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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수원 지키느라…82세에 졸업장

기사승인 2020.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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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명 입학 24명 졸업…평균 70세

   
▲ 지난 20일 원주교육문화관에서 열린 제1회 초등학력 성인문해학교 졸업식에서 어르신 24명이 졸업장을 받았다.

지난 20일 원주교육문화관에서 열린 제1회 초등학력 성인문해교육 졸업식에서는 주름진 얼굴에 학사모를 쓴 늦깎이 학생들이 주인공이었다. 각자의 사연으로 뒤늦게 한글공부를 시작한 이들은 그동안의 설움을 해갈한 모습으로 빛나는 졸업장을 받아들었다. 배움의 시기를 놓친 것이 아쉬운 만큼 열정을 쏟아 공부에 매진한 이들에게 졸업식 내내 아낌없는 박수가 터져나왔다.

지난 2018년 도교육청으로부터 초등학력인정 성인문해교육 프로그램 인증기관으로 선정된 원주교육문화관은 30명의 신청자를 모집해 초등학력 성인문화교육 과정을 운영했다. 평균 69.7세의 늦은 나이에 모였지만, 배움에 대한 열정으로 지난 2년 간 꾸준히 학업에 정진했다. 어르신들은 한글수업과 사회, 수학, 영어, 한문 등 정규 문해교육과정을 비롯해 다양한 창의적 체험활동을 통해 뒤늦은 학창시절의 추억을 쌓아갔다.

2년 간의 교육과정을 거쳐 24명의 어르신들이 무사히 졸업을 마치게 됐다. 한 기관에서는 드물게 많은 졸업생을 배출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졸업식은 코로나19로 인해 행사를 축소해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노력을 축하하기 위해 온 가족과 지인들이 졸업식장을 가득 메웠다.

행사에 앞서 축하공연으로 문해교실의 유일한 청일점이자 막내인 김희철(55) 씨가 독학으로 배운 하모니카 연주를 선보였다. 지적장애 3급인 김 씨는 어린 시절 시설에서 자라며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이후 가정을 이뤘지만 아내 역시 한글을 몰라 부부는 일상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5년 전 문해교실에서 공부를 시작한 그는 큰 누님들을 위해 궂은일을 도맡아하며 막내의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김 씨는 "한글을 배우고 나니 식당 간판을 읽고 메뉴를 주문하는 일이 매우 수월해졌다"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중학 과정까지는 마치고 싶다"며 배움의 열정을 드러냈다.

졸업식 내내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총무 강정자(70) 씨의 졸업생 답사가 시작되자 여기저기서 눈시울을 붉혔다. 식전 리허설부터 눈물을 훔치던 강 씨는 졸업생 답사에서 후배들을 격려하고 선생님께 고마움을 전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10여 년 간 문해교실을 다녔던 강 씨는 지난해 4번의 시험에서 모두 만점을 받아 수석으로 졸업하며, 강원도교육감으로부터 우수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강 씨는 "너무나 간절하게 원했던 졸업장이었지만 막상 졸업식을 하게 되니 그동안 배우지 못했던 설움과 뒤늦게 함께 공부를 시작한 언니·동생들과의 추억이 떠올라 시원섭섭하다"며 "지금까지 배운 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 꾸준히 공부하고 복습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고령 졸업자인 명경순(82) 씨도 졸업의 기쁨을 만끽했다. 어릴 적 과수원 밤나무를 지키느라 학교에 갈 수 없었던 기억에 지금도 밤을 싫어한다는 그녀는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한글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남편과 자식들의 적극적인 권유가 없었다면 용기내기 어려웠을 일이다.

지난해 남편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한 때 슬럼프를 겪었지만 무사히 공부를 마친 것에 기뻐했을 남편을 떠올리며 포기하지 않았다. 명 씨는 "오늘따라 내가 졸업하는 모습을 보고 기뻐해줬을 남편이 더욱 생각난다"며 "중학과정에 진학해 수업을 따라갈 것을 생각하면 막막하지만 그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배우는 것이 있다면 굉장히 의미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졸업생 중 15명은 중학과정을 배우기 위해 상급반으로 진학한다. 지난해 MOU를 맺은 원주YMAC에서 예비중학반을 개설, 2년 과정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나머지 어르신들은 자발적으로 학습동아리를 만들어 한글 공부에 더 매진할 계획이다. 각자 사비를 모아 강사를 초빙해 취약한 맞춤법 등에 대해 심화 공부한다. 어르신들의 배움에 대한 끝없는 열정이 엿보인다.

한편, 원주교육문화관은 오는 3월부터 초등학력 성인문해교육 2(3·4학년)·3(5·6년) 단계 참가자를 각각 30명씩 모집해 운영한다. ▷문의: 737-1024(문헌정보과)

박수희 기자 nmpry@wonju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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