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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풀공예가 신동길(81·귀래면 주포리) 씨

기사승인 2021.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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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짚풀공예는 우리 민족 삶 그 자체"

   
▲ 완성된 작품을 살펴보는 신동길 씨. "도자기나 한지, 누비 등 전통 생활공예들이 대부분 체계적으로 계승되고 있는 것과 비교해 유독 짚풀공예만 외면 받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유년시절 자연스레 익혀…짚풀공예공모전 대상만 4회

곡물을 주식으로 생활하는 농경민족에게 곡물을 탈곡하고 남은 짚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이고 친숙한 재료 중 하나이다. 자연스럽게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곤 했다. 볏짚을 꼬아 만든 새끼를 사용한 짚신부터 광주리, 삼태기, 멍석, 채독, 둥구미, 맺방석, 비옷인 도롱이까지 서민들에게는 그 쓰임도 다양했다. 

서민들의 생활에 떼어 놓을 수 없는 존재였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짚을 활용한 생활용품은 물론, 그 기능마저 점차 잊혀지고 있다. 원주역사박물관이 지난 2002년부터 짚풀공예공모전을 개최하고 있는 것도 사라져 가는 우리 민족의 전통 생활공예의 기능 전승을 위해서다.

덕분에 조상들의 삶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짚풀공예'를 후세에 계승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신동길(81, 귀래면 주포리) 씨도 짚풀공예의 매력을 알리고자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이들 중 한 명이다. 그는 20년 역사의 원주시 짚풀공예공모전에서 무려 4회나 대상을 수상한 인물이다.   

귀래면 주포리. 신 씨가 나고 자란 곳이자 80여 년간 한 번도 떠나지 않고 지키고 있는 고향이다. 짚풀을 손에 잡은 것은 부친을 도와 농사에 전념하던 소년 시절이었다. 당시만 해도 삼태기 정도는 집에서 만들어 쓸 때였다. 누가 가르쳐주지는 않았지만 마을에서도 뛰어난 손재주를 인정받는 아버지의 어깨너머로 자연스럽게 짚풀공예를 익혔다. "나도 손재주가 있었나봐. 처음 만든 삼태기를 아버지께 보여드렸더니 다음부터는 네가 만들어라 하시곤 정말로 이듬해부터는 손을 떼시더라고".

그 후로도 종종 삼태기며 멱서리를 직접 만들어 쓰긴 했지만, 시대가 변하고 세대가 바뀌면서 짚풀공예와도 조금씩 멀어졌다. 신 씨가 다시 짚풀을 손에 쥔 것은 2000년 무렵이다. 마을 영농법인에서 생활용품을 만들어 판매하자는 제안에 '젊을 때 짚풀 좀 엮었다'는  동네 주민들이 모였다. 그 중에서도 신 씨의 손재주는 탁월했다.

생활용품 판매가 흐지부지 되면서 함께했던 이웃들은 하나 둘 손을 놓았지만 신 씨는 짚풀은 물론, 싸리와 구들풀까지 구하러 다니며 손을 쉬지 않았다. "농번기 끝나고 심심할 때 보통 모여서 화투나 하는데 차라리 취미 붙이는 게 낮다 싶었지. 간혹 소품을 만들어 팔면 술값도 되고 무엇보다 손주들이 좋아해서 더 열심히 했는지 몰라".

"전통 생활공예 대부분 체계적으로 전승되는데
 유독 짚풀공예만 외면받는 것 같아 안타까워"

▲ 시농길 씨. 팔순을 넘긴 나이지만 "기력이 있는 동안은 짚풀공예를 계속 하겠다"는 신 씨는 "배우겠다는 젊은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

짚풀공예공모전에 첫 참가한 것은 2003년이다. 은상을 받았는데 오기가 생기더란다. 여러번 다시 봐도 자신의 작품이 가장 뛰어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2017년 입은 교통사고로 출품을 포기한 2018년을 제외하곤 매년 공모에 참여한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그동안 신 씨의 수상이력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2010년 9회 대회를 시작으로 10회, 13회, 올해 20회 대회까지 네 번이나 대상을 수상했다.

지역 내에서만 소문난 재주는 아니다. 2005년 농촌진흥청 짚풀공예품 공모전 일반인부문 우수상을 수상하고 2006년과 2009년에는 아산 전국짚풀공예품 및 문화상품 공모전에서 전통분야 동상과 장려상을 받았다. 수원 청소년수련관 초청으로 어린이들에게 짚풀공예를 가르치기도 하고 교통사고로 무산되긴 했지만 '짚풀공예를 배우겠다'며 제주도에서 초청한 일도 있다.

이 곳 저 곳에 불려 다니며 가슴 뛰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짚풀공예도 무형문화재로 지정해야 한다'며, '자신이 힘 써 보겠다'고 신 씨에게 약속한 사람도 여럿이다. 하지만 하나같이 유야무야 소식이 없다.

"도자기나 한지, 누비 등 전통 생활공예들이 대부분 체계적으로 계승되고 있는 것과 비교해 유독 짚풀공예만 외면 받는 것 같아 안타깝다"는 그는 "요즘은 농업이 기계화가 되면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재료 구하기도 쉽지 않아 짚풀공예를 하는 입장에선 많은 어려움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팔순을 넘긴 나이지만 "기력이 있는 동안은 짚풀공예를 계속 하겠다"는 신 씨는 "배우겠다는 젊은 사람이 있다면 기꺼이 가르치고 싶다"고도 했다. 신 씨는 "아버지와 할아버지, 그리고 그 위에 할아버지들의 손과 손을 거쳐 이어진 짚풀공예는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이자 삶 그 자체"라면서 "이후 세대에도 반드시 전승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김민호 기자 hana01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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