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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암 학성동 6통장

기사승인 2019.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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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성동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어"

  "14년간 통장을 하면서 월례회의에 딱 한 번 빠졌다. 칠순이라고 자식들이 유럽여행을 보내줬는데 그때 빼고는 모두 참석했다."
 

 정운암(73) 학성동 6통장은 학성동에 통일아파트와 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이 있었을 때부터 도시재생 뉴딜사업 대상지로 선정되기까지 과거와 현재를 온전히 삶으로 껴안은 사람이다. 50여 년 전 고향인 횡성을 떠나 원주에서 그릇 가게를 하는 사촌 집에서 3년간 모은 돈으로 역전시장에 구멍가게를 차린 것이 학성동과의 첫 인연이다.
 

 한 평도 채 안 되는 가게 월세는 500원. 진열장을 직접 만들어 구멍가게를 냈다. 집을 따로 얻을 돈이 없어 가게 진열장 밑에서 잠을 자며 장사를 했다. 당시 만해도 학성동 역전시장은 구멍가게가 5개나 있을 정도로 장사가 잘되는 곳이었다. 반 평 밖에 안 되는 '단골상회'에서 4년 정도 돈을 벌어 33㎡로 넓혔다. 방도 별도로 있어 좀 더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월세도 두 배나 많았지만 그 이상 벌 수 있어 부담스럽지 않았다. 명절이 되면 선물세트를 사기 위해 찾는 사람이 많아 물건이 동나기 일쑤였다.
 

 기억에 남는 손님도 있다. 제19회 멕시코올림픽에서 라이트플라이급 은메달을 획득한 원주출신 권투선수다. 당시 가게에 지인 3명과 찾아와 샴페인 3병을 마셨는데 계산을 하지 않고 그냥 간 것이다. "50여 년 간 장사를 하면서 돈을 못 받은 사람이 없는데 그 선수가 유일하다. 그래서 잊을 수 없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장사가 잘 되는 것도 한때였다. 시장 입구 쪽에 슈퍼가 생기면서 매출이 급감했다. 5개나 됐던 구멍가게들이 하나둘씩 문을 닫았고 정 통장도 업종 변경을 고민해야 했다. 다행히 정 통장 앞집에서 빵과 만두를 판매하던 사장이 정 사장에게 기술을 가르쳐주고는 다른 지역으로 이사했다. 단골상회에서 단골빵집으로 상호를 바꿨다. 매일 자정까지 문을 열었을 정도로 정 통장의 손맛은 손님을 끌어 당겼다. 그렇게 장사를 해 2남1녀를 대학에 보내고 결혼도 시켰다.
 

 그러다 어느 날 동네 주민이 학성동사무소(현 행정복지센터)에서 통장을 모집하는데 한 번 해보라는 제안을 했다. 선뜻 내키지 않았지만 신청이나 해 볼까라는 마음으로 신청했는데 지금까지 통장을 하고 있다. 6통에는 5개 반을 책임지는 반장이 있는데 이중 4명은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같이 한 사람이다. 이제 손발이 척척 잘 맞아서 무슨 일을 해도 죽이 맞는다.
 

 통장을 하면서 늘 잊지 않는 한 마디가 있다. "사람에게 팔이 두 개인 것은 하나는 나 자신을 위해 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을 도우며 살라는 의미"라고. 한 창 젊을 때 들었는데 평생 기억하고 있다. 특별히 누군가를 위해 봉사하지 못하고 살았는데 통장을 하면서 주민을 위해 자신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맡은 일을 워낙 성실히 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다른 직책이나 활동을 같이 하자는 제안이 많았다. 하지만 중앙지구대 안전협회만 승낙하고 모두 거절했다. "나에게 역할이 주어지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게 내 신념이다. 그 중 가장 기본이 회의 참석이라고 생각한다"는 정 통장.
 

 원주축협 하나로마트가 들어서면서 역전시장은 급격히 매출이 줄었다. 점점 빈 점포가 늘었고 손님들 발길이 뚝 끊겼다. 원주역 이전 이야기도 공론화 됐다. 역전시장 재개발 사업이 추진된 적도 있었지만 무산됐다. 정 통장도 장사가 너무 안 돼 3년 전쯤 가게 문을 닫고 지금은 동네 주민들이 편안하게 들려서 차 한 잔 하는 공간으로 쓰고 있다.

 자연스럽게 학성동 도시재생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통장이다보니 주민들이 지나가면서 도시재생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내가 알아야 가르쳐줄 수 있으니 행정복지센터와 도시재생지원센터, 도시재생아카데미를 다니며 열심히 공부했다. 지도를 갖고 다니며 주민들에게 설명하기도 했고 궁금한 건 관계자에게 물어봤다"는 정 통장. 올해 6통에서 초등학교 입학생이 한 명도 안 나올 정도로 젊은 사람이 없고 아이들 노는 모습을 동네에서 본지 오래다. 그래서 도시재생 사업에 거는 기대가 크다.
 

 정 통장은 "학성동 40계단은 그대로 보존하고 공동체 사업을 통해 지역주민끼리 재밌게 생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개인의 욕심을 버리고 정성스럽게 하다보면 잘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서연남 시민기자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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