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원주, 멈춘시간 1950

기사승인 2021.11.08  

공유
default_news_ad1

- 해방과 1950년 전후 원주의 기억을 기록하는 일은 과거사 청산을 넘어 역사를 재구성하는 데도 기여…그 출발점에서 왜곡된 인권과 역사를 바로잡는 문제

  한국전쟁 전후 원주에서 발생한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은 국가폭력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으로 당시 국가나 공권력은 조사나 재판과정 없이 다수의 민간인을 학살하였으며, 늦었지만 재발방지와 진실화해를 목표로 진상을 밝히는 조사사업이 시민운동차원에서 시작되었다. 이 사건들은 우리역사의 가장 가슴 아픈 한국전쟁, 전쟁 전후의 인권침해사건이라 70년이 넘은 지금도 가해자이거나 피해자이거나 때로는 기억을 감추거나 기억을 내세우며 불편하고 잔인한 침묵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그러나 인권의 시대에 시민의 인권보장을 위해 누군가는 과거 우리지역에서 발생한 불행했던 인권의 역사를 바로잡아 진실의 문을 열어야 한다. 마치 우리 원주시민들이 6년 전 진보와 보수를 망라하여 모두가 하나의 뜻으로 원주평화의 소녀상을 세우고 지금까지 기리고 있듯이 역사는 과거와 대화 속에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원주시민연대는 지난 9월에는 금정굴 평화재단 신기철 소장님을 모시고 경기도 고양시의 사례를 들었고, 이달 19일 오후2시에는 원주시민연대에서 역사적 검토에 필요한 학술세미나를 개최한다. 이 행사에는 원주지역 근현대사를 기록하고 있는 연세대 미래캠퍼스 왕현종 교수님이 참여하고, 1950년 당시 원주 상황을 증언해 줄 유재덕 목사님이 직접 참여한다.

 목사님은 1939년 일산동 1번지에서 태어나 원주제일교회를 다녔으며 초등학교 6학년 때 전쟁을 겪었는데, 1950년 문막에서 피란 생활을 하던 중 7월경 원주시내가 폭격당한 사실을 알고 있으며, 9월 말에는 수복 국군이 인민위원장 등 주민들을 소집한 뒤 교감 선생님과 학교 소사 두 사람을 끌고 갔고 얼마 뒤 총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거기서 부역한 사람들 부르는 거야. 실제로 그런 사람들은 벌써 도망갔어요. 후퇴할 때 도망가고 그랬다고. 부역했어도 나는 그냥 완장 차라고 해서 찼지 악질적이지 않았으니까. 동네 사람들도 누군가는 완장을 차야 하니까. 아무도 안 나오니까 우리보다 조금 큰 중학생이 있었어.

 걜 "이리 나와" 그래가지고. "너는 알지?" 걔한테다가 "네가 지명해" 거기가 다 집성촌이거든. 걔가 아무개 아저씨요, 아무개 아저씨요. 거기 누가 있었냐면, 거기 초등학교가 하나 있었어요. 피란 가 있던 곳. 지정면, 원주, 문막, 지정. 아무개 아저씨 그 사람이 초등학교 교감. 교장은 집에서 출퇴근하고. 교감은 관사에 있는데 그 동네 사람이야. 초등학교 거기가 있어서, 지금 생각하면 오르간도 있고 탁구대도 있었고, 뛰어 놀던 그 생각이 나는데. 동네 사람들이 그 교감한테 완장을 채워줬어.

 그리고 학교에 관리하던 사람 소사가 있었거든. 같이 생활비 받으면서. 그 양반이 이북에서 피란 나온 사람이야. 제일 교감하고 소사하고 자녀들도 없고 그런 분들이야. 교감선생님한테 완장을 채워주고 소사한테도 무슨 직책을 주고. 노동자 출신이니까. 아무개 아저씨, 두 사람을 지적했어.

 "나오라"고. 나오니까 그 자리에서 개머리판으로 막 때리고 그러더니 끌고 가더라고. 모든 사람들이 새카맣게 질려가지고. 1개 소대 되는 사람들이 거총하고 장전하고. 서 넛이서 끌고 데리고 가더니 "따 다다 당" 소리가 나. 거기서. 그런 걸 내가 봤는데. 그 교감선생님 아이가 나보다 두 살 밑이야. 동생 친구야. 지금도 있지. 원주에서. 원준호라고 그 아들. 그 엄마가 막 울면서 눈이 퉁퉁 불고. 그렇게 두 분이 돌아가시는 것을 봤어. 교감 선생하고 소사. 그 분들이 뭘 악질적으로 한 것도 없고 동네 사람들 보호하는 뜻에서 완장을 찬 건데. 실지로 내무서 뭐 한 사람들은 다 도망갔어."

 당시 8세였던 유재덕 목사님 증언의 일부분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민간인 대량학살 사건은 4건으로 1950년 6월 30일. 봉산동 원주형무소 사건 180명, 가리파 고개 30명, 10월 2일 동화리 세고개 97명, 12월 양안치 고개에서 부역을 했다는 이유로 30명이 경찰과 6사단에 의해 희생되었다. 민간인 피해는 오랫동안 은폐되었고 진실이 드러날 것을 두려워하는 가해자는 물론 피해자조차 이 공포에 쌓여있다. 이 공포를 걷어내고 이제 진실규명을 위한 시민단체의 움직임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미 세계적으로 알려진 5.18 광주민주화운동, 제주 4.3항쟁도 첫 걸음은 시민단체의 진상규명 노력에서 시작되었다. 해방과 1950년 전후 원주의 기억을 기록하는 일은 과거사 청산을 넘어 역사를 재구성하는 데에도 기여할 일이다. 그 출발점에서 왜곡된 인권과 역사를 바로잡는 문제는 지역의 정체성, 민주주의, 지방자치를 바로 세우는 데에도 중요하게 기여할 것이다.

이선경 원주시민연대 대표 wonjutoday@hanmail.net

<저작권자 © 원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