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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다움의 정신은 어디에 있는가?

기사승인 2020.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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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 50만이 되면 지금보다 삶의 질이 그만큼 좋아질까? 개발 못지않게 지역공동체의 내실에도 더 힘써야 한다.

 

 강원도 원주라고는 치악산밖에 모르던 필자가 원주로 이주하게 된 것은 순전히 직장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15년간 원주에서의 객지 생활. 그런 나도 원주사람이 다 되었는지 밖에 나갈 때 원주 자랑거리 하나를 꼭 가지고 간다. 그것은 바로 원주다움의 정신과 그 자산들이다.

 치악산 자락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원천석 묘소니 봉산동 장일순 생가니 원동성당이니 하는 곳을 돌아보면서 나름 알게 된 것이다. 유기농업에 관심이 많은 필자가 예전에 학회 등 외부 모임에서 원주의 생명·협동운동을 유기농업과 잘 섞어 이야기하곤 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많이 공감하는 것 같아 우쭐해지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원주 이야기가 많이 알려져서 그런지 반응이 예전만 못하다. 역으로 원주를 벤치마킹 해 가던 다른 지역을 배워야 할 경우도 많다.

 지금 원주는 협동사회 운동의 메카에서 사회적경제의 메카로 발돋움하려 하고 있다. 자연스러운 전환이다. 원주에는 많은 사회적경제기업이 모여 선도적으로 사회적 순환의 관계망을 엮어 놓았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에는 없는 견고한 뿌리가 있기 때문이다.

 원주는 협동조합의 도시였다. 협동조합은 사람들의 자생적 결사체이자 운동단체이다. 그런데 어느 날 사회적기업이 등장하면서 사회적경제기업이라는 난해한 용어도 함께 데리고 왔다. 경영체로서의 협동조합, 마을기업, 자활기업도 뒤따라 왔다.

 덕분에 사회적경제라는 큰 바구니가 만들어졌다. 그러더니 그 안에서 사람들의 운동단체가 사업 경영체로 조직형태 전환을 하기 시작하였다. 사회적경제기업화와 탈협동조직화가 동시에 일어난 것이다. 이를 촉발시킨 구체적인 사건은 두말할 것도 없이 22년 전 소위 IMF 외환위기이다.

 개발시대를 거치며 원주는 민주화와 협동화를 통해 시장만능주의에 대응하며 원주다움을 키워 왔다. 그런데 한 바구니에 달걀을 너무 많이 담은 것일까, 뭔가 큰 바구니가 불안정해지는 징조들이 어렴풋이 감지되고 있다. 2020년 6월 말 현재, 전국에는 2만4천723개, 강원도에는 1천389개의 사회적경제기업이 있다.

 원주시의 사회적경제기업 수는 강원도에서 약 15% 비중이며, 춘천시는 17% 가까이 된다. 협동조합의 수조차도 춘천시보다 꽤 적은 데, 인구 비례를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기업 수는 상당히 허수도 있으니 그렇다 하더라도 정신적인 면에서는 춘천은 물론이고 여느 다른 도시에 못지않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지난 시절 원주는 가난과 소외, 독재에 굴하지 않고 협동의 힘으로 건재해 왔다. 그런데 지금 원주다움의 정신은 어디에 있는가? 원주다움의 정신은 경제난이라는 파고에 휩쓸려 엉겹결에 세대교체를 겪게 되었다.

 세대 간 비대칭적인 가치의 대물림, 리더십의 약화와 분산이 드러났다. 이때 외부에서 많은 정책자금 지원이 들어왔다. 어려울 때 큰 힘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이제 스스로의 힘보다는 외부의 지원에 의존하는 것이 익숙해진 것이다.

 정부가 할 일을 대행하는 듯한 경우도 많이 생겼다. 빠르게 가치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신세대에게는 원주다움의 정신이 조금씩 관심 밖으로 밀리고, 사업 추종에 마케팅 활동하기 바쁘다. 그 사이를 사업 논리와 기업 정신이 살며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어쩌면 그렇게 굳어져 가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칼로리는 높은데 영양 가치는 낮은 인스턴트식품처럼….

 지금 우리는 코로나 19의 장기화로 지난 IMF 체제 이후 지역 공동체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고통스럽게 체험하게 하고 있다. 더욱이 제4차 산업혁명의 급진전은 사람 사이의 공동체 감수성을 더욱 둔화시킬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원주다움의 정신보다는 시장과 적당히 타협하면 될까? 영리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을 사회적경제기업에 적당히 이식시키면 경쟁력이 강화될까? 그 경쟁력이 정체성보다 더 지속가능한 마케팅 전략이며 브랜드가 될까? 계산·검산이 필요하다.

 원주는 50만 도시를 꿈꾸고 있다. 지방소멸의 추세에도 불구하고 강원도에서는 원주만이 그 꿈을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 과정에서 원주시가 인구이동 빨대 역할을 하여 주변의 격오지부터 소멸화를 가속화시킬 수도 있다. 인구 50만 도시를 위해서는 일부 난개발을 수반할 수도 있다. 노동집약적 반환경산업도 들어올 수 있다.

 잠시 기후변화 시대를 상기해 보자. 원주보다 규모는 작지만 슬로우 시티, 생태도시, 공동체 도시, 스마트도시로 고루 잘사는 국내외 도농복합도시를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 교통·통신의 혁명으로 사통팔달이 된 지금, 인구 50만이 되면 지금보다 삶의 질이 그만큼 좋아질까? 개발 못지않게 지역공동체의 내실에도 더 힘써야 한다.

 다시 원주 정신의 원류인 치악산 둘레길로 발길을 돌려 본다. 운곡 선생의 절의를 기억하자고 원주 얼 교육관을 만들었다. 무위당 선생의 사회혁신 정신을 되살리자고 원주생명협동교육관을 만들고 있다. 우리는 이 일을 계기로 하여 원주다움의 정신을 비효율적인 것으로 생각하여 돈과 신자유주의적 경영 논리에 잠시 편승하고 있지 않은지 반추해 보는 게 좋겠다.

 지금 우리는 협동운동의 메카 원주가 아직도 건재하다고 자부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적경제의 메카를 꿈꾸려거든 지금 다시 치악산 둘레길을 걸어 볼 일이다. 원주다움의 브랜드 가치 아래로 새로운 시대정신을 받아들여야 한다. 원주는 자격이 충분히 있다. 너무나 당연한 말 이라서 기회가 있으면 하려 하지만, 그러려면 사회적경제를 책임지고 갈 건실한 활동가 그룹의 육성이 선행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구조물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닌 것이 이 분야의 일이다.

최덕천 상지대학교 교양학부 부교수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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