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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원의 역사 한 스푼, 사라지는 중앙선⑤-삼광터널

기사승인 2021.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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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 가을 수학여행의 '악몽'

   
▲ 1970년 수학여행을 가던 고교생들을 태운 열차가 터널 안에서 정면충돌하면서 '수학여행의 악몽'이라는 아픈 기억이 남아있는 삼광터널.

1970년대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에 다녔다.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수학여행을 가려고 무진 애를 쓰셨다. 옆 반 담임 선생님을 설득하고, 우리에게 수학여행이 왜 필요한지 여러 번 설명해주셨다. 하지만 수학여행은 갈 수 없었다.

중학교 때는 아무도 수학여행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어떤 학교가 수학여행 길에 사고가 나서 수학여행이 금지되었다는 얘기만 얼핏 들었다. 어디서 어떻게 일어난 사고였는지 사고를 당한 학교가 어느 학교였는지 얘기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특별히 우리 학교만 못 가는 게 아니라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50년 세월이 흐른 후에야 수학여행 금지 배경을 알게 되었다. 1970년 10월 원주 봉산동 철길 따라 운행하던 열차와 반대쪽에서 오던 열차가 삼광터널에서 충돌한 대형 사고였다. 당시 사건을 보도한 신문 기사는 다음과 같다.

17일 오전 11시 15분경, 원주시 봉산동 중앙선 삼광터널 안에서 서울발 제천행 '제77 여객열차'와 제천발 청량리행 '제 1508 화물열차'가 정면 충돌, 77 열차 편으로 부산, 울산 방면으로 수학여행 가던 인창고, 보인상고, 보성여고 등 서울 시내 3개 남녀 고교생 700여 명 가운데 인창고교 인솔 책임자인 교감을 비롯한 10여 명이 사망하고 50여 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부상 학생들은 원주 시내 기독병원 등 민간병원과 야전병원 등에서 가료 중이나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 1970. 10월 17일자 기사)

마주오던 열차 충돌 사상자만 60여 명
중앙선 열차집중제어장치 이상이 원인

▲ 삼광터널 내부 모습.

사고 원인은 중앙선 열차집중제어장치 이상으로 밝혀졌다. 원주역에서 수학여행 열차를 출발시킨 후 제천의 화물열차를 출발하지 못하도록 신호를 바꾸고 선로 전환기를 본선에서 분리시켜야 했는데 선로가 분리되어 있지 않았고 마주 보고 달리는 열차에 정지 신호도 전달하지 못했다고 한다.

삼광터널 열차 충돌 사고가 일어나기 직전에도 수학여행 관련 사고가 있었다. 1970년 10월 서울 경서중학교 학생 77명을 태운 버스가 충남 아산 현충사에 갔다가 돌아오던 길에 아산 모산역 철도 건널목을 건너다가 달려오던 열차에 들이받혀 밀려가다 불길에 휩싸인 사건이었다. 이 사고로 학생 45명이 숨지고 30명이 중상을 입었다.

1970년 10월 벌어진 이 두 사건을 계기로 수학여행이 금지되었다.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지금 수학여행 못 가면 평생 못 갈 수도 있다며 적극 추진하셨다. 하지만 윗전에서 허락하지 않아 좌절되고 말았다. 중학교 진학 대신 공장 노동자, 가게 점원 등 일자리를 구한 친구들은 선생님 말씀이 현실이 되고 말았다.

수학여행이 좌절된 후 선생님은 카메라를 가져오셔서 학교 곳곳을 배경으로 우리들의 사진을 찍고 인화해서 나누어주셨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던 수학여행을 추진하려 애쓰셨던 선생님의 마음을 이제야 조금은 헤아릴 수 있을 거 같다. 선생님은 지금 어디 계실까? 뵙고 싶다.

이기원 원주고 역사교사 wonjutoday@hanmail.net

<저작권자 © 원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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