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아 의료체계가 붕괴하고 있다. 더 늦지 않게 원주에 어린이 전담병원을 설치하자. 창의적인 정책 지원과 의료계·지역사회 협력을 통해 이 문제를 풀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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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 의료체계가 붕괴하고 있다. 소아청소년과가 최후의 수단인 폐과 선언을 했다. 우리 아이들의 건강을 지킬 마지노선이 무너지는 형국이다. 2018년 100%를 넘겼던 전공의 충원율이 2022년 28.1%로 줄었다. 이 정도면 앞으로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정말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걱정스러운 상황이다.
그리고 그 여파는 고스란히 우리 삶의 현장에 직격탄을 날릴 것이다. 소아 의료는 일반 성인 의료와는 결이 다르다. 성인이라면 금방 이겨낼 잔병도 소아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 소아는 아파도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투약 방식과 용량도 아이의 성장 수준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소아를 전문으로 치료하기 위한 전문가가 필요한 이유다.
원주의 상황만 보면 더 암담하다. 한밤중에 열이 펄펄 끓는 아이가 갈 수 있는 의료기관은 없다. 물론 의료기관은 있다. 상급종합병원인 연세대학교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공공의료기관인 원주의료원 등이 그 예다. 하지만 늦은 밤 아이를 안고 이 병원을 방문했던 원주 시민이라면 분명히 이 병원들은 아이를 돌보기 위한 병원이 아니라는 느낌을 똑똑히 받았을 것이다.
옆 동네 춘천을 보면 어린이병원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야밤에 열나는 아이를 안고 원주에서 춘천까지 달렸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원주에 살고 있는 0~9세 아동이 약 3만5천 명이다. 춘천은 약 1만 명 적다. 이 정도면 원주에도 어린이 전문 병원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묻게 된다.
야밤이 아니더라도 콧물감기로 괴로워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소아과 진료를 한번 보려고 해도 항상 만석이다. 2~3시간 기다림은 기본이다. 심지어 소아과 오픈런이라는 용어도 등장한다. 더 큰 문제는 휴일과 야간이다. 원주에 있는 소아청소년과 의료기관 중 야간과 휴일에 운영하는 '달빛어린이 병원'은 0개다.
우리나라 소아의료체계는 중증어린이를 전문으로 전담하는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일명 어린이병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를 육성하는 소아청소년과 수련병원, 중등증 수준의 치료를 담당하는 아동병원, 그리고 경증 아이가 방문하는 소아청소년과 의원으로 구분할 수 있다. 야간이나 휴일에 중증 응급 어린이를 데려갈 수 있는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와 경증 아이가 방문할 수 있는 달빛어린이병원도 있다.
원주는 어떠한가? 언급한 의료기관 중 소아청소년과 수련병원인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이 유일하다. 그나마 있는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도 상급종합병원이다 보니 정말 심각한 상황에 놓인 성인 환자를 보기에도 여력이 없다. 그러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원주에 거주하는 아이 중 제때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에 이르는 사례가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더 늦지 않게 원주에 어린이를 전문으로 치료할 수 있는 의료기관을 설치하자. 국가의 재정 지원체계를 적절히 활용하고 필요하다면 때때로 원주시 재정을 이용하면 될 일이다. 창의적인 정책적 지원과 획기적인 의료계·지역사회 협력으로 이 문제를 풀어나가면 된다. 물론 그 중 가장 필요한 것은 원주시의 의지다. 민간에만, 중앙정부에만 이 문제를 떠넘기지 말자.
견월이망지(見月而望指),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보고 있다는 의미다. 원주시가 저출산 시대에 인구를 늘리고 싶다면, 아이들이 안전한 도시를 만들고 싶다면 늦지 않게 나서야 한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을 때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전문 의료기관이 우리 지역에도 필요하다는 것이 우리의 달이다.
여준성 전 청와대 사회정책 비서관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