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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를 살리자

기사승인 2020.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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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도시 집중화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 왔다. 하지만 이제는 삶의 마일리지를 좁혀야 할 때이다

 

 도심은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곳이다.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고 교육과 의료 서비스가 안정적이며 동시에 여가를 즐길 수도 있다. 사람들이 도심을 떠나지 못하거나 도심의 편리함에 익숙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언제부터 우리 사회가 도시 집중화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 왔는지 궁금해진다. 인구가 늘어야만 하고 그래서 도시 경제력이 커져야 하고 더 많은 대학, 기업, 공공기관이 들어와야 하고 이런 일련의 생각들이 의심없이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인구가 줄어들면 당장이라도 도시가 망할 것처럼 염려해 왔다. 인구가 줄어들면 국회의원도 줄고, 예산도 줄고, 공무원도 줄고, 일자리도 줄고 이런 당연한 것들을 막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이번 팬데믹 현상 이후 우리 사회 가장 큰 변화 가운데 하나는 도시를 떠나겠다는 사람들의 욕구가 크게 늘어났다는 것이다. 은퇴자들의 귀촌, 귀농으로만 여겨졌던 탈도시화가 감염병 사태를 겪으며 전 세대에게 대안적 라이프스타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병원, 학교, 쇼핑센터, 영화관, 식당뿐만 아니라 대단위 밀집 거주지구인 아파트까지, 일과 삶의 모든 공간이 일순간 전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현상을 겪으며 사람들은 다른 방식의 삶, 다른 방식의 일, 다른 방식의 관계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인구 100여 명도 안 되는 작은 마을에서 살아 온 지도 20여 년이 된다.

 외부에서 동네로 들어오고 나가는 인구도 많지 않을 뿐 아니라, 이웃 간에 가까이 대면하지 않아도 골목길 너머로 소통과 교환이 가능하다. 웬만한 것들은 동네 안에서 해결 가능하니 쇼핑을 할 일도 많지 않다. 병·의원 방문을 위해 읍내에 나가도 적은 인구 탓에 서로 크게 대면할 일도 많지 않다.

 코로나-19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아 일상의 변화는 그리 크지 않다. 동네 안에서 생산하고 소비하고 휴식하고 일하는 것에 익숙하다. 팬데믹 사태 이전에도 도심에 나가는 일이 많지 않았으니 동네 안에서의 모든 일들이 평화롭다.

 동네 안에 자리 잡은 공연장은 워낙 객석 수가 적은 지라, 공연 관람을 위해 방문하는 외부 관객들을 관리하는데 특별한 문제가 없다. 공연 전 기다란 줄을 설 필요도 없고, 혹 일찍 오는 방문자들은 동네 어귀에서 시간을 보내다 시간 맞춰 공연장을 입장하면 그걸로 끝이다.

 동네가 살아나야 한다.
 동네 안에서 한 바퀴 돌면 많은 걸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작은 구멍가게도 있어야 하고, 커피집도 있어야 하고, 예술가도 있어야 하고, 갤러리도 있어야 한다. 텃밭을 일궈 나눠주는 이도 있어야 하고, 책방주인도 있어야 하고, 동네의원도 있어야 한다. 아이도 있고 노인도 있어야 한다. 생산과 소비, 여가와 건강이 모두 해결되는 동네가 살아나야 한다.

 어느 날 한 부부가 산책하듯 방문했다. 폐교이후 문화시설이 된 (구)후용초교를 졸업한 졸업생이었다. 어릴 적에는 이 학교와 운동장이 엄청 커보였는데, 성인이 되어 보니 학교가 작아진 것 같다는, 어쩌면 누구든 느껴봤음 직한 소회를 남겼다. 유년시절 우리의 세계는 집과 학교, 친구들과 뛰어놀 동네 골목이 전부였지만 충분히 행복하고 충만했다. 삶의 마일리지를 좁혀야 할 때이다. 지근거리에서 많은 것들을 해결하며 사람 사이 관계망도 더 깊이 있게 회복할 수 있는 '우리 동네'를 만들어 가야 한다.

 동네를 통해 세계를 보고, 동네를 통해 국가와 사회를 관찰하고 소통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소규모 지역으로 사회는 재편되고 마을을 중심으로 한 일상은 더욱 더 활력을 찾을 것이다.

 우리 사회 전체가 일과 삶의 패턴을 새로 짜야하는 시기임에 틀림없다. 정책도 법도, 주거방식도 업무방식도 새로 연구해야 한다. 수천 명이 밀집할 수 있는 관광지, 대단위 쇼핑센터, 대규모 공연장, 초고층 아파트 등은 펜데믹을 겪은 세대들에게는 기피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결정된 정책이라도 팬데믹 현상을 통해 새로 들여다보고 수정해야 한다. 문화예술, 주거, 교통, 관광, 체육, 복지 등 모든 분야에서 서둘러 팬데믹 이후의 사회를 점검하는 것이 감염병 확산을 잘 막았다는 자축보다 더 중요하다.
동네가 살아야 사회가 산다.

원영오 연출가/극단노뜰 대표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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