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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과 시험에서 이름 날린 해린 스님

기사승인 2023.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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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수의 문화유산 썰-해린 스님과 지광국사탑2

   
 

지광국사현묘탑비의 주요 내용은 크게 3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는 지난 글에서 소개한 것처럼 해린 스님의 가계(출생)와 유년 시절, 곧 어린 수몽의 이야기이다. 두 번째는 해린 스님이 승과에 합격하여 대덕이 된 후 여러 왕의 존경을 받고 국사가 되기까지 과정, 그리고 세 번째는 비석의 뒷면에 기록된 음기(陰記)인데, 비석을 세우는데 참여한 사람들을 밝힌 것으로 주로 해린 스님의 제자들이다. 

해린 스님의 탄생과 유년 시절은 앞으로 해린 스님이 큰 스님이 될 것이라는 예언이 중심이다. 해린 스님의 어머니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탄생할 때처럼 강과 바닷물이 넘치는 태몽을 꾸었고, 해린 스님을 만났던 학자와 고승들 역시 해린 스님이 앞으로 '스님이 되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손금이나 꿈을 빌었지만 모두 어린 해린 스님의 운명을 예견한 것이다. 해린 스님이 승려로서 세상에 화려하게 존재를 드러낸 것은 승과시험에 나가면서부터인데, 꿈이나 손금이 아니라 해린 스님의 설법(說法)에 탄복한 국왕들이 스님의 지위를 높여주고 법호를 내려주는 것으로 보답하는 내용이다.       

개성의 해안사에서 스님이 된 해린 스님이 덕이 높은 고승(高僧)으로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승려가 되기 위한 시험인 대선장(大選場)이었다. 고려시대에는 누구나 출가하여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될 수는 있었지만 국가에서 부여하는 승계(僧階, 스님의 지위)를 받고 주요 사원의 책임자인 주지가 되기 위해서 승과(僧科, 大選이라고도 함)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수많은 재야의 선비 중에서 과거시험에 합격해야 관리가 되어 입신양명(立身揚名)하는 것과 같다.

  우수한 스님을 선발하기 위한 승과 시험은 고려의 개혁 군주 광종 임금이 과거제를 도입하고 스님의 계급인 승계제(僧階制)를 시행하면서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스님에게 체계적인 지위를 부여하기 시작하여 승과에 합격하면 대덕(大德)이 되고 그다음 스님의 능력과 공적에 따라 대사(大師), 중대사(重大師), 삼중대사(三重大師)라는 지위를 내려준다. 고려 성종 임금 때부터 스님의 지위를 세분화했는데, 삼중대사 보다 높은 지위로 교종은 수좌(首座), 승통(僧統) 선종은 선사(禪師), 대선사(大禪師)라는 지위를 부여하였다.

해린 스님은 21세 때에 개성 송악산에 있는 왕륜사(王輪寺)에서 승과시험을 보았다. 왕륜사는 태조 왕건이 세운 10개의 사찰 중 한 곳으로 교종에 속한 스님의 승과 시험장소이기 때문에 승려들의 등용문이었다. 고려의 승과 시험은 응시자인 스님들이 경전을 해설하고 서로 토론하는 방식이었는데 비문에는 시험장의 상황과 해린 스님이 시험에 합격하여 당시 고려의 국왕인 현종 임금으로부터 대덕(大德)의 법계(法階, 스님의 계급)를 받고 첫 번째 법호를 받는 장면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는데 비석의 글이 전하는 해린 스님의 첫 걸음은 화려하였다.   

그(해린 스님)의 말은 평범하나 그 뜻은 매우 심오하였다. 시험의 문제는 같았으나 스님의 답안은 다른 사람들보다 특이하였다. 다른 스님들은 자신의 답안이 틀려서 자신의 소망에 어긋난 자들은 마치 소경이 촛불을 잡은 것과 같았으며, 혹은 시기하여 다투던 자들은 마치 재갈을 물린 것 같이 입을 열지 못하였다.(중략) 토론하는 과정에서는 주위로부터 집중적인 공세를 받았으나 마치 교범파제 (석가모니의 제자) 등의 호부장자(豪富長者)들로 구성된 무리가 모두 논리에 강복(降伏)하고 부처님께로 귀화한 것과 같았다.

국사께서 법상(法床)에 앉아 불자(拂子)를 잡고 좌우로 한번 휘두르니 가히 청중들이 많이 모여 앉은 걸상이 부러진 것과 같았다. 현종 임금이 국사의 도덕을 찬양하고 대덕(大德)의 법계를 서증(署贈)하였다. 통화년중(統和年中)에 "강진홍도(講眞弘道)"란 법호를 받았으며, 1010년 국사께서 법고사(法皐寺)로 돌아가는 길에 도강(都講)인 진조(眞肇) 스님을 만나 동행하다가 진조(眞肇) 스님이 역산(曆算: 천문현상을 연구하여 일식과 월식을 예측하는 일인데, 불교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몰년과 주요 활동 연대를 계산하는데 쓰였다.)하는 법을 잘 안다는 말을 듣고 국사께서 가르쳐 주기를 청하여 배웠다. 

998년 15세의 나이에 큰 스님이 되기 위하여 고향 원주를 떠나 개성 해안사에서 머리를 깎고 출가한 소년 해린 스님이 승과시험에 합격하여 국왕으로부터 대덕으로 추대되고 강진홍도라는 법호를 받고 1010년 27세에 잠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금의환향(錦衣還鄕), 비단 옷을 입고 고향에 돌아온다.'는 말처럼 12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청년 해린 스님의 귀향은 화려했다.

 

박종수 전 원주시학예연구관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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