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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게. 디어 올드마켓

기사승인 2019.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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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래시장은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연대와 협동, 상호부조의 원리가 잘 작동되고 있었다. 그들에게 그것은 공생을 위한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오해였어요. 난 당신이 적막하고 쓸쓸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외로워 보이기도 했고, 낡고 오래되고 외로운…하지만 오해였어요.
 

 아직 바깥은 깜깜한 밤 같은 추운 12월의 새벽 6시. 이미 불을 켜두었네요. 그리고, 주전자에는 대추, 생강, 도라지랑 귤껍질을 넣고 끓인 차가 보글보글 끓고 있어요. 오늘 장날에 나올 상인들의 추운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겠죠.
 

 꼭 예뻐해 주는 주인을 찾아달라며 할머니가 박스 안에 넣어 데려온 강아지 삼형제는 당신이 아직 낯선 지 서로서로 또아리틀 듯 똘똘 뭉쳐 그 작은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어요. 눈이라도 올 것 같은 오늘, 당신에게 찾아 온 아주 작은 손님들이지요.
 

 콩나물을 사러 오신 아주머니는 강아지 삼형제를 보시며 어릴 적 친정집에서 키우던 강아지 다섯 마리를 떠올렸죠. 밖에 나갔다 오는 친정엄마를 보면 그렇게나 반가워하는 강아지들이 귀여워 "산토끼야, 산토끼야"라고 부르시곤 했다는 친정엄마 생각이 난다는….
 

 요 앞 베트남 식료품점의 베트남 언니는 따뜻한 손두부를 사러왔네요. 중국동포언니는 콩나물을 사러왔고요. 인심 좋은 식당사장님들은 자꾸자꾸, 서비스음식을 주변상인이며 손님들께 내어주지요.
 

 그런데, 아까부터 이곳저곳을 헤매는 듯 한 고려인할머니가 당신은 자꾸 마음에 걸려요. 입맛이 없어서 순대국은 조금 먹힐까 해서 나와 봤는데 순대국 파는 데가 어딘지 모르겠다는…요 앞 순대국집이 오늘 문을 닫았나 봐요. 슬퍼 보이는 할머니께 쉬었다 가시라고 따뜻한 손을 내밀어요.
 

 수선집 사장님 내외분은 묵묵히 손님들 옷을 정성들여 말끔하게 고쳐주시는 걸로 유명하죠. 그리고, 나이 드신 손님들은 당신을 지켜온 터줏대감 믿음상회 할머니를 궁금해 하세요. 그럴 때면, 원주상회 사장님은 "따뜻한 봄 되면 나오실 거예요. 할머니 이제 많이 좋아지셨어요."라고 말해요.

 당신을 오해했어요. / 난 당신이 외롭고 적막해서, 사람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 하지만 아니었어요. / 사람들이 당신을 필요로 하고 있었던 거예요. / 나는, 우리는, 당신이 필요해요.

 -배우 이은아의 문막시장 프로젝트 "난 당신이 필요해요"에서 발췌
지난 3주간 문막시장을 드나들었다. 문막에 살고 있는 지난 19년 동안 늘 드나들던 곳이었지만 하루 종일 시장에 앉아 관찰해 보기는 처음이니 이렇게 다른 모습을 하고 있구나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때론 아침 6시에 나가 이 시간에 오가는 사람들은 누군지 구경하기도 하고, 시장 안 대폿집에서 수다를 떨어보기도 했다. 팀 험프리는 호주 출신의 사운드 디자이너인데 그는 시장 상인들이 듣고 싶은 기억의 노래들을 수집하고 가공해서 들려주었다. 그 덕에 그는 가곡, 트롯트, 80년대 록과 90년대 발라드까지 한국 가요 역사를 꿰뚫게 됐다.

 나오미 오타는 일본 출신의 설치미술가인데 치매에 걸리신 어머니가 평소 즐겨 하시는 '브로치'를 손수 수놓아 '디어 마이 마더'라는 전시를 문막시장 안에서 열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모시는 딸의 입장에서 돈 대신, 딸에게 해주고 싶은 말과 '브로치'를 교환하는 퍼포먼스를 했다.
 

 지난 3주간 문막시장에서는 한국, 일본, 호주 3개국 예술가 10여명에 의해 '우리 읍내'라는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 재래시장이 쇠락해 가는 건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재래시장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참여 예술가 모두가 한결같이 발견한 중요한 한 가지는 재래시장이 지역사회에 끼치는 긍정적 기능이다.

 재래시장은 우리가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연대와 협동, 상호 부조의 원리가 잘 작동되고 있었다. 재래시장은 공동체, 협동조합 등 우리가 흔히 시스템과 정책으로 접근하는 일들을 자생적으로 실천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그것은 공생을 위한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재래시장을 살리자" 보다는 "재래시장을 배우자"가 필요한 시기다.

원영오 연출가 극단노뜰대표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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