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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아 1년을 부탁해

기사승인 2019.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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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도 여름에게 1년 건강을 부탁해야겠다. 늘 시원하기만을 갈망한다면 분명 겨울엔 추위에 웅크리는 시간이 될 것이니까.

  햇살, 백사장, 파라솔, 폭풍, 소낙비, 활짝 핀 꽃, 별자리, 밤바다, 나무그늘, 땀방울 등등 여름하면 연상 되는 단어는 참으로 많다. 종일 헤아려도 시간이 모자라겠지만 여름 하면 단연 젊음과 땀이란 단어가 먼저 다가온다.
 

 쾌활한 웃음, 꿈꾸는 나무, 강렬함 등 여름과 중첩되어 오는 이미지도 많지만 어찌하다 인생의 가을로 접어든 나이가 되고 보니 여름의 대명사는 '젊음', 이 하나의 단어에 집중되기도 한다.
 

 젊은 시절은 참으로 숨 가쁘고 급박한 것이 많은 시절이다. 시간과 공간의 부족과, 금전적인 부족이나 여유로운 감정의 부족이나 모든 것이 목마른 시절이다. 어서 나이 들어서 그냥저냥 쉬면서 지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내 생의 늦여름 쯤 되었을 무렵. 서점에 들렀다가 우연히 책 한 권을 만났다. 윌리엄 새들러의 'The Third Age-마흔 이후 30년' 이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책인데 마흔이 넘어서는 나의 모습을 반추하면서 집어든 책이었다.
 

 "자기 인생의 한복판에 위치한 미지의 광활한 시간 마흔 이후 30년, 그곳이 바로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서드 에이지다."
 

 그때 여름의 한복판에서 시원한 그늘만 찾아다니며 가을을 준비하지 않았다면 지금 나에게 부는 가을바람은 어떤 색일까 생각해 본다. 은퇴 후 내게 남아 있을 것과, 지금 시기에 찾아야할 것들을 알아채면서, 막바지 여름 속에서 땀 흘리며 가을과 겨울준비를 했었던 것 같다.
 

 인생에서 여름은 참 짧다. 봄이 쉬이 지나갔듯이 이내 가을이 오고 겨울바람이 불어온다. 그렇듯이 계절속의 여름도 불과 3개월 짧은 시간이다. 무더위 속에서 보내는 시간이라 힘들고 지루하지만 1년 중 가장 분명하고 화끈하게 보내야 하는 시간이다. 청춘의 시기에 생의 끝부분도 준비 하듯이 추운 겨울을 따뜻하고 건강하게 보내기 위해서는 여름에게 1년을 잘 부탁하고 맡겨야 한다.
 

 한 그루의 사과나무는 붉은 사과 몇 알을 익히기 위해서 가지가 잘려나가는 전지가위의 칼날을 견딘다. 꽃송이가 뚝뚝 잘려나가는 아픔도, 한여름의 소낙비와 때로는 우박도 견뎌야 되듯이 해마다 찾아오는 이 삼복의 여름을 잘 견뎌내야 건강한 겨울 속으로 들어갈 수 있고 따뜻한 봄도 가볍게 만날 수 있다.
 

 한여름이 되면 나는 치악산 세렴폭포를 일주일에 한두 번 다녀온다. 주차장에서 폭포까지는 왕복 8㎞쯤 된다. 뜨거운 햇살과 훅훅 다가오는 바람 속에서 땀방울을 뚝뚝 흘리며 구룡사 매표소까지 당도하면, 산을 품고 있던 시원한 바람이 어서 오라고 등을 다독인다. 계곡도 들여다보고, 쨍쨍 빛나는 햇살도 바라보며 한적한 곳에서는 노래 한 소절도 흥얼거리며 걷는다.
 

 1시간쯤 앉아 있으면 등이 선뜩선뜩할 정도로 세렴폭포 주변은 시원하다. 올라갈 때는 힘들지만 감기 없는 겨울을 준비한다는 생각으로 올라가고, 내려올 때는 가벼워진 몸으로 휙휙 내려오게 되니 올여름 폭염도 에어컨 앞에 앉아서가 아닌 폭포까지 걸으면서 날 것 같다.
 

 한 생애의 풍요를 청춘에게 맡기듯이 땀 흘리는 시간이 꼭 필요한 계절, 올해도 여름에게 1년 건강을 부탁해야겠다. 늘 시원하기만을 갈망한다면 분명 겨울엔 추위에 웅크리는 시간이 될 것이니까.

김영희 원주문협 사무국장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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