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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기사승인 2023.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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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형스크린으로 옛 영화를 보며 과거를 거슬러 가 볼 수 있다면…오래된 것들을 보존하는 것은 과거세대와 미래세대가 소통하는 고리를 만들어 놓는 것이다

 

 에딘버러는 스코틀랜드의 수도다. 셰익스피어 비극 '멕베드'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공연 준비차 방문한 적이 있는데 비싼 현지 물가 탓으로 저렴한 호텔을 찾고 있던 중 딱 맞는 호텔을 예약하고 도착했다. 주소를 찾아가며 도착한 곳은 오래된 건물의 펍이었고, 펍 카운터에서 예약 확인 과정을 거친 후 몇 개의 담요와 수건과 열쇠 그리고 주소가 적힌 쪽지 한 장을 받았다.

 주소로 찾아가라는 것이었다. 당혹스러웠지만 5분 정도를 물어 물어 걸어가보니 역시 낡고 오래된 건물이 나왔고 그 건물의 맨 꼭대기 층에 방이 있었다. 낡고 오래된 건물의 다락방 같은 곳이었지만 창문을 열자 골목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 왔다. 

 오래 전 이 방에 살았을 가난한 청년들이 그려졌다. 관광지로 유명해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지만 옛 건물을 허물지 않고 낡은 건물의 다락방을 호텔로 만들어 과거와 현재가 상생하는 곳이다.

 마을호텔 18번가는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마을 호텔이다. 이름은 거창한 마을 호텔이지만 빈집이 늘어나는 옛 탄광마을의 허름한 집과 가게들을 호텔로 만든 것이다. 오래되고 작은 집들이다 보니 호텔다운 로비와 레스토랑, 리셉션 등은 당연히 없고 골목 곳곳 옛 집들이 이런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다.

 골목이 로비고 룸과 레스토랑은 여기저기의 작은 집들일 뿐이다. 관광객들이 기대하는 호텔에 비해 불편하지만 오래된 마을의 옛 정취를 동네 주민처럼 느끼는 재미에 인기가 있다. 여행객들은 골목을 평화롭게 산책하고 골목 식당에서 조식을 먹고 구멍가게 평상에 앉아 캔 맥주를 마시며 쉬고 갈 뿐이다.

 TV에 나온 맛집을 찾는 게 아니라 민박집에서 차려주는 밥상을 받고 관광명소에서 사진 찍는 게 아니라 농산물을 수확하고 함께 다듬어가며 오래된 한옥집에서 여유를 누리는 여행이 인기다. 전남 강진의 생활관광 프로그램 '푸소'가 성공한 이유다. 시골에서 민박하며 하루 두 끼 차려주는 밥상을 받고 농작물 수확도 돕고 수확한 채소를 얻어가기도 한다. 낮에는 일없이 그늘이 진 평상 위를 뒹굴거나 자유를 만끽한다. 일상을 참 바쁘게 사는 한국인들에게 더 없는 휴식이자 여행이다. 강진 일주일 살기는 예약이 어려울 정도다.

 요즘 관광의 트랜드는 생활관광이다. 지역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는 한달살기, 일주일 살기가 유행이다. 관광과 여행이 이전에 비해 훨씬 일상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 사람들은 점점 이벤트나 어드벤처보다는 가족과 함께 새로운 일상을 경험하기를 기대한다, 태국의 치앙마이는 오래된 고원도시의 평화로운 일상을 즐기고 싶은 세계 여행객들로 호황을 누리고 있다. 특히 한국인들의 한달살기 여행이 인기라 한국의 작은 소도시를 방불케 한다. 하지만 치앙마이가 그들의 오래된 골목과 동네와 풍경을 철거하고 여느 대도시 같은 화려함으로 변모한다면 한달살기를 즐기던 관광객들의 발길은 끊어질 것이다.

 아카데미극장을 철거하기로 했다. 그 자리에 주차장과 야외 공연장을 만들어 풍물시장을 활성화하겠다고 한다. 주차장과 야외공연장이 오래된 극장보다 가치 있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풍물시장에 주차장을 세우면 시장이 더 활성화될 거라는 생각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평원동은 원주에 몇 남아 있지 않은 오래된 모습의 동네다. 동네에서 잠을 자고 5일장에 나가 브런치를 대신해 메밀전과 칼국수와 그리고 치악산 막걸리를 한 잔 한다면 그리고, 오래된 극장에서 대형스크린으로 옛 영화를 보며 과거를 거슬러 가 볼 수 있다면 아마 요즘 여행객들은 더 좋아할 것이라는 데 동의하겠다.

 극장 안에 있는 작은 정원과 매점, 창고, 부속건물로 있는 오래된 사택을 활용한다면 레트로 감성의 핫플레이스를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작은 게스트하우스와 영화 카페, 2층 발코니를 활용한 루푸트 탑 펍 등을 지역의 청년기획자들에게 맡겨 청년사업의 기반을 조성하는 것도 가능하겠다. 

 당장의 예산을 걱정하기 보다는 아카데미극장을 보존하고 활용했을 때 가능한 미래의 이익을 가늠해 보기를 바란다. 머리를 맞대면 보수와 운영을 위한 예산은 충분히 줄일 수 있다. 오래된 것들을 보존하는 것은 과거세대와 미래세대가 소통할 수 있는 고리를 만들어 놓는 것이다.
오래된 것이 미래다.

원영오 연출가/극단노뜰 대표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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