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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und space, 발견된 공간, 발견된 시간

기사승인 2019.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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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에서 가치 있게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해 기록하고 보존하는 것이야말로 시대를 기억하는 중요한 일일 것이다…더 바뀌기 전에 앞선 세대의 기억을 저장해 둬야 한다

 타케토미는 일본의 남쪽 가장 먼 곳 야에야마 제도에 속해 있는 섬이다. 오키나와현에 있지만 본섬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다시 페리보트로 15분을 가야하는 먼 곳이다. 본토보다는 오히려 대만과 가까워 더 이질적이고 그래서 일본인들의 버킷 리스트에 꼭 들어가는 여행지이기도 하다.
 

 인구는 겨우 300여명이고 섬 전체를 자전거로 한 시간 정도면 둘러 볼 수 있는 곳. 지금이야 도시에서 들어 와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젊은 세대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겨우 5~6곳의 식당과 두 세 곳의 구멍가게(그나마 문을 열고 닫는 시간은 주인 맘대로 잠깐)가 전부인 곳이다. 숙박은 마을 노인들이 운영하는 민박집이고 그것도 주인들의 이런 저런 사정으로 자주 문을 닫기도 한다.
 

 작은 섬인 만큼 이곳은 마을 주민들 간 유대와 전통, 협력이 잘 이루어져 지금도 마을제사 때는 함께 술을 빚어 나누거나 마을에 산재해 있는 서낭당을 함께 관리하기도 한다. 이 작은 마을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걷거나, 바닷가에 앉아 있거나, 별을 보는 일 외에는 없다.

 이 섬을 방문한 지난 1월, 며칠간의 멍 때리기 후 섬 전체를 걷던 중 잘 정돈돼 보이는 타케토미 민속박물관을 찾게 되었다.
민속박물관에는 섬의 역사, 동·식물 표본 등 일반적인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우연히 발견한 '소리' 기록물들은 이들에게 시간과 공간의 기억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 후대에게 어떤 가치를 전해 줄 수 있을지 가늠하게 하는 실로 존경할 만한 것이었다.
 

 소리 기록물들은 노래, 옛 이야기, 구전언어, 지명유래, 마을 행사 등등으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심지어 마을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모든 소리(대화 포함)가 기록되어 있었다. 또한 마을 어른들이 마을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치는 소리도 기록되어 있어서 그들의 노래가 어떤 방식으로 전수되고 유지되는 지 알 수 있는 중요한 사료로서의 가치도 있었다.
 

 그 소리 속에는 할머니, 할아버지, 친구, 이웃들의 소리가 고스란히 들어 있고 내가 묵었던 민박집 주인의 연주소리, 목소리까지도 기록되어 있었다. 방문객들은 잘 분류된 소리들을 헤드폰을 통해 들을 수 있고, 별 것 아닌 것 같은 이들의 소리는 외지인들을 크게 감동시켜 주었다.
뿐만 아니라 섬의 바닷가에서 소량의 모래 알갱이를 매년 채취하여 작은 유리병에 담아 계절과 시간에 따라 모래 알갱이의 변화를 볼 수 있도록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파운드 스페이스는 연극용어로 사용되는데 정식공연장이 아닌 마당, 창고, 복도, 사무실, 빈 공간 등 어디든 공연을 하면 공연장이 되는 것을 말한다. 즉 효용성이 떨어지는 공간이라도 어떻게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지에 따라 공간의 가치와 쓰임새가 재발견 될 수 있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이 용어를 '발견된 시간' 이라 확장해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가치 있게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해 기록하고 보존하는 것이야말로 시대를 기억하는 중요한 일일 것이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의 소소한 현상을 기록하는 것이야 말로 시간을 발견하는 일이다.
 

 어떤 시기 우리가 가치 있게 발견하지 못했던 많은 것들을 되돌아보면 지금은 기억도 기록도 없는 것들이 아주 많다. 원주의 옛것들도 마찬가지다. 미처 기록하지 못한 시간들은 그것을 복원하기 위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요구한다.

 

 원주 기억 박물관을 제안한다. 몇 해 전 문막 후용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인터뷰한 기록들을 '후용리 견문록' 이라는 작은 책으로 만든 적이 있다. 그분들의 기억이 사리지기 전에 마을과 마을 주민들의 변천사를 기록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 개인과 사회의 역사, 동네 사람들의 노래, 오래된 일기장, 돌과 나무, 중앙시장의 불탄 흔적조차도 기록으로 남아야 한다.
세대가 더 바뀌기 전에 앞 선 세대의 기억을 저장해 둬야 한다.

원영오 극단노뜰 대표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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