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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임차인이다

기사승인 2020.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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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 걱정 없는 세상, 적정 기준갖춘 최소한의 주거권이 보장된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게 국가와 지방정부의 기본 책무

 

 "집 주인이 집을 팔아달라고 하는데 매입 의사가 있으신가요?" 갑작스런 부동산업체의 전화를 받곤 마음이 복잡했다. 오는 11월 중순이 전세 계약 2년 만기이기는 하지만 한 차례 더 연장 계약해서 살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날벼락이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분양받아 살던 아파트는 구도심에 있는 작은 단지 아파트였다. 20여 년이 넘으니 온수 배관이 터져 아랫집 욕실 천장으로 물이 번지고 보일러도 망가지고 손 볼게 하나 둘이 아니었다.

 선출직이라는 직업상 거주 이전의 자유가 제한적이라 이사 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가  의원직을 마치고 나서 마침 운 좋게 살던 집을 팔고 그만큼의 돈을 대출 받아 지금 사는 집으로 전세를 들어왔다. 2년 계약 기간이 끝나면 또 이사를 가야 하니 짐도 다 풀지 못한 채 살고 있었는데 이사 온 지 6개월도 안돼 집주인이 바뀌었다.

 새 주인은 세종시에 사는 사람으로 3천만 원으로 전세 끼고 우리 집을 샀단다. 3천원 짜리 물건을 사도 살펴보고 사는 법인데 한 두 푼도 아닌 '집'을 사면서 한번 들여다 보지도 않고 샀다는 얘길 듣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갭투자라는 거구나 하고 놀랐다. 전화 통화로만 만난 새 주인은 "오래 오래 살아달라"고 했다. 적어도 2년 만에 다시 이사 나가야 하는 걱정은 덜었구나 싶어 오히려 다행스러웠다.

 그런데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고 오래 살아다라던 집주인이 매입한지 1년도 안돼 6천만 원에 집을 팔아 달라고 내놨단다. 맘 놓고 있었는데 또 다시 이사할 집을 찾아 헤매야 하고 이사비용 들 걸 생각하니 대출받는 김에 더 받아 집을 샀어야 하는거 아니었나 속이 쓰렸다.

 그러던 차에 임대차 3법이 통과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29일 법사위에 상정된 뒤 사흘 만에 국무회의를 통과, 전광석화처럼 시행이 됐다. 세입자가 2년 계약이 끝나면 추가로 2년 연장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해 최소 거주 가능 기간이 4년으로 늘어났고, 과도한 전·월세 인상을 막기 위해 재계약 때 임대료 상승폭은 기존의 5% 이내로 지방자치단체가 정하도록 했다. 1989년 계약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린 이후 31년 만에 전·월세 관련 제도가 바뀐거라고 한다. 마치 우리 가족을 위한 맞춤 법안 개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임대차 3법을 악법으로 몰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국민의 38%가 전·월세 주택에 살고 있다. 임대인보다 임차인의 수가 절대적으로 많을텐데 이번 법안 개정으로 금방 전세가가 폭등하고, 전세는 다 사라져 월세로 바뀌고, 세입자의 주거 부담이 더 커질거라며 법안을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니 무슨 일인가? 임차인을 이야기하면서 임대인의 이익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사회 불안을 부추기고 시장의 혼란을 선동하기 때문이다.

 전세가 사라지고 월세가 늘어나는 것은 임대차 3법 개정 때문이 아니라 금리가 낮아 전세를 놓기 보다 월세를 받는 게 훨씬 수익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세를 놓는 사람은 전세금을 빼 주고 월세를 돌릴만한 자본이 없기 때문이다. 돈 많은 사람은 구태여 전세를 놓을 필요가 없다. 이게 2년에서 4년으로 늘어난다고 해서 4년 안에 어디서 엄청난 돈이 조달되거나 소득이 생기지 않는다면 전세를 그대로 유지할 수 밖에 없으므로 전세 물량이 감소한다는 건 말이 안된다.

 오히려 국민의 38%에 이르는 전·월세 임차인들이 전셋값 폭등에 대한 걱정없이 보다 안정된 주거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학령기간에 맞춰 최소 6년 이상은 임대차 기간이 보장돼야 하고 빌려 쓰는 집에서도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

 또한, 비닐하우스나 고시원, 쪽방이나 숙박업소 등 비거주시설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최저기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을 위한 주택 정책을 펼쳐야 한다. 집 걱정 없는 세상, 적정 주거 기준을 갖춘 최소한의 주거권이 보장된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게 국가와 지방정부의 기본 책무이다. 더 이상 집이 돈벌이의 수단이 되지 않는 강력한 수단이 필요하다.

 지난 주말 부동산업체에 들렀다. 바뀐 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임차인으로서 앞으로 2년 더 전세 계약을 연장하고 싶다는 의사를 당당하게 밝혔다.

용정순 (전)원주시의원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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