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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능(無能)보다 더 무서운 퇴행(退行)

기사승인 2024.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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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가 혼란스럽다. 정치권으로 촉발된 다양한 이슈는 더 강한 메시지 충돌로 이어진다. 안정과 통합을 주창하며 출범한 현 정부는 내편 네편을 정확히 갈라친다. 내 편은 로맨스요 네 편은 불륜으로 치부하고 핵폭탄급 용어를 여과 없이 살포한다. 제왕적 권한의 대통령과 일부 지방정부 장들의 관치적 행태는 국민들이 안중에 없다. 야당도 언론도 지역도 품어내는 포용력과 리더십 부재로 지금 대한민국은 상실(喪失)의 시대가 진행되고 있다.

 올해로 지방자치 제도가 재 부활된지 33년이 되었다. 공자는 '논어 위정편'에 나이 서른을 '삼십이립(三十而立)'이라 했다.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나이를 일컫는다. 민주주의 제도와 함께 무수한 역경을 이겨내고 탄생된 것이 지방자치 제도이다. 그런데 자립할 성년의 시기가 지났어도 걸림돌이 가로막고 있다. 바로 하위 수준의 정치와 정치인들이다. 민주주의 시스템에서 정치를 한 마디로 설명하면 '이견 조정과 합의'다.

 즉, 국가나 사회에서 숱한 갈등이 폭력 사태나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고 대개 공동체 안에서 해결되는 것은 정치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대한민국엔 그 정치가 작동하지 못하고 결국 지방자치의 성장 엔진은 멈춰 서 있다.

 필자는 오랜 기간 지방자치와 지방분권에 대한 설파를 이행했다. 뜻을 함께하는 전국의 지식인들과 광화문으로 국회로 목청을 높이고 의제를 정리해 나갔다. 많은 이의 수고로 미미한 수준이지만 지난해 32년 만에 지방지치법을 개정할 수 있었다. 확장성의 한계에 대비하고 시민들의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전문 강사 양성에도 참여했다. 그 결과물이 최초로 강원도에서 이루어졌고 '호민관대학'을 출범시켰다. 현재는 사라진 그 과정에서 배출한 다양한 강사들의 역할이 작든 크든 현장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생산했다는 것은 정설이다. 

 당시 가장 고민되었던 부분 중 하나는 중앙의 권한이 지방으로 이동되는 과정에서 그 권한의 정체를 뚫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즉 중앙부처 장관의 권한이 도지사로, 도지사에서 시군구의 장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그 권한을 주민들에게 돌려주지 못하는 것이 시장·군수라는 것이다. 그만큼 시장·군수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확대됐고 그 권한이 주민들에게는 오히려 통제장치로 작동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문제는 하버드대 마이클 젠슨(Michael C. Jensen)과 로체스터대의 윌리엄 멕클링(William Meckling)이 제기한 주인-대리인 이론(Principal-Agent Theory)의 몰이해에서 나타난다. 모든 계약관계에서 나타날 수 있는 그 딜레마는 특히 정치권도 무관하지 않다. 즉 유권자와 선출직의 관계이다. 국민으로부터 5년 계약직으로 임명받은 대통령, 4년의 도지사와 시장·군수, 다가올 4월 총선의 국회의원 등 모두가 이 이론적 근거를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숭고한 희생을 통해 얻은 민주주의와 지방자치를 역행시키며 관치를 이어가는 세력이 정작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사례는 무수하다.

 요즘 원주에서도 이 논쟁이 뜨겁다. 시장과 시민들, 체육계, 문화계, 언론 등의 대립으로 고소 고발이 난무하고 있다. 이를 우려하는 지식인들과 시의회가 자성을 촉구하고 있다. 한 마디로 정치의 실종, 리더십과 포용력 부재에 대한 질타이다. 모든 선출직은 민주주의와 지방자치 개념을 이해하고 그 기반이 출발점이 돼야 한다.

 내가 주인인지 시민이 주인인지 헷갈리기 시작할 때 무능(無能)보다 더 무서운 퇴행(退行)이 우리 앞에 닥칠 것이다. 공복(公僕)은 "국민이 없는 국가가 없고 백성이 없는 목민관이 존재할 수 없다"라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글귀를 명심해야 한다. 그 논쟁의 종점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구자열 혁신&상생연구원 이사장 wonjutoday@hanmail.net

<저작권자 © 원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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