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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수의 원주 문화유산 썰-태장동 유적

기사승인 2022.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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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사와 역사시대 전환기의 도래, 태장동

▲ 태장동·가현동 옛 국군병원 유적 전경.

인류 역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오랜 선사시대가 끝나고 역사시대가 시작된다. 서구에서는 선사시대를 도구의 재료에 따라 석기시대와 청동기, 철기시대로 구분하지만 청동기와 철기 시대는 역사시대의 범주에 포함된다. 기원전 2333년 단군 왕검이 세운 우리민족의 첫 번째 나라 고조선은 청동기 시대에 해당한다. 비록 그들이 남긴 공인된 역사 기록은 없지만 나라를 다스리기 위한 법률을 만들었고 관직과 통치제도를 마련하여 국가를 운영하였다는 간접 기록이 있으니 역사시대이다. 

2004년 가현동 옛 국군병원 터와 2005년 태장동에서 발견된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 유적은 선사시대에서 역사시대로 넘어가는 전환기의 유적이다. 청동기시대가 끝나는 기원전 300년에서 기원후 300년 무렵까지 이어지는 시기는 우리 역사에서 고조선에 이어 등장한 삼한(마한, 진한, 변한)시대이다.

학자들 마다 견해가 다르지만 기원후 300년을 원삼국시대로 세분하기도 한다. 기원전후 한반도 중남부지역에 세워진 삼한 중 한강유역을 중심으로 경기, 충청, 전라도 일원에 56개의 소국으로 형성된 마한이 있다. 원주는 마한의 동쪽에 속한다는 것이 지금까지 학계의 정설이니 가현동과 태장동 유적은 본격적인 원주 역사의 시작이다. 

청동기시대 유적에서 철기시대(원삼국시대) 유적이 함께 발견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오랜 기간 한곳에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고 고대와 중세를 거쳐 근현대로 이어지는 도시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원주 가현동 옛 국군병원 유적에서 00기의 청동기시대 집터와 00기의 철기시대 유적이 발견되었고, 흥양천을 따라 800m 상류 지점인 태장동 유적(주공4단지 아파트)에서는 청동기시대 집터 6기와 철기시대(원삼국시대) 집터 1기가 발견되었다. 뿐만 아니라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유적이 함께 발견되어 태장동 일대에는 3천 년 전부터 현재까지 크고 작은 마을이 모여 도회를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태장동 유적은 2005년 5월, 대한주택공사(2009년 한국토지주택공사로 사명이 변경되었다.) 강원지역본부가 계획한 태장4지구 임대주택 건설사업에 앞서 시행한 문화재 발굴조사로 발견되었다. 유적이 발견된 태장동 임대주택은 북쪽으로 해발 265m의 낮은 장양산 구릉이 둘러싸고 남쪽은 흥양천이 흐르고 있다. 남쪽으로 높은 산이 없이 트여서 원주천을 따라 원주 시가와 연결되는데 유적은 원주 도심 북쪽 끝에 위치한 양지바른 곳이다. 유적위에 지어진 태장4단지 아파트는 3천 년 전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주택단지였으니 살기 좋은 곳이다.

▲ 태장동 유적인 원삼국시대 집터. 내부에 돌을 둘러 만든 불을 피운 화덕(노지) 3개가 보인다.(원주 태장동유적 보고서)

태장동 유적에서 발견된 청동기 시대 집터는 긴 변이 9.04m, 짧은 변이 4.42m로 면적은 40㎡(12평) 정도 되는 긴 네모꼴 인데 내부에 불은 뗀 화덕(노지) 3개가 설치되어 있었다. 집터 내부에서 나뭇잎 흔적이 남은 여러 종류의 토기와 석기, 그물추가 발견되었다. 철기시대(원삼국) 집터는 긴 변이 8.2m, 짧은 변이 6.8m로 55.8㎡(16.8평) 인데, 동쪽으로 돌출된 출입시설을 만든 凸(철)자 형태이다. 집터 안에는 불을 피운 화덕 1개가 있으며 비교적 단단한 경질 무문토기와 석기들이 발견되었다.   

태장동 유적과 가현동 옛 국군병원 유적 사이에는 태장시장과 주택이 밀집한 태장동의 중심 상가이다. 태장시장 역시 흥양천 북편의 평탄한 대지에 형성된 지역으로 청동기와 철기시대(원삼국시대) 유적이 들어서기 좋은 곳이다. 기원전후 원삼국 시기에도 태장시장 일대가 원주분지 북쪽 마을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 기능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기원전후 역사시대의 여명기에 원주분지에 형성된 도시 유적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더 이상 찾기 어렵다. 예나 지금이나 물이 풍부한 하천가 양지바른 곳은 사람들이 터 잡고 살기 좋은 곳이니 과거 역사를 알 수 있는 유적에 아파트와 주택, 공공시설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가현동 옛 국군병원 유적이 오랫동안 군 주둔지로 사용되어 온전하게 남은 것은 지금 원주시민에게 다행한 일이다.     

처음과 시작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신문과 방송을 비롯한 언론매체의 뉴스 생산자들은 '최초'라는 수식어에 열광한다. 뉴스를 보고 듣는 소비자들이 '최초' 혹은 '유일'이라는 표현에 강한 호기심을 보이기 때문이다. 기록이 없어 오로지 유적으로만 알 수 있는 마한시기의 원주, 가현동 옛 국군병원 터는 역사시대 원주의 시작을 알 수 있는 유적이다. 사적공원을 조성하고 보존해야하는 이유이다. 

박종수 전 원주시학예연구관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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