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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아카데미…서두르진 말자

기사승인 2023.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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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수의 문화유살 썬-아카데미 부활 소망(7)

   
▲ 지난 2020년 개최된 안녕 아카데미 행사 당시 아카데미극장.

6월 25일 아카데미극장 철거예산 6억5천만 원이 포함된 원주시 추경 예산안이 제241회 원주시의회 2차 본회의 심의에서 통과되었다. 6월 말까지 원주시 건축위원회에서 아카데미극장 해체 심의와 공사업체를 선정하는 등 행정절차를 진행하고 곧 철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계획에 큰 변수가 없다면 이르면 7월, 늦어도 겨울 이전에 아카데미극장이 철거될 것으로 보인다. 아카데미극장은 1963년 처음 문을 열었고 2006년까지 단관극장으로 43년 동안 영사기를 돌렸다. 2006년 극장폐관 이후 돌보지 않은 낡은 건물이라는 이유로 철거한다고 한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원형을 잘 간직한 가장 오래된 단관극장으로 평가받는 아카데미극장의 운명이다. 

아카데미극장 철거가 시사하는 것은 가볍지 않다. 그중 하나는 극장 보존과 철거를 두고 시민들이 큰 갈등을 겪었는데, 정치가 시민사회의 갈등을 크게 키웠다는 점이다. 처음 아카데미극장 보존 운동이 시작되었을 때 보존을 반대하고 철거를 주장하는 시민은 없었다. 아카데미극장 철거는 폐관된 극장 건물을 유지하기 어려웠던 소유자의 생각일 뿐이었다. 아카데미극장이 철거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은 극장의 가치를 아는 몇몇 사람들이 극장을 보존하기 위하여 애썼다. 그들은 앞서 철거된 시공관과 문화극장, 원주극장에 대하여 아쉬워하며 마지막 단관극장 아카데미를 살리기 위해 방법을 찾았고, 시민들은 아카데미 보존에 뜻을 같이하기 시작했다. 필자가 알고 있는 한 아카데미극장 보존을 위한 노력은 정치와 관련이 없었다.

앞선 3개의 극장이 사라질 때 기초적인 조사와 기록도 남기지 못했던 것에 스스로 책망하고 있던 필자도 아카데미극장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들과 함께 아카데미극장을 운영했던 소유자를 만나 과거 극장 운영에 대한 이야기와 폐관 이후 어려움을 들었다. 그때 소유자로부터 원주시에서 매입한다면 팔 수도 있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 무렵 원주시 도시재생 관련 부서에서 건물 안전진단을 하고 아카데미극장 매입을 추진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아카데미극장은 원주시에서 매입하지 않았고 다른 재력가가 인수하였다. 이때부터 아카데미가 사라질 위기는 더욱 커졌다. 아카데미극장을 인수한 재력가는 극장을 허물고 극장 일대에 대형 상가를 지을 계획이었다. 그곳에 대형 상가가 지어졌다면 풍물 시장을 비롯한 주변 재래시장의 미래는 어땠을까! 아카데미극장 철거를 주장했던 일부 시장 사람들도 현대식 상가 건설에 동의했을까! 

이번 아카데미극장 보존과 철거 결정을 두고 아쉬웠던 부분은 도시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원주의 미래에 대한 깊은 성찰과 상식에 기반한 의사 결정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이기고 보자는 선거 캠페인을 보는 것 같았다. 박물관 부지를 봉산동으로 결정할 때 관제 여론을 경험했던 필자는 원주에서 행정이 주도하는 관제 여론의 진화는 타 도시보다 훨씬 빠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번 아카데미극장 철거 결정에도 도시재생이나 역사 관련 전문가의 의견은 철저하게 배제되고 비전문가들의 의견이 정치가들의 입을 통해 쏟아져 나왔다. 

오래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고위직으로 퇴직한 강원도 출신 인사와 함께 강원도의 수부 도시를 주제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필자와 동향으로 공직 대부분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냈고 전주, 경주, 춘천 등 지방의 국립박물관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와 나눈 20여 년 전 대화가 새삼스럽게 떠오른 건 아카데미극장 철거 때문이다. 그는 원주가 도시 규모는 강원도에서 제일 크지만 강원도의 수부 도시가 될 수 없다고 했다. 그가 말한 원주가 수부 도시가 될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원주에는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의사 결정을 이끌어가는 리더와 여론 형성층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때는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는데, 이후 몇 차례 비정상적인 의사 결정 과정을 볼 때마다 그의 말이 떠올랐다. 아울러 공룡이 지배하는 도시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요즘 원주를 떠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들도 필자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른 체념 같지만, 아카데미극장을 철거하더라도 서두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카데미극장 철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아카데미극장을 혐오시설로, 또는 금방이라도 무너져 시민의 안전에 위협을 주는 시설로 표현하지만, 그러나 아카데미극장은 절대 혐오시설도 아니고 당장 시민의 안전에 크게 위험을 주는 건물도 아니다. 시민들이 오랫동안 도심을 지켜왔던 아카데미극장과 작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아카데미극장 보존을 바라는 필자의 생각은 아직 변함이 없다. 그러나 극장 철거가 불가피하다면 극장을 철거하기 전에 아카데미극장에 대한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기길 바란다. 건물에 대한 실측조사는 물론이고 아카데미극장이 사라진 후에 가상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풍부한 디지털 데이터도 남겼으면 좋겠다. 또한, 건물 내부에 남아있는 영사기와 의자, 포스터 전단지 등 극장 관련 집기와 기구 등, 동산에 대한 목록을 작성하고 보존을 위한 대책을 마련하기 바란다. 오랫동안 도시역사박물관을 운영했던 필자의 경험으로는 아카데미극장 내부에는 버릴 것이 없다. 남아있는 모든 것이 가치있는 유물이다.

원주보다 규모가 큰 도시에서는 오래되고 낡은 근대기의 상가를 철거할 때 건물을 통째로 옮기거나, 건물 간판과 내부의 집기들을 그대로 옮겨 보존하는 사례도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 사용해온 물품들은 모두 하찮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리가 흔하게 보았던 물건도 특별한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는 개인과 도시의 역사다. 그러니 아카데미극장이 가지고 있는 자료들을 가능하다면 많이 남겨주길 바란다. 이미 수장고가 포화 상태인 역사박물관에서 수용할 수 없다면 다른 공간이라도 확보해서 보존되길 바란다. 영사기와 부품, 포스터와 전단지, 전구 같은 영화 관련 자료들로 채워진 아카데미극장은 보물창고이다. 낡은 창고가 보기 싫어 허물겠다면 보물은 마땅히 안전한 창고로 옮겨야 하지 않겠는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박종수 전문기자(전 원주시 학예연구관)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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