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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의 도시기원, 사적공원 조성해야

기사승인 2022.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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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수의 원주 문화유산 썰-원주의 청동기시대(4)

   
▲ 가현동 옛 국군원주병원 유적 전경. 흰색 선으로 표시된 부분이 청동기 시대와 철기시대 집터이다.

2022년 7월 기준 원주시 인구는 35만9천888명으로 강원도에서는 드물게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어 곧 36만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강원도 인구의 23%를 차지하며, 18개 시·군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 인구 규모로 보면 전국에서 32번째로 큰 도시이다.

원주라는 도시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시험에 나오지 않는 문제이고 경제에 도움이 되지도 않지만 내가 살고 있는 도시가 언제부터 시작 되었는지 한번쯤 의문을 가질 만도 하다. 문막 섬강변에서 농사를 지으며 그물로 물고기를 잡던 3천 년 전 섬강 강변마을과 비슷한 시기에 원주시내 봉천(원주천) 과 흥양천 주변에도 크고 작은 강변 마을이 들어섰다. 이 마을들은 기원후 철기시대에 더욱 번창했고 이후 신라의 북원경과 조선시대에는 강원감영이 설치되어 지방행정의 거점 역할을 하였으니 원주의 도시 기원이라 할 수 있다. 

원주시내에서 도시의 흔적이 처음 발견된 곳은 가현동 옛 국군원주병원 부지이다. 강원도에서 군 생활을 한 남성들에게 제51후송 병원으로 잘 알려진 국군원주병원은 한국전쟁 직후에 지어졌다. 2004년 정부에서는 군 현대화계획에 따라 국군원주병원을 현대식으로 재건축하기 위한 계획을 실행했다. 전쟁 후 군인들을 치료할 병원이 부족한 시기에 미군의 도움으로 컨센트 형태로 지은 건물이니 비좁고 낡아서 새로운 현대식 병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병원 건축공사에 앞서 1만4천㎡에 이르는 국군원주병원 부지에 대한 문화재 유무를 확인하기 위하여 발굴조사가 시행되었는데 전체부지의 1/3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문화재가 발견되었다. 이곳에서 찾은 유적은 청동기시대부터 철기시대에 이르는 오랜 기간 동안 사람이 살았던 마을의 집터들이다. 유적은 네모난 국군병원 부지의 가운데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었는데 유구의 밀집도가 높고 상태가 매우 잘 남아 있었다. 발굴당시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그때까지 강원 영서 남부 지역에서 발견된 청동기와 철기시대 유적 중 가장 규모가 큰 유적이어서 주목을 받았다. 

발굴조사는 2008년까지 이어졌고 유적의 보존에 대하여 문화재청에서는 유구 중 2천394㎡를 현지 원형보존하고 나머지 부지에 병원을 신축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당시 언론에 보도된 문화재청 관계자는 '원주는 물론 우리나라 주거형태를 재조명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라고 평가했다.

병원부지에서 발견된 유구 상태가 좋았고 규모가 커서 보존 가치가 높았지만 국군병원 신축도 필요한 시설이라 문화재청과 국방부가 타협하여 절충한 결과이다. 그러나 국방부에서는 발굴조사가 끝난 2008년 국방계획을 변경하고 국군원주병원 현대화 계획을 철회하게 된다. 이 후 현재까지 14년 동안 국군병원 터는 수목이 자라 고라니가 뛰어노는 도심 속 밀림으로 남아 있다. 

필자는 2008년 이후 퇴직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국군병원부지에 사적공원을 조성할 것을 주장하고 건의하였다. 국군병원 유적은 원주가 수천 년 전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부터 변화와 성장을 거듭하여 지금 같은 큰 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던 출발점, 도시의 기원이다. 원주천을 따라 여기 저기 많은 청동기 마을이 있었을 테지만 지금 원주천 양 옆은 콘크리트 빌딩이 세워지면서 더 이상 청동기시대 유적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도시의 정체성을 알 수 있는 유적을 사적공원으로 조성한 사례는 여러 도시에서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곳이 서울 암사동 선사공원이다. 한강과 인접해 있는 암사동 신석기시대 유적을 복토하여 온전하게 보존하고 신석기시대 집을 재현하고 나무를 심어 녹지를 조성하였다. 숲 여기저기에 편의시설을 만들어 서울시민들이 숲에 스며들어 역사를 체험하며 쉴 수 있는 서울의 명소로 사랑 받고 있다.

도시의 역사를 체험하며 쉴 수 있는 사색의 숲, 도심 속 역사공원은 도시의 미래 주인공인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 다른 도시는 가능한데 원주는 안 되는 이유가 뭘까? 도시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지방정부에서는 수시로 선진지 견학, 벤치마킹이라는 이름으로 선진 도시들의 문화, 체육, 공원, 복지 등 제반 공공시설을 방문하고 행정에 반영한다. 새롭게 출범한 원주시와 원주시의회에서는 도시 정체성이 담긴 역사유적을 활용한 선사공원 조성사례를 살펴보기 바란다. 

원주 가현동 유적은 흥양천과 원주천이 만나는 모퉁이에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가현동이지만 태장동의 중심지역인 태장시장 도로 건너편에 위치해 있으니 도시지역이다. 유적 동쪽은 원주의 남북을 관통하는 도로가 지나고 있어 원주시 중심지역과 멀지않고 교통도 편리하다.

가현동 유적에서는 청동기와 철기시대 집터 60동과 수혈유구 19기 등 80여기의 유구가 발견된 대규모 유적이다. 선사시대에서 역사시대로 이어지는 전환기의 유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다. 발굴조사 당시 문화재청 관계자의 평가처럼 우리나라 주거 형태의 변화를 알 수 있는 학술적으로 중요한 유적이다. 

원주의 도시기원을 알 수 있는 가현동 옛 국군병원부지에 축구장을 비롯한 체육시설이 들어선다고 한다. 축구장은 종합운동장 뿐만 아니라 대학교를 비롯하여 초·중·고등 학교마다 설치되어 있다. 필요하다면 어디든 부지를 확보하여 추가로 조성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옛 국군병원 부지에 남아있는 수 천 년 전 원주의 기원이 되는 도시 유적은 찾기 어렵다.     

축구장 조성계획은 지난 민선 7기 시정부터 시작되었다. 잘못된 단추는 고쳐 꿰어야 한다. 원주의 도시 기원 유적을 보존하고 미래세대를 위한 사적공원을 조성하는 일은 민선 8기 원주 시정의 과제다. 역사를 소홀히 다루는 도시의 미래는 없다.   

 

박종수 전 원주시학예연구관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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