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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의 나라 일본인이 열광하는 원주 칠 (漆)

기사승인 2023.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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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종수의 문화유산 썰-관광도시 원주(10)

▲ 1957년 태장동에 설립된 원주칠공예주식회사. 이곳에서 정제한 칠과 송진은 모두 일본으로 수출되었다.

 지난주 본보에서 소개했던 반계리 은행나무가 세계의 은행나무 중 가장 아름답다는 주장은 필자의 뇌피셜(腦 fficial)이다. 그런데 과학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세계에서 제일 우수한 품질로 검증된 원주의 자원이 있다. 원주에서 생산되는 칠(漆)이다.

 칠은 옻나무의 수액(樹液)으로 흔히 옻진으로 부른다. 옻진은 강한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성분을 가지고 있어 피부에 접촉하면 심한 염증을 일으킨다. 옻진 중 피부염을 유발하는 성분은 '우르시올(Urushiol)'이라는 성분이다. 현재까지 옻진 알레르기를 진정시키는 특효약이 없을 만큼 강한 독성을 가지고 있다. 옻진에 민감한 사람은 피부염이 온몸으로 번져 며칠 동안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고생하게 된다.

 원주의 옻나무에서 나는 칠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검증한 것은 일제 강점기 일본인이었다. 일제 강점기 식민정부에서는 우리나라의 모든 자원을 전수 조사했다. 주식인 쌀을 비롯한 식량자원에서부터 석탄과 같은 광업자원과 바다에서 생산되는 어패류 같은 수산자원 그리고 산에서 자라는 나무를 비롯한 임산자원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우리 국토의 모든 자연 자원을 조사했다. 그들이 전국을 다니며 애써 조사한 이유는 자원 수탈이었다. 좋은 쌀, 금과 은, 석탄, 나무의 씨앗과 바다의 물고기들을 내지(內地)인 일본으로 가져갔다. 일본인들이 원주에서 공출(供出)해간 주요 자원은 옻나무에서 채취한 칠이다.

 일제 강점기 식민정부의 일본인 학자들이 한 우리나라 전역의 옻나무에서 나는 칠의 성분 조사 결과 평안북도 태천군(泰川郡)의 칠이 가장 좋고 원주의 칠은 두 번째였다. 태천군은 동경 125°20′∼125°40′, 북위 39°46′∼40°51′에 위치하며, 운산군, 영변군, 구성군, 정주군, 박천군, 삭주군과 창성군과 인접해 있다. 태천군의 위도와 경도, 인접한 지역의 지명을 보면 알겠지만 태천은 우리나라 북쪽 끝에 위치한 오지이며, 국경도시인 신의주, 단동시와 멀지 않은 지역이다.

 태천군은 고려시대에는 태주(泰州)가 설치된 지역으로 원주와 같은 지방행정의 중심지이다. 비록 북녘에 있지만 지명 끝에 고을 주(州)자를 쓰는 동주(同州) 도시인 셈이다. 위성 사진을 보면 태천군의 북쪽은 한반도의 험준한 고원지대이지만 태천은 비교적 낮은 분지를 이루고 있다. 

 서해안의 다습한 기류가 태천 북쪽의 높은 산악을 넘지 못해 연중 비가 많이 오는데 연간 강수량은 1천278㎜로 서남해안·영동지방과 함께 한반도의 3대 다우지 중 한 곳이다. 태백산맥 동쪽에 있는 강릉을 비롯한 영동 지역에 비가 많이 오는 것과 같다. 태천군의 서남쪽에는 아시아 대륙과 한반도를 이어주는 주요 교통 도시인 정주와 안주시가 위치해 있다. 태천군에서 생산되는 칠(漆)은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여 나전칠기(螺鈿漆器) 기술을 개발하기 위하여 1934년 칠공예학교가 설립되었다.

 식민정부와 일본인들은 왜 심한 피부염을 일으키는 원주의 칠을 주목했을까! 민간에서 옻진으로 부르는 칠은 인류가 기원전부터 사용한 도료(塗料)이기 때문이다. 칠은 뛰어난 방충, 방수 효과 때문에 목기 표면에 바르면 나무가 부패하지 않고 오래 보존될 수 있다. 보존성뿐만 아니라 칠은 투명한 광택을 가지고 있어 목기를 더욱 빛나게 해준다. 

 식물학에서 이름 붙인 옻나무의 학명은 Rhus verniciflua STOKES 이다. 서양 사람들은 옻나무의 공식 이름인 학명보다 Japanese Laquer Tree(일본 도료 나무)라고 부른다. 서양인들이 옻나무에 일본 국명을 붙인 이유는 일본인들이 그만큼 칠을 많이 사용했고 칠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목기의 표면에 바르는 도료로서 칠을 평가하는 기준은 옻나무 수액인 칠의 주요성분인 우루시올(Urushiol)의 함량이다. 원주 옻칠의 우루시올 함량은 72.53%로 일본산 67.25%, 중국산 62.06%에 비해 월등히 높다. 

 반면 수분 함량은 원주산(16.16%)이 일본산(23.21%), 중국산(27.56%)보다 적다. 또한 칠공예 장인들은 원주산 칠은 접착력과 광택이 중국과 일본산 옻칠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고 말한다.

 일본은 기온이 높고 습하다. 대륙에서 떨어진 섬나라 일본이 가진 지정학적 기후 특징이다. 전통적으로 일본의 건축은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나무를 많이 사용한다. 집뿐만 아니라 가구와 식기, 도구들도 나무를 많이 사용한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나무를 많이 심고 계획적으로 관리한다. 그러나 나무는 고온다습한 환경에서는 쉽게 부패한다. 나무로 만든 집과 가구와 기타 목기들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성능이 뛰어난 도료가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옻나무의 수액인 칠이었다.

 원주의 옻나무에서 나는 칠이 우수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일제 강점기 식민정부에서는 옻나무 증식 10개년 계획을 세우고 정책적으로 원주에 옻나무를 심었다. 판부면 일대 치악산 주변의 야산과 농토로 쓰기에 거친 들에 계획적인 옻나무 식재가 이루어졌다. 이때 심은 옻나무가 150만 그루 정도였다고 한다. 대체로 옻나무는 식재 후 7년이 지나면 칠을 채취할 수 있는데 원주에서 채취한 칠은 대부분 일본으로 공출해갔다. 한반도 북쪽에 있는 태천보다 원주에 옻나무를 심어 칠을 채취해 운반해 가는 일이 더 쉬웠기 때문이다. 

 칠을 채취하는 일은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피부염을 일으키는 칠 성분 때문에 돈을 많이 주어도 칠을 채취하는 일은 사람들이 꺼리는 일이었다. 식민정부에서는 많은 칠을 생산하기 위하여 조합을 만들고 원주군의 행정조직에도 칠 생산과 공출을 위한 조직을 두기도 했다. 또 칠을 채취하는 젊은이들에게는 징용과 부역을 면제할 정도로 칠 공출에 열을 올렸다. 

 지금 일본에 남아 있는 중요한 가구를 비롯한 목기들이 부패하지 않고 반짝이는 광택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원주의 옻칠이 큰 역할을 했다. 일본을 여행하면서 박물관에서 유난히 빛나는 목기들을 보게 된다면 '원주의 자연, 원주의 빛'이라고 생각하시라.

 

이 기사는 지역신문 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박종수 전문기자(전 원주시 학예연구관)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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