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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분식 안옥화 대표

기사승인 2019.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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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주초교 아이들이 날 살렸어요"

 

 불혹이 되던 해 2년간 암투병 하던 남편이 하늘로 떠났다. 15세, 10세 된 딸 아들과 셋이 살 길이 막막했다. 신랑이 신발가게를 운영하고 있어서 그냥 옆에서 돕기만 했었는데 어느 날 가장이라는 명패가 자신 앞에 걸렸다.

 안옥화(63) 봉산동 원주초등학교 옆 번개분식 대표는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할 수 있는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없던 때였다. 설상가상 병원비 등으로 빚도 많았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8천만 원 정도의 빚이 있었는데 갚을 방법이 없었다. 겨우겨우 1년간 신발가게를 운영하다 도저히 수입이 안 돼 1년 만에 한 켤레에 5천 원 씩 모두 팔았다"며 먹먹한 마음을 표현하는 안 대표.
 

 생계가 막막했다. 할 수 있는 것은 분식집이었다. 집에서 아이들에게 해주는 그대로 떡볶이를 하고 칼국수를 직접 밀어서 끓였다. 누군가에게 분식 만드는 법을 배우지도 않고 시작한 장사라 겁났지만 다행히 가게는 입소문을 타고 꽤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

 원주초등학교 재학생만 1천500명이 됐고 현재 옻문화센터 자리에 원주도서관(현 평생교육정보관)도 있어 가게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40㎡밖에 안 되는 가게였지만 안 대표에게는 아이 둘과 먹고 살아야 하는 생명의 공간이었다. 라면을 하루에 50개 정도 끓였고, 밥도 세 번 정도는 해야 할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혼자 하다 보니 미처 설거지도 못하고 식탁을 치우지 못하는 일이 많았는데 그럴 때면 늘 손님들이 먼저 소매를 걷고 설거지와 가게 정리를 도와줬다. "그때 알았어요.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정말 고마웠죠"라고 말하는 안 대표. 그렇게 1년 반 정도를 쉬는 날 없이 일했다. 그러다 과로로 쓰러져 13일간 병원에 입원한 뒤부터 일요일은 가게 문을 닫고 쉬었다. 입원 내내 잠만 잤다.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다. 심리적 스트레스와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던 것 같다.
 

 무엇보다 안 대표에게 가장 고마운 것은 원주초등학교 아이들이다. 학교가 끝나는 시간이 되면 분식집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아이들에게 인기 메뉴는 단연 떡볶이였다. 22년 전이나 지금이나 떡볶이 가격은 컵 떡볶이 500원, 1인분 1천원으로 같다. 물가가 올라 다른 집들은 다 가격을 올렸어도 안 대표는 올릴 수 없었다고 한다.
 

 떡볶이 양념은 고춧가루와 간장이 주 재료고 고추장은 조금만 넣는다. 갖은 양념을 한 뒤 1주일간 실온에서 숙성한 뒤 떡볶이를 만든다. 떡볶이가 맛있다며 비결을 가르쳐달라고 오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지만 안 대표는 "특별한 비결이 있는 게 아닌데 맛있다고 해 주니 고맙다"고 했다.
 

 원주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 가도 찾아오는 것은 예삿일이고 졸업한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돼 이사를 갔어도 일부러 하굣길에 들르기도 한다. 결혼한 아이들이 자녀들과 찾는 것도 흔한 일이다.
 

 안 대표가 가장 바쁜 시간은 오후2시부터. 오후2시부터 4시까지는 초등학생 손님이 많고, 오후4시 이후부터는 중·고등학생들이 많다. 학원 가기 전 간식으로 먹고 가는 학생이 대부분이며, 일주일 내내 오는 아이들도 꽤 많다. 빼빼로 데이나 발렌타인데이가 되면 초콜릿이나 빼빼로를 사오는 아이들도 있다. "가끔 아이들이 '맛있는 떡볶이 만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편지를 써서 주고 가기도 한다. 사탕이나 과자 같은 것을 아줌마 주려고 챙겨왔다며 주는 아이들도 있고, 이 곳에 있으면 정말 많은 사랑을 받는다"는 안 대표.
 

 남편이 떠나고 사는 게 힘들어 일을 하다가 멍하니 있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러다 아이들이 분식집에 들어와 "아줌마 무슨 일 있으세요? 왜 우세요?"라는 말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기도 했다. 하루 종일 아이들 웃음소리와 떠드는 소리를 듣다보면 살아있다는 것이 새삼 행복하다는 안 대표. 맛있게 음식을 먹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이게 행복이지'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안 대표는 "너무 힘들 때 우울증이 왔었는데 아마 원주초등학교 아이들이 아니었으면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며칠 전 뒷산에 갔다가 발목이 부러져 입원하면서 분식집을 못 열었더니 아이들에게 전화가 쇄도한다. 몸은 병원에 있지만 마음만은 번개분식에서 아이들에게 떡볶이를 건네며 웃고 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서연남 시민기자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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