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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산성 옛길, 복원합시다

기사승인 2020.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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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주의 역사 고스란히 살아있는 해미산성, 트래킹 강점 살리고 원주 역사 재조명하는 관광사업으로 연계하면 좋을듯

 

 녹색 옷자락을 벗은 수양버들 가지들이 물 마른 계곡 끝자락에 서서 바람결에 흐트러지고 있었다. 화전민인 남편의 새참을 짓기 위해 쌀을 머리에 이고 지나다 잠시 머물러 목도 축이고 목덜미의 땀도 행주치마에 닦았을 넓은 바위에 앉았다.

 궁예의 장인인 양길이 세웠다는 해미산성으로 가는 옛길을 내려다보니 흔적이 점점 사라지는 중이었다. 계곡을 지나고 산중턱에 다다르니 동행한 이들의 탄식과 푸념이 줄을 잇는데 어릴 적 모습에 대한 회상과 간간이 사라진 옛길에 대한 아쉬움들이다. 어린 나이에 다니던 길을 육십 넘어 오르는 중이지만 아직 옛 향수(鄕愁)가 소복하게 간직되어 있어 옛길을 육감적으로 찾아내며 내딛는 발걸음과 가슴에 동경이 솟는 듯하다.

 원주에서는 가장 오래된 도로 중 하나였다는 해미산성으로 가는 진입로는 옛 지적도에도 삽입되었다고 한다. 한 시간 남짓 오르니 한 자 정도의 견치돌이 여기저기에서 갈잎에 덮인 채 너부러져 있는데 해미산성을 축조했던 돌들이 장마로 쓸려 내려온 것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자연석이 아닌 돌을 모아 가공하고 이를 이용해 성벽을 만든 것이 정성을 많이 들였었나 보다. 사금파리들도 눈에 띈다고 하니 옹기 터도 있었고 남쪽에는 옹달샘도 있다고 한다.

 드디어 깔끔하게 쌓아 올린 해미산성 성벽이 여기저기 보이고 주변을 둘러보니 아름드리나무들이 빼곡하다. 소나무는 밑동부터 여러 갈래로 갈라지며 자라 특이하고 자작나무는 둘레가 50cm가 넘고 손바닥만한 껍질이 겹겹을 이루는데다 낙엽송은 어림잡아 50m는 넘어 보였다. 한참을 더 오르자 우리를 맞이하는 방석소나무는 별반 감성적이지 않은 필자의 가슴에도 훈김이 스미게 했다. 이런 곳에 이런 나무가 있단 말인가?

 시내에서 멀지않은 곳인데다 오르기도 그리 힘겹지 않은 곳에서 수백 년 동안 자란 흔적과 헤아리지도 못할 만전창( 卍田窓)살을 만든 가지들, 외로이 의연하게 서서 산에 오르는 사람들에게 호사(豪奢)를 누리게 한다.

 가져온 막걸리를 한 잔 붓고 가지들이 겨울철 눈에 참사당하지 않게 부목을 설치한 후 치악산 상고대와 백운산 계곡자락, 원주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는 성벽을 따라 되돌아 나서다보니 옛 성터를 복원해 관광지로 만든 여러 지자체들이 떠오르며 부러움이 스민다.

 이 옛길은 원주와 역사를 함께 했을 것이다. 신라시대 말, 복잡한 정치상황에서 원주는 그 중심 중에 하나였고 영원산성과 금두산성, 그리고 해미산성으로 이어지는 지금의 신림, 금대, 반곡관설은 북원을 사수하던 첨병들이 기숙했을 곳으로 궁예가 대업의 입지를 세우고 지금의 영월·평창·제천을 정복할 때 본거지였을 것이다. 이때 해미산성을 오르내리던 곳이 지금 옛길의 근본일 테고 근래에는 일제 강점기와 6.25를 겪으며 힘겹게 살았던 주변지역 주민들이 이 길을 따라 삼삼오오 모여 들며 화전을 일궜을 것이다.

 지금도 그 시절의 집터와 화전의 옛 자취는 고스란히 남아있는 편이었다. 그리고 여러 갈래로 해미산성까지 오르던 길들은 이정표 없이도 오르는데 문제가 없을 정도이다. 큰돈 들이지 않아도 길을 복원할 수 있을 것 같다. '트래킹의 강점도 살리고 원주 역사를 재조명하는 관광사업으로 연계하면 참 좋겠다'고 생각하며 하산했다. 하산을 하는 내내 해미산성에서 흘러내려 능선에 박혀 있던 성벽에 쓰였던 돌과 이 돌을 만들기 위해 땀을 흘렸을 석공의 모습이 떠올라 숙연했다.

곽문근 원주시의원 wonjutoday@hanmail.net

<저작권자 © 원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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