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항일의병운동 중심' 원주를 생각한다

기사승인 2020.06.01  

공유
default_news_ad1

- 원주는 을미의병, 을사의병, 정미의병 등 항일의병운동의 중심지였다. 이런 사실을 시민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기념관 건립·프로그램 개발 등 원주의 역사를 제대로 기억해야 한다

 

 6월 1일은 '의병의 날'이다. 하지만 '의병의 날'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설령 기억하고 있더라도 일상에 묻혀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원주는 항일의병운동의 중심지였다. 현재 원주에는 항일의병운동 관련 유적지도 여러 군데 있다. 김사정 의병장(을미의병) 무덤이 지정면에 있고, 승려로 을미의병에 참여했던 무총대사 부도탑이 치악산 구룡사 부근에 있다. 정미의병 당시 13도 창의군의 '서울 진공 작전'에 참여했던 이은찬 의병장 추모비가 학성동에 있다.

 군대해산에 저항하며 해산군인들을 이끌고 70여 차례의 전투를 치르다 순국한 민긍호 의병장 무덤은 봉산동에 있다. 군대 해산 당시 원주진위대에서 정위(대대장 대리)였던 김덕제는 민긍호와 더불어 항일투쟁을 결의하고 의병 규합, 탄약 분배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의병 봉기 이후 강릉 방면으로 진출해서 양양, 고성, 통천 일대에서 지속적으로 의병투쟁을 이어나갔다.

 항일의병운동은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령에 반발해서 일어난 을미의병, 을사늑약 체결에 저항했던 을사의병, 군대해산에 반발해서 일어난 정미의병 3단계로 구분된다. 일제 침략기 항일의병운동의 역사를 통틀어 을미의병, 을사의병, 정미의병 시기 모두 의병봉기가 일어났던 지역은 원주가 유일하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원주 시민은 많지 않다.

 왜 그럴까? 이런 사실을 알려주기 위한 노력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항일의병운동의 중심지이면서도 6월 1일 '의병의 날'을 기념하는 기념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항일의병운동의 중심지 원주의 의미를 소개하는 모습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 결과 원주 시민들은 내 고장의 항일의병운동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고 기념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제대로 기억하고 기념하지 못한 결과 원주 의병 유적지 중에는 안타까움이 더해지는 곳도 있다. 친일파 정일권의 자취와 동거 중인 봉산동 민긍호 의병장 묘역, 사방을 출입금지 밧줄로 둘러 출입조차 어려운 학성동 이은찬 추모비 등이 그렇다.

 항일의병운동의 중심지 원주를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항일의병운동 관련 기념행사는 광복회에서 주관하는 민긍호 의병장 묘제와 중·고등학교 역사 동아리 학생들이 주관하는 민긍호 의병장 추모 행사 이외에는 없다.

 인근 제천시는 제천의병전시관, 의병도서관, 자양영당 등 다양한 의병 관련 시설을 운영하고 제천 의병제를 진행해오고 있다. 춘천은 유인석 의병장을 중심으로 의암학회를 만들고 의병 마을을 조성하여 연구 결과를 지역에 확산시키고 있다.

 제천 항일의병과 춘천 항일의병 중 대부분은 원주를 중심으로 봉기해서 활동했던 인물을 포함하고 있다. 제천과 춘천은 항일의병운동을 계승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뒷받침되어 '항일의병의 도시'라는 이미지가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항일의병운동의 중심지 원주에서는 '항일의병의 도시'라는 이미지가 낯설기만 하다.

 항일의병운동의 중심지 원주를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항일의병운동 기념관'을 건립하고, 원주지역 항일의병운동을 주제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둘레길 코스 중 하나를 '원주 항일의병운동의 길'로 개발해서 '의병의 날' 기념 시민 걷기대회를 기획해보는 것도 좋겠다. 국제걷기대회 주최 도시라는 이미지에 항일의병운동 중심지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기원 원주고등학교 교사 wonjutoday@hanmail.net

<저작권자 © 원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