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문화시론: 원주문화를 말하다

기사승인 2022.09.19  

공유
default_news_ad1

- 예술·역사·사회·미래를 보는 안목 절실

 '안목'이란 사전적 의미로 '일과 물건의 좋고 나쁨 또는 진위나 가치를 분별하는 능력'을 말한다. 예를 들어 "안목이 좋다"라는 표현은 대체로 물건을 고를 때 가치가 높은 것을 잘 고르는 걸 보고 안목이 있다 하고, 사람을 대상으로 안목이 있다고 표현할 때는 기업에서 직원을 뽑을 때 일을 잘하는 사람을 뽑았다면 그 인사담당자는 안목이 좋다고 표현하기도 하는 것이다.

 전 문화재청장이었으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저자로 유명한 유홍준 교수는 그의 책 '안목'에서 "예술을 보는 안목은 높아야 하고, 역사를 보는 안목은 깊어야 하며, 현실 정치·경제·사회를 보는 안목은 넓어야 하며, 미래를 보는 안목은 멀어야 한다."고 했다.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에 우리 문화에 탁월한 안목을 가진 간송 전형필이란 사람이 있다. 1906년생인 그는 물려받은 논밭이 여의도의 10배 정도로 조선에서 다섯 번째 드는 큰 부자였다고 한다. 아버지의 기대에 따라 와세다 법과대학에 입학한 전형필은 아버지가 원하는 일인 변호사가 될지 자신이 원하는 조선어문학을 공부할지 고민하다가 휘문고보 시절 미술 교사인 스승 고희동에게 고민을 털어놨고 화가 고희동은 우리 '문화'를 지키는 것을 권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인 고희동은 그 당시 추사 김정희의 제자로서 서화가이며 3.1운동 민족대표 중 한 명인 위창 오세창 선생에게 전형필을 소개해주었다고 한다. 위창에게서 우리 문화재의 가치와 문화재 보호의 의미를 깨닫고 안목을 키우게 된 간송 전형필은 집안의 기대인 판검사의 꿈을 버리고 우리 문화재를 지키는데 일생을 바치게 된다.

 간송 전형필은 20대 후반부터 일제의 식민통치 아래 말살되어가는 민족정기를 되살리기 위하여는 우리 민족 문화 전통을 단절시키지 말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민족 문화의 결정체인 미술품을 인멸되지 않게 보호하여야 한다는 신념으로 민족 문화재 수집 보호에 심혈을 기울이게 된다.

 그는 10만석 가산을 탕진한다는 비방을 들으면서도 오직 문화재 수집에만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겸재 정선,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의 그림, 추사 김정희의 서화, 한 점에 그 당시 한옥 20채의 값을 치루고 수집한 고려청자를 비롯한 고려 및 조선 자기와 불상, 불구, 와전도 집중적으로 수집하였다 한다. 동경에 살면서 수십 년 동안 고려청자만을 수집해 온 영국 변호사 존 개스비(Sir. John Gadsby)의 당대 최고급 수장품을 공주 소재의 5천 석지기 전답을 모두 처분하여 일괄 인수한 것이 그의 나이 32세였다고 한다. 

 이듬해인 1938년 일본이 조선어과목을 폐지하고 우리말, 우리글 사용을 금하며 철저하게 우리 문화를 말살하는 강압 정치를 진행하자 이제까지 수집해 온 우리 문화재의 정수를 보관, 전시, 연구를 통해 우리 문화의 단절을 막고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사립박물관인 보화각(지금의 간송미술관)을 건립하면서 우리 민족 얼과 혼을 지켜내고 후대에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지키려 했던 선각자의 안목은 현재의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간송이 지켜낸 우리 문화재 중 가장 소중하고 값진 것은 '훈민정음 해례본'일 것이다. 1940년 그는 훈민정음 해례편까지 완벽하게 갖춘 정본 구입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던 중 소문을 듣고 찾아온 안동의 소유자로부터 그 당시 기와집 10채의 가격인 1만 원을 군말 없이 치르고 수고비라며 1000원을 더 얹어주었다고 한다. 귀한 문화유산은 귀한 만큼 대접받아야 한다는 간송의 안목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암울한 일제 강점기에 우리 문화를 지켜낸 간송 전형필의 안목이 있었기에 지금의 한류 K-Pop, K-Culture가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요즘 경제적 관점에만 편향된 지역문화와 문화정책에 대한 이야기들이 빈번히 들린다. 진정 예술을 보는 높은 안목, 역사를 보는 깊은 안목, 현실 정치·경제·사회를 보는 넓은 안목 그리고 미래를 보는 먼 안목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이다.

박광필 필조형문화연구소대표.조각가 wonjutoday@hanmail.net

<저작권자 © 원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