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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을 점거하라

기사승인 2019.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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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법적이더라도 예술가들이 법원을 점거하길 바란다. 그래서 지속적이고 생산가능한 문화공간이 되길 바란다

 

 도시와 사회의 지형이 바뀌면서 전국적으로 많은 수의 빈 건물, 빈 상가, 빈 주거공간이 생겨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여전히 공간 기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영세 상인들은 높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공유 주방, 공유 사무실을 찾고, 청년 예술가들은 자본이 부족해 허름한 시장 골목에서 창업하는 일도 허다하다. 폐 산업시설, 폐 공장 등을 문화예술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신화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부기관의 빈 건물 또는 여유 공간을 시민들을 위한 문화예술 공간으로 전환 시켰다는 이야기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공공기관 건물의 로비를 전시 공간 정도로 개방하는 데, 이를 두고 시민을 위한 개방 운운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스쾃(squat)'은 사전적으로 무단점거를 의미한다. 다른 사람의 비어 있는 건물을 위법적으로 점거하고 그것을 주거공간 혹은 모임장소로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스쾃'은 불법적인 행위이지만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한 주거 불균형에 대한 시위이다. 서구의 많은 예술가들은 비어있는 공공기관, 공장, 역사 등을 불법적으로 점거하여 공간의 가치를 예술적으로 재생함은 물론 시민들에게 공간의 역사적, 미학적 가치를 인식하게 만드는 행위예술로 발전 시켰다.
 

 국내에서는 2004년 오아시스 프로젝트가 그 시작으로, 당시 공사 중이던 목동 예술인 회관을 예술가들이 점거하여 이 건축물의 폐쇄적인 건축과정과 정부예산의 탈법적인 씀씀이에 대해 사회적 이슈를 이끌어 낸 사례가 있다. 한때 이런 행위는 청년예술가들의 불법적이고 무례한 행동으로 인식 됐지만 2000년대 이후로는 새로운 예술행위의 일부로 받아 들여졌다. 심지어 예술가들의 '스쾃' 운동으로 점거된 어느 공공건물은 마침내 점거했던 예술가들이 공간 재생 사업의 주체가 되어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한 사례도 있다. 

 원주 창의문화도시지원센터가 옛 법원에서 '문아리 4.3'이라는 전시회를 20여 일간 열고 있다. 비어있는 공공기관 건물을 문화공간으로 재탄생 시킨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시민들의 반응은 물론 다른 지자체의 방문도 잇따르고 있다고 한다. 시민들 입장에서는 죄짓는 일이 있기 전에는 법원에 들어갈 일이 거의 없을 텐데 전시를 통해 공간을 둘러보는 것이 큰 즐거움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이 전시가 한시적이라 20여일 후면 다시 원상태의 빈 건물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법원이 무실동으로 이전 한지 7년 째 되었지만 비어있는 옛 법원 건물이 지금껏 시민들을 위한 쓰임새를 찾지 못하고 있다.독재의 시대와 민주화의 시대 모두를 거치며 역사의 중요한 순간이 기록 되었을 법원은 건축물을 넘어 문화적 가치로 재탄생되어야 한다.
 

 타이페이 도심에 있는 굴링가 소극장은 옛 파출소 자리를 공연장으로 재생한 공간이다. 유치장은 그대로 유지되어 공연을 위한 무대가 되었고 옛 파출소 기록들은 2층 전시공간에 보존돼 건축물의 역사가 되고 있다. 타이페이 시는 이 공간을 위해 재정지원을 하고 민간예술단체가 위탁운영하며 매해 공간의 가치를 새롭게 발전시켜 시민들의 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 경우는 제도적 지원이라는 안정적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사례다.
 

 공공기관들을 설득 시키고 그들의 이해 관계를 조정하며 이를 토대로 합리적인 방안을 만드는 일은 관료주의가 만연한 우리사회에서 참 어려운 일임을 알고 있다.
그래서 차라리 불법적이더라도 예술가들이 법원을 점거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옛 법원(원주지원)이 원주의 새로운 오아시스가 되기를 바란다. 20여일의 전시공간으로 끝낼 게 아니라 지속적이고 생산가능한 문화공간으로 옛 법원이 점거되기를 바란다.

원영오 연출가.극단 노뜰 대표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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