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달장애인 일자리는 단순한 일자리가 아니라 사회활동의 시작이고 존재를 증명하는 기회…내년 정부 예산안에 동료지원가 예산 전액 삭감한 것은 발달장애인 일자리 빼앗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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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아침, 피곤한 얼굴로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아들을 바라보려니, 눈물이 왈칵 올라와 돌아서고 말았습니다.
스물일곱살 아들은 오늘 전국의 발달장애인 동료지원가들과 함께, 여의도 국회앞에서 장애인일자리를 빼앗지말라고 정부를 향해 외치기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아들이 몇 년째 일해온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사업'은 전국의 장애인들이 점거농성을 하는 등 치열하게 요구하여 만들어진 사업이며, 2019년부터 시작된 취업지원사업에 참여하는 동료지원가는 올해 기준 월 89만 원(4대 보험 포함)을 받으며 60시간 일을 하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중증장애인들이 수행하기 어려운 과도한 실적을 요구하고, 실적을 채우지 못하면 보수를 반납하거나 실직까지 하는 반쪽짜리 일자리였습니다. 지속적으로 제도개선을 요구해 자리잡나 싶었는데, 중증장애인들에게 실적운운하며 정부는 '실적 저조'로 불용 처리되는 예산이 지속해서 발생하고, 보건복지부 소관의 장애인자립생활센터 동료상담가 사업과 유사·중복된다며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에 동료지원가 예산 23억 원을 전액 삭감했습니다.
또한,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하는 동료상담은 장애인 당사자들 간의 자조모임으로 중증장애인에게 취업 상담과 알선을 목표로 하는 동료지원가 사업과는 명백히 다릅니다. 장애인들 입장에서 보자면 정부가 밝힌 두 가지 이유 모두 타당성이 없는 것입니다.
내년에 이 사업이 없어지면, 현재 사업에 참여하는 장애인 187명은 모두 해고가 됩니다. 동료지원가 사업에 참여하는 장애인의 70%가 발달장애인이고 원주에도 3명의 발달장애인이 동료 장애인들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15일 서울에서 일자리를 돌려달라는 집회가 있었습니다. 이날 결의대회는 동료지원가 일을 하고 있는 발달장애인들의 목소리로 채워졌습니다. 20대 발달장애인들이 왜 우리 일자리를 맘대로 빼앗느냐며 서럽게 우는데, 대답을 하지 못하는 우리는 모두가 죄인이었습니다.
발달장애인들에게 일자리는 단순한 일자리가 아닙니다. 사회활동의 시작이고, 삶을 증명하는 존재를 증명하는 기회입니다. 반나절이지만 처음 취직을 하고, 숫자도 모르면서 70여만원 월급명세서를 건네며 동생 용돈 주겠다고 해맑게 웃으며 뿌듯해 하던 아들의 모습이 떠올라 또 마음이 아픕니다.
어제는 서울의 동료지원가들이 장애인고용공단에서고용노동부 장관을 만나게 해달라며 점거농성을 하다 25명 전원이 경찰서에 강제 연행 되기도 했습니다. 강제로 끌려가다 보니 옷이 찢기고 두려움에 울부짖고…
어디다 외쳐야 될까요? 우리 아이들은 당신들이 그렇게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래오래 영원할 줄 알았던 소중한 일자리를 잃게 된, 우리가 미안해하고 지켜줘야할 젊은이들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애아이가 있는 우리가 평생 힘들고 불행할거라고 짐작하시는데, 정작 우리는 20년이 넘도록 여전히 아이 덕에 웃고, 아이의 한마디에 살맛나곤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예측할 수 없고 상식에서 벗어난 국정운영으로 살기가 더욱 힘들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국가는 나와 내 가족, 내가 아끼는 사람들, 다수의 국민을 대변할 생각이 있는건지 의문이 듭니다.
다가오는 한가위 둥근달을 보고 빌어보는 수밖에 없을까요.
실적을 잘내야만 유지하나요 / 잘못해도 서툴러도 유지해야 해
그러나 노동부는 / 이렇게 말하고 / 한마디씩 하죠 / 너네 자를거야
우리 그~래서 / 함께 모였지
정부가 내 일자리를 자꾸 뺏어가요
(한국피플퍼스트, 'doc와 춤을' 개사한 '동료지원가와 투쟁을' 중에서)
백주현 장애인부모연대 대표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