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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화당 권역 못지않게 중요한 객사권역이 복원되길 소망한다. 객사권역 복원이야 말로 원도심 활성화와 도시재생의 시작

 

  지난 3일, 1995년 기본설계를 시작으로 첫발을 내딛은 강원감영복원사업이 23년 만에 마무리 되었습니다. 23년을 거슬러 처음을 돌이켜 생각하면 강원감영복원 사업은 실현가능성이 희박한 무모한 계획이었습니다.

 1991년 착수한 경복궁복원 사업이 김영삼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1995년 옛 조선총독부 건물 철거로 본격화 되었고, 정부의 문화재 정책은 지방 감영 복원에 대한 관심과 여력이 없었던 때였습니다. 또한 언제나 외적인 성장을 추구하며 강원 제1의 도시를 지향하는 원주시의 정책과도 거리가 멀었습니다. 무엇보다 문화재복원은 원주시민 다수의 여망이 담긴 숙원 사업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본적지가 원주이지만 영월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선대의 유택이 모두 원주에 있으니 전통적인 관점으로는 원주가 고향입니다. 그런데 고향을 이야기할 때 저는 늘 영월이라고 말합니다. 유년시절부터 놀이터였던 장릉과 청령포, 금몽암, 창절서원 같은 문화재와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의무적으로 참여해야했던 단종문화제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영월사람이라는 동질감을 가지게 했고, 자연스럽게 영월 사람의 기질이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도시인에게 유년시절의 기억과 도시의 역사가 담긴 문화재는 지역정체성 형성의 뿌리가 됩니다.
 

 

▲ 강원감영 후원

 감영복원의 직접적인 동기는 결혼식입니다. 1993년 5월 학성동 원주문화방송 뜰에서 결혼사진을 찍었는데 저와 아내 모두 당혹스러웠습니다. 회사 뜰에서 결혼사진이라니,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사진사에게 물어보니 그곳이 원주에서 가장 멋진 곳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사진의 배경이 되는 장소를 오래 기억합니다.

 도시가 품고 있는 문화재는 사진의 배경이 되기도 하지만 도시 정체성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영월의 경우 청령포와 장릉, 강릉은 경포대와 오죽헌, 춘천은 공지천이 결혼사진 촬영장소로 유명했는데, 원주는 회사 뜰이라니…. 강원도 최대도시 원주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1995년 3월 영월군에서 원주시로 근무지를 옮기고 제일 먼저 문화재를 살펴보면서 영월과 춘천, 강릉과 너무 다른 원주의 도시환경과 행정여건에 놀랐습니다. 어릴 때 선친으로부터 자주 들었던 조선시대 도청소재지 '원주'의 흔적은 3동의 목조 건축으로 초라하게 남았을 뿐이고, 유서 깊은 역사도시임을 알려 주는 유적은 여기 저기 흩어져 있었으나 돌보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원주시청으로 전입하면서 결혼사진 찍기 좋은 문화재를 복원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는데 기회는 일찍 찾아왔습니다. '강원정도 600년'을 1년 앞둔 1995년, 원주군청에서 퇴직하신 공직 선배 황노기 씨가 강원도지사에게 청원서를 제출합니다. 강원도 역사 600년 중에서 500년 동안 원주에 감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기념행사가 춘천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잘못된 것이니 시정해 달라는 것이 청원의 요지였습니다.

 강원도에서는 그 청원을 받아들였고, 강원감영 보수정비와 정도 600주년 기념조형물 건립예산으로 각 1억 원을 배정해 주었습니다. 1억 원의 예산은 당초계획 대로 선화당 창호복원과 포정루 지붕 보수 등 감영 보수공사에 쓰여 졌고 잔액 2천여 만원이 남았습니다. 그 자투리 예산으로 강원도의 허락을 받아 당초 계획에 없었던 강원감영복원계획용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업을 착수하고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복원 부지 내에 있던 옛 원주군청사와 재향군인회관 그리고 강원체신청(원주우체국) 등 공공청사를 이전하는 일에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더 큰 어려움은 사라진 문화재의 원형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어떤 용도의 건물이 있었다는 문헌기록은 풍부했지만 그 건물들이 어떤 형태로, 어느 위치에 있었는지 알 수 있는 자료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후원의 경우 8도 감영 중 유례가 없이 신선사상을 건물 조영에 끌어들인 경우여서 더욱 고증이 어려워 한때 설계가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비록 일부이지만 1896년 이래 122년 만에 제 모습을 찾은 강원감영을 아름다운 건축물 복원으로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감영의 건축물이 요란한 공연무대의 배경보다는 아이들의 놀이터로, 시민들이 즐겨 찾는 쉼터로 쓰이면서 원주의 역사를 생각하며 '원주사람'이라는 동질감을 형성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바람이 있다면 감영의 여러 건물군 중 선화당 권역 못지않게 중요한 객사권역이 복원되길 소망합니다. 비록 상가가 형성되어 쉽지는 않겠지만 객사 권역 복원이야 말로 원도심 활성화와 도시재생의 시작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원주의 재정규모와 시민들의 바람이 크다면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박종수 원주역사박물관장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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