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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작가다

기사승인 2020.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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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쓰는 습관이 있는 사람은 작가다. 그래서 누구나 작가다. 처음 쓴 글은 모두 걸레다. 모든 것은 잉태기간을 거친 후에야 세상에 나오듯이…

 

 나무를 가로로 잘라 보면 짙은 색의 동그란 나이테가 보인다. 비옥한 땅에서 자랐는지, 가파른 절벽에서 자랐는지, 나이테의 흔적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만일 인간에게 나이테가 있다면 어떤 모양일까. 추운 겨울을 지내느라 일 년에 한 개씩 생기지는 않았을 테고, 분명 각자 살아온 궤적을 따라 신비한 명암이 겹겹이 드리워졌을 게다.

 사회에 첫 발을 내 딛거나, 천생 연분을 맺거나, 사업에 실패했을 때, 가느다란 물결 모양도 생기고, 치솟는 구름도 있고, 썩어  푹 파인 형체도 새겨졌을 것이다. 흔히 인생의 전환기다.

 나는 예순의 나이테를 기억한다. 퇴직을 앞두고 괜스레 헛헛하고, 애잔한 트롯이 심금을 울릴 즈음, 글쓰기를 시작해 자서전적 에세이 '수상한 부시장'을 출간했다. 치악산 계곡에서 가재 잡던 추억부터 아내와 자전거 여행 갔던 얘기까지, 지난 기억의 조각들을 긁어모아 책 한 권을 겨우 엮었다. 꼬박 일 년이 걸렸다.

 그 때 나이테가 하나 더 생겼다. 기껏해야 딱딱한 공문서 작성하는 데 익숙해진 글 솜씨가 오죽하랴. 하지만 뭔가를 정리하고 싶었다. 퇴역의 넋두리를 아름다운 마무리로 포장하고, 건재하다는 걸 부질없이 과시하고도 싶었다.

 그 책은 나 자신을 기속했다. 세상에 민낯은 오롯이 드러나고, 제 3자의 위치에 서게 됐다. 한때 살랑거리던 주변의 그림자는 사라졌다. 그제야 제복 벗고, 헐렁한 티셔츠도 소매길이도 안경테도, 내 맘대로 고를 수 있었다. 온전한 자유를 얻었다. 책 한 권 쓰느라 새겨진 나이테의 대가는 의외로 컸다.

 처음 책을 쓰면서 유명 인사의 글을 인용하고, 고사성어와 외래어도 적절히 섞어 쓰는 게 지식이 있어 보일까 싶어 고민하다가 이내 한계를 느꼈다. 그나마 좀 아는 행정 용어를 쓰자니 딱딱하고, 미사여구는 좀처럼 나와 어울리지 않았다. 남들이 내 글을 읽을 거라고 생각하니 한 줄도 쓰기 힘들었다.

 첫 에세이는 그야말로 누더기였다. 맞춤법 지키느라 문학적인 가치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출간하고 나서 몇 분에게 격려를 받았는데, 작품성에 대해서는 아무 말 없고, 그냥 진솔한 느낌이 들었단다. 빈 소리라도 글을 참 잘 썼다라고 했다면 나는 머리가 하늘 천장에 닿도록 껑충껑충 뛰었을 게다.

 나는 올 들어 원주시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리고 있는 글쓰기 모임에 매주 한 번씩 나갔다. 자신의 글을 써보고 싶어 하는 분들과 그동안의 경험을 공유했다. 자신만의 향기를 담은 예쁜 꽃들을 피우고 있었다. 어떤 이는 실직한 남편을 응원하는 글을 눈물겹게 썼다. 칠순 할머니는 딸에게 남길 글을 연필로 눌러쓰다가 노트북을 처음 샀다. 글을 수정하는데 이렇게 편한 줄 몰랐다는 말에 동아리들의 박수를 받았다.

 누구나 글을 쓴다. 편지가 줄고 통신 기기가 늘면 글쓰기는 줄어야 할 텐데 오히려 더 늘고 있다. 메시지도 보내고, 카톡도 하고, 댓글 논쟁도 벌인다. 신춘 문예지에 실리거나, 베스트셀러가 되어야만 작가가 되는 게 아니라, 글 쓰는 습관이 있는 사람은 작가다. 그래서 누구나 작가다. 여행의 느낌을 남기고, 일상을 쓰고, 간밤의 꿈을 옮긴다. 그래서 말인데, 기왕 쓰는 김에 보다 의미 있고 작품성 있는 글을 한 묶음씩 엮어내기를 독자에게 권한다.

 처음 쓴 글은 모두 걸레다. 모든 것은 잉태기간을 거친 후에야 세상에 나오듯이 수십 번 다듬는다. 고통과 설렘이 뒤섞인다. 그 과정에서 생긴 짙은 나이테는 자신을 치유하고 새로운 문으로 안내한다. 글 쓰는 삶을 위한 한 해로 살아보는 건 어떨까.

최광철 작가 wonjutoday@hanmail.net

<저작권자 © 원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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