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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환 일산이용원 대표

기사승인 2019.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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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발사는 하늘이 내게 내려준 선물"

 "두 손으로 감싸면 다 가려지는 머리카락이다. 50여 년 간 사람의 머리카락을 깎고 다듬었다. 눈 감고 가위소리만 들어도 어느 부위를 깎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우산동 일산이용원 김재환(77) 대표가 이발사를 시작한 건 20살 때 안동 이발기술학교에서 자격증을 따면서다. 1년간 기술학교에서 배운 뒤 군대에 가고 월남전에 참전한 뒤 육군 헌병 하사로 제대했다. 할 수 있는 것은 이발이었다. 안동이 고향이었는데 군대에 있는 동안 부모님이 원주로 이사 왔다. 현재 상지대학교 체육관이 김 대표 집이 있던 자리다.
 

 처음 이발소를 차린 건 태장초등학교 내 구내 이발소였다. 당시만 해도 학교마다 이발소가 있었고, 마을 주민도 이용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이발소를 찾아와 머리카락을 다듬었고 이웃 주민도 꽤 많이 찾아왔다. 설과 추석이 다가오면 이발소는 번호표를 뽑고 기다려야할 정도로 손님이 많았다.

 아이들이 너무 많아 쪽지에 번호를 적어준 뒤 운동장에서 놀다 순서가 되면 머리카락을 깎았다. 머리를 제때 감는 아이들이 많지 않다보니 머릿니나 서캐 있는 아이들도 많았다. 말린 수건을 개다보면 머릿니가 기어 다니는 건 예삿일이었다.
 

 "처음 구내 이발소로 맡고 이발 금액을 15원에서 20원으로 올렸다. 말 그대로 하루 종일 서서 하는 노동인데 너무 싼 것 같았다. 구내 이발소라서 학교 측과 상의를 했어야 했는데 그걸 모르고 인상해 학교 측에서 항의를 받고 난감했던 적도 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처음 이발소 문을 열기 전에는 손님에게 실수할까봐 9살 어린 남동생을 대상으로 수차례 시험했다. 이발을 하고 머리를 감고 드라이를 하는 것을 6번 반복하니 남동생이 "형, 너무 힘들다. 그만하면 안 될까?"라고 하소연했던 추억을 떠올렸다. 가위질을 하다 손님 귀에 상처를 내서 혼쭐이 나는 등 초보시절 누구나 겪었을만한 무용담은 무궁무진하다.
 

 

 구내 이발소를 하다 자리를 옮겨 현 상지대 정문 앞 사거리에서 이발소를 할 때는 재소자들이 단골이었던 적도 있다. 새벽4~5시면 문을 열다보니 새벽에 출소하는 재소자들이 찾아 왔던 것이다. "재소자들이 택시를 타고 일찍 문 여는 이발소가 있느냐고 물어보면 기사님들이 우리 가게로 왔다"면서 "구겨진 옷을 입고 무엇인가 어색해하는 것을 보고 재소자인 것을 눈치챘었다"고 설명했다.

 재소자 머리를 다듬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앞섰다. 이발비를 안 받기도 했고 이발 기술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단골이 되는 재소자도 있었고 엄마가 찾아와 마음잡게 도와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도 했다. 의형제를 맺기도 했고 가나안농군학교에 일자리를 안내해 주기도 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이 참 좋았다. 몇몇 재소자들과는 형, 동생하며 꽤 친하게 지냈는데 어느 순간부터 연락이 끊겼다. 잘 살고 있으리라 믿는다."
우산동에 고속버스터미널과 시외버스터미널이 있었을 때만 해도 이발소는 꽤 잘됐다.

 상지대 앞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면서 신일유토빌아파트(구 우산아파트) 앞에 진광이발소를 하나 더 운영하기도 했다.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직원을 채용해 바쁠 때 두 가게를 오갈 수 있게 했다. "쉴 틈 없이 손님이 많았다. 당시에 가게 임차료가 3만5천 원이었는데 공휴일 중 하루만 일을 해도 거뜬히 벌었다"는 김 대표.
 

 하지만 이제 모든 게 추억이 됐다. 고속버스터미널과 시외버스터미널이 단계동으로 이전한 뒤 손님이 급격히 떨어졌고 미용실이 곳곳에 생기며 이발소를 찾는 손님의 발걸음은 눈에 띄게 줄었다. 크레솔비누액을 물에 타서 가위를 소독했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자외선 소독기가 가위 소독을 맡아주는 것처럼 세월이 변했다. 50년 간 이발사로 살다보니 왼쪽 어깨가 오른쪽 어깨보다 쳐져있다.

 항상 오른손을 들어 가위질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왼쪽 어깨가 낮아진 것이다. 후배들을 가르치고 싶은 마음에 2017년 직업능력개발훈련교사 자격증을 따기도 했지만 마음만 앞설 뿐 실행하지는 못하고 있는 게 아쉽다는 김 대표.
 

 "이발사는 하늘이 내게 내려준 선물이다. 이 나이가 돼서도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큰 행복이다"라고 말하는 김 대표는 "손님들 덕분에 내 건물 짓고 노후 걱정 없이 내 가게에서 일하며 살고 있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서연남 시민기자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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