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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역을 추억하며

기사승인 2021.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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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시간 사람들의 발이 되어주고 우리 아이에게 놀이터와 선생님 되어주느라 수고한 원주역, 고마워! 수고 많았다 정말로

 

 며칠 전 근무하는 직장으로 전화가 한 통 왔다. 학성동에 있는 원주역이 곧 이사를 가는데, 원주역과 관련 기억이 있는 학성동 주민이 있으면 인터뷰를 할 수 있도록 섭외를 도와 달라는 요청이었다. 적합한 사람이 누구일지 고민하다보니 나도 원주역과 꽤 많은 추억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에게 원주역은 서울에 볼일이 있을 때 가끔 이용했던 곳 중에 하나일 뿐이지만, 나의 아이에게는 꽤 특별한 장소이다. 5살 내 아이는 아기 때부터 기차를 무척 좋아했다. 기차가 주인공인 만화를 가장 좋아하고, 기차 소리가 나는 장난감을 줄곧 가지고 놀았다.

 아이가 걷기 시작하고 이제 좀 사람 같아 보이게 되던 즈음 나는 잘못된 판단을 하게 된다. 아이가 이젠 기차를 탈 수 있을 것 같다는. 문화센터를 가거나, 시장을 갈 때 10분 정도 같이 버스를 탄 적은 있지만 한 번도 기차를 타본 적은 없었는데, 그렇게 좋아하는 기차의 실물을 보여주고 직접 타 보게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것이다.

 나는 청량리로 가는 기차의 두 좌석을 용감하게 예매하고 남편과 원주역으로 갔다. 아이는 역으로 들어오는 기차를 보며 너무 좋아 괴성을 질렀고, 나는 '역시 난 좋은 엄마'라는 성취감에 취했다. 기차를 타고 신기하게 둘러보던 아이는 기차가 출발하고 얼마 되지 않아 지겨워하며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고, 나와 남편은 번갈아가며 아이를 달랬지만 청량리역에 도착한 아이는 흥분한 건지 피곤한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역 한복판에서 코피까지 쏟았다.

 청량리역에서 이것저것 계획한 것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시간이 가장 빠른 기차를 예매했고, 돌아오며 1시간을 또 다시 기차에서 아이를 보필하며 그야말로 탈탈 털렸다.

 그리고 나서 내린 결론은 '너무 멀리는 가지 말자'였다. 그 후로는 양평, 제천과 같이 30~40분정도 걸리는 역으로 갔다. 그게 교통비도 저렴하고, 무엇보다도 아이가 아슬아슬하게 참을 만한 거리였기 때문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51번 버스를 타고 원주역에 내려, 기차를 타고 30분정도 가서 역 앞에 있는 편의점에서 간단히 군것질을 하고, 돌아가는 기차를 기다리며 역 안에서 기차와 사람 구경을 하고 다시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코스였다.

 우리는 할 일 없는 주말에 자주 목적 없이 가까운 거리를 기차를 타고 갔다가 오는 일을 반복했다. 친정엄마는 돈 아깝다고 하셨지만, 나는 '키즈카페만 가도 몇만 원인데!'라며 목적 없이 기차 타는 일에 당위성을 부여했다. 여러 번 반복하고 나니 아이는 이제 원주에서 서울로 가서 환승하고 전주까지 가는 3시간 넘는 기차 여행도 가능하게 되었다.

 기차 안에서 어른과 아이의 1시간은 다르다. 어른은 유튜브를 켜 동영상 몇 개만 봐도 1시간이 금방 가고, 팔짱끼고 편하게 잠을 잘 수도 있다. 책을 읽기엔 오히려 너무 짧은 시간이다. 그러나 아이에게 있어 기차에서의 1시간은 어마어마하다. 나는 아이가 기차에서 소음으로 다른 사람의 눈총을 받지 않게 하기 위해 그동안 잘 먹이지 않았던 젤리도 10봉지 챙기고, 색칠공부도 준비하고, 기차요금보다 훨씬 비싼 장난감도 급하게 기차역 안 편의점에서 산다.

 하지만 그렇게 애써 준비한 것들은 다 5분 컷이다. 그 다음부터는 나의 노력도 있지만, 아이 자신과의 싸움이다. 기차에서 얌전히 앉아 있는 아이는 그냥 멍하니 있는 것이 아니다. 돌아다니고 싶고, 앞좌석에 참견하고 싶고, 소리치고 싶은 자신과 내내 싸우고 있는 중이다.

 아이와 함께 있다 보면 아이의 참을성과 나의 인내심이 박자를 맞춰야 하는 순간이 자주 있다. 우리는 그 순간을 대처하는 요령을 기차에서 많이 배웠다. 내가 백 번 '기다려라, 참아라, 안 된다, 너 왜 그러니' 라고 교육을 빙자해 잔소리를 했던 것 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아이는 기다림과 참을성을 배웠다.

 매번 기차를 탈 수는 없으니, 우리는 원주역 근처에서 볼일이 있을 때면 앱으로 기차 시간을 확인하고, 시간이 비슷하다 싶으면 원주역에 주차를 하고 역 안으로 들어가 기차가 들어오고 출발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자주 했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경적소리와 함께 기차가 들어올 때 아이가 펄쩍펄쩍 뛰며 손을 흔들면 대부분의 기관사분들은 꼭 같이 손을 흔들어주셨다. 그 모습을 보면 마음이 찡하면서 그 순간만큼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은 부모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 원주역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기차를 보여주는 것이 우리 가족에게는 일종의 이벤트였다.

 원주역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기차를 보여주는 것이 남편과 나,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주어진 '미션'이었으며, 그런 일들이 우리 가족에게는 일종의 이벤트 같았다. 원주역 주차비 몇 백 원으로 참 오랫동안 재미있게 잘 놀았다.

 아이는 시멘트 기차에는 시멘트만 탈 수 있다는 것을 배운 뒤 요즘엔 시멘트가 되고 싶어 한다. 이제 남들이 흔히 타는 일반 기차는 좀 시시해진 것 같다. 좋은 부모가 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앞으로도 기차를 사랑하는 아이의 순수한 마음을 지지하고 응원해주고 싶다. 긴 시간동안 참 많은 사람들의 발이 되어주고 우리 아이에게는 놀이터와 선생님이 되어주느라 수고한 원주역, 고마워! 수고 많았다 정말로.

김은영 학성동도시재생현장지원센터 사무국장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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