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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창의도시' 공부

기사승인 2019.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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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를 위한 지속가능한 도시와 정주에 관한 키토 선언'을 마주하며 이상향의 실물 지도를 만진 듯 놀라웠다.

 

 수능 기간이면 지난 시절 공부 편력을 돌아보곤 한다. 학교에 다녔다기보다는 학보사와 교지 편집실, 도서실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던 내가 처음으로 공부 욕망에 뚜렷이 접하기로는 졸업 후 다큐멘터리 방송 원고를 쓰던 때, 최고조로 폭발하기로는 30대 초반 어느 날 그림책에 매혹되었을 때였다. 손에 잡히는 대로 그림책을 읽고 또 읽고 쓰고 만들고 수집하고 탐색하느라 온몸이 터질 듯했던 기억이 난다. 이후 줄곧 '그림책도시' 행성에서 '그림책 사람'으로 살아온  내가 이즈음 다시 한 번 공부 욕망에 들려 있다.
 

 몇 달 전의 일이다. 창의도시 네트워크 가입 신청을 앞두고 몇 차례인지 거듭 소집되었으나  당위성에 동의했을 뿐 감흥 없이 앉아있던 창의도시추진회의 자리에서 참고자료를 들추다 '모두를 위한 지속가능한 도시와 인간 정주에 관한 키토 선언(Quito Declaration on Sustainable Cities and Human Settlements for All)'과 마주쳤다.

 이상향의 실물 지도를 만진 듯 놀라웠다. 2016년 10월 에콰도르 수도 키토에서 열린 '주거와 지속가능 도시 발전에 관한 유엔 회의'에서 채택한 이 '새로운 도시 의제'는 패랭이꽃그림책버스와 사회적협동조합 그림책도시가 그림책이라는 창을 통해 오랜 시간 거듭 그려온 세상을 조목조목 구체적인 명제로 조형화한 것이었다.

 그 새로운 도시가 '창의성을 인정하는 도시들 간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강화하기 위한 모범 모델로서의 창의도시와 연계를 통해 구현될 것'이라는 맥락을 확인한 그 순간부터 내게 '창의도시'는 단어 이상으로 광휘를 띤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막연한 기시감과 함께 '그림책도시' 이미지에 오버랩되는 이 '창의도시'의 개념을 나의 말과 글로 정의하기란 녹록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가 한 칸을 비워 관련 자료와 책을 구해들이면서, 소장하고 있던 '예술' '창의 및 집중' 칸에 있던 책을 꺼내 나란히 추가하기 시작했다. 지난  밤에는 예술가들을 위한 창의력 워크숍으로 이름난 에릭 메이젤의 임상 사례와 피드백을 엮은 <일상예술화전략(조동섭 역, 2007)>을 옮겨 꽂았다.

 '창의creativity'에 대한  현실적 정의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듯하다. 이를테면 '일상이 창의적인 사람이 되면 문제를 본능적으로 더 쉽게 해결하고, 세상을 더 풍요로운 곳으로 보며, 삶을 더 즐길 수 있게' 된다는 창의의 효율성, 이를 구현하기 위해 '스스로를 창의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고, 자신의 상상력과 생각을 더 이용하고, 더 자유로워지는 한편 더 자제력을 갖추고, 더 큰 열정과 호기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라는 창의적 사고방식 훈련 등등 개인 개체를 염두에 둔 이 명문들을 '모두'로 치환해보자. 창의도시를 실험 발흥하고 마침내 구현해 모두가 안전하고 평화롭게 삶의 예술을 구가하는 세계를 좀 더 가깝게 감촉할 수 있지 않을까.
 

 창의도시를 표시한 세계지도를 들여다보는 것은 공부를 겸한 즐거운 해찰이다. 에딘버러가  최초의 문학 창의도시인 줄도 모르는 채 이틀 머물렀을 때, 아담 스미스 동상 앞에서 일행을 만나 코난 도일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조앤 롤링의 단골 집필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혼자 떨어져 스토리텔링 하우스와 생활사박물관과 작은도서관을 기웃거리며 돌아다녔다.

이상희 그림책 시인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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