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일호집 이기순 대표

기사승인 2019.06.17  

공유
default_news_ad1

- "맛있게 먹는 뒷모습만 봐도 행복"

 "일호집은 내 목숨과도 같은 곳이다. 그냥 내가 만든 음식 맛있게 먹고 있는 손님들 뒷모습만 봐도 행복하다"
 

 중앙시장에 가면 소고기 골목이 있다. 20개 넘는 소고깃집이 한우특수부위를 판매하고 있다. 이미 미식가 사이에서는 소문난 골목이다. 소고기도 맛있지만 된장찌개와 밑반찬 맛을 잊지 못해 찾아오는 손님도 꽤 많다. 처음 이 골목에서 숯불을 피우며 고기를 판매한 곳이 일호집(대표: 이기순·81)이다.

 올해로 40여 년째다. 40여 년간 식당을 하면서 가게 문을 닫은 건 두 번이다. 큰아들 결혼식과 이 대표의 남편이 세상을 떠났을 때다. 1년 365일 휴일 없이 문을 여는 곳이다.
 

 주변에서의 곱지 않은 시선도 많았지만 처음에는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에 문을 닫을 수 없었고, 지금은 믿고 찾아오는 손님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문을 연다. 일호집이 40년이 넘게 손님들의 발길을 끌어들이는 이유는 이 대표의 손맛과 인심 덕분이다.

 매년 콩 5가마니를 사서 된장, 막장을 담고 깻잎과 고추도 직접 삭히고 양념을 한다.  이 대표 집에 있는 50개가 넘는 항아리가 일호집 된장찌개 맛의 비밀이다. 별도의 육수를 만들지 않고 장만 넣고 끓여도 공깃밥 한 그릇은 거뜬하다. 새벽3시까지 깻잎과 고추를 다듬고 삭혀서 기름에 볶아 식탁에 내는데 한 번 맛 본 사람은 이 맛을 잊지 못한다. 손가락 관절이 아프고 눈도 어둡지만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손님과의 약속이다. 고기도 최고급 한우특수부위만 취급하고 양념을 하지 않고 생고기를 낸다.
 

 장과 반찬이 맛있다 보니 사가겠다는 사람도 많고 특히 된장, 막장은 조금만 팔라는 사람이 많지만 식당에서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양이 부족하다. 원주를 찾는 유명인이나 기관장들 사이에서도 일호집은 꼭 한 번은 들려야 하는 맛집이다. 유명해지다 보니 다른 지역에서 똑같은 상호로 가게를 차리는 일도 있어 분점을 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지만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이 대표는 "한 달이나 두 달 정도 꾸준히 가게를 찾아와 고기를 먹던 사람들이 어느 날 보면 가게를 차렸다고 하더라. 가게 이름이 같다고 맛까지 같진 않을 것"이라며 "음식은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한다"고 했다.
 

 이 대표가 일호집을 하게 된 건 우연이었다. 부사관이었던 남편을 따라 원주로 이사와 친하게 지냈던 지인의 식당을 인수를 하게 된 것이다. 지인이 남편에게 몇 번 가게를 해 보라고 권유했지만 남편은 선뜻 대답을 못했다. "장사도 잘됐고 고기가 맛있어 장사를 하면 괜찮을 것 같았는데 남편이 결정을 못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남편 퇴직한 뒤에 먹고 살 길이 없어 계약금 500만 원을 빚내서 계약했다"며 "나중에는 남편도 믿고 도와줬다"고 추억했다. 33㎡ 규모에 상호도 없이 신문을 몇 번 접어 위에 비닐을 올려 고기를 내던 시절이었다. 식당일을 한 번도 해 보지 않아 일은 녹록지 않았다.

 숯불 피우는 것부터 고기 써는 것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다. 손을 베기 일쑤였고 뼈가 보일 정도로 베이기도 했지만 가게를 비울 수 없어 반창고를 칭칭 감고 일을 했다. 상호 없이 장사를 하다 가게 이름을 정할 때 가게에서 키우던 강아지 이름을 따서 일호집으로 했다. 365일 반갑게 손님을 맞아주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자신을 지켜주던 강아지를 보면서 손님을 늘 정성스럽게 맞이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차용증을 쓰고 외상이 가능했던 시절이었기에 못 받은 돈도 꽤 된다. "몇백 장 되는 차용증을 하루는 모두 찢어 버렸다. 외상이 쌓이면서 사람들이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내가 다 없애 버리면 그 사람이 다시 올 것이라 생각했다"는 이 대표. 진심은 통했다. 사람들은 오히려 고마운 마음에 더 자주 찾았고 빚을 갚는 마음이라며 손님을 더 많이 소개했다. 남편이 퇴직을 하고 몇 번의 사업 실패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었기에 일호집은 이 대표에게 2남 1녀의 자식을 키울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주변을 챙기고 베푸는데도 인색하지 않았다. 1980년대 중앙시장 골목에는 채소나 곡식을 조금씩 갖고 나와 판매하는 시골 어르신이 많았다. 그렇다 보니 점심을 도시락을 싸와 대충 때우기 일쑤였고, 추운 겨울에도 따뜻한 국물 없이 찬밥을 먹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럴 때마다 이 대표는 고깃국을 한 솥 끓여서 한 대접씩 대접했다. 채소를 팔지 못해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어르신이 있으면 선뜻 모두 사기도 했다.
 

 일본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살다 이제는 원주가 제2의 고향이 된 이 대표. 찾아오는 손님을 그냥 돌려보낼 수 없어 여행 한 번 못 가고 가게를 지키고 있는 것이 남들에게는 안쓰러워 보일지 몰라도 이 대표에게는 행복이다. '내 손으로 한 음식만 대접하고 넉넉하게 준다'는 신념으로 오랜 세월 중앙시장을 지켜온 이 대표는 오늘도 일호집에서 하루를 맞이한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서연남 시민기자 wonjutoday@hanmail.net

<저작권자 © 원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