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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건국 시원유적 석남사지 복원

기사승인 2019.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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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주시, 성남리 절골 8필지 5천278㎡ 매입 방침

   
▲ 신림면 성남리 절골마을에 위치한 석남사지. 중앙 붉은 원안이 석남사가 있던 곳이다.

건등산·견훤산성 연계 역사·문화 관광자원 활용
남북 교류협력 신청 북한과 공동 학술연구 추진

▲ 삼국사기에 기록된 석남사. ‘서기 892년 세상을 바꾸겠다고 작심한 궁예가 북원성 호족 양길에게서 군사 삼백을 얻어 치악산 기슭 석남사(石南寺)를 중심으로 주천, 영월, 울진을 정복했다’고 기록돼 있다.

후삼국시대 궁예가 주둔했던 곳으로 고려 건국의 발원지로 평가받는 '석남사지(石南寺址)'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원주시는 6억4천만 원을 투입, 석남사가 있던 신림면 성남리 절골 토지 8필지 5천278㎡를 매입해 보존하고, 발굴조사를 통해 정비한 뒤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석남사지는 궁예의 행적과 관련이 있는 곳이다. 삼국사기에는 '서기 892년 세상을 바꾸겠다고 작심한 궁예가 북원성 호족 양길에게서 군사 삼백을 얻어 치악산 기슭 석남사(石南寺)를 중심으로 주천, 영월, 울진을 정복했다'고 기록돼 있다. 궁예는 이 곳에서 인근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다가 개성으로 진출해 후고구려를 건국했다. 석남사지가 고려 건국의 시원 유적인 셈이다.

고 박형진 원주문화원장은 2003년 원주투데이에 연재한 '원주 문화와 야사'에서 "일찍이 궁예가 양길의 부하가 되어 석남사에서 군사를 훈련시키고 농사도 지으며 후일을 기약했다"며 "인근을 모두 점령하고 결국 철원에 가 후고구려인 태봉국을 세웠으니 원주를 일컬어 왕조변혁기의 활동무대라고 지칭함은 당연하다"고 석남사지에 대한 역사적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 신림면 성남리 석남사지. 후삼국시대 궁예가 주둔했던 곳으로 고려 건국의 발원지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매장문화재 유존지역으로 분류되어 있는 석남사지에는 농촌주택이 자리하고 있고, 뒷산에는 부도가 넘어져 있으며, 부도 옆에 부도비가 있지만 마모가 심해 비문의 내용을 알아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기와편이 넓게 분포되어 있고 예전에 석축(石築)이나 주초석(株礎石)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보이는 석재 또한 상당수가 있어 사원의 규모가 상당히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원주시는 문화재 발굴조사를 통해 석남사지를 민족통합 및 고려 건국 시원유적으로 정비한 뒤 건등산과 견훤산성 등 고려 건국의 토대가 된 유적과 함께 역사·문화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또한 옛 태봉국이 있던 개성과의 교류 및 북한과의 공동학술연구도 추진한다. 이를 위해 문화재청에 문화재 분야 남북교류협력 사업을 신청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박종수 원주역사박물관장은 "석남사지 발굴조사와 정비의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됐지만 법천사지와 거돈사지, 흥법사지 발굴조사와 정비 때문에 지금까지 늦춰진 측면이 있다"면서 "신청 중인 남북 교류협력 사업이 확정되면 고려 건국유적으로 북한과 공동 학술연구를 추진하고 개성시와의 교류도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민호 기자 hana016@hanmail.net

<저작권자 © 원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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