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 파리 올림픽 개막식 공연은 성수소자, 장애인,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하며 예술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누릴 수 있다는 메시지 전달
근대 올림픽 창안자들은 처음부터 올림픽이 국가 대항전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1900년 파리에서 열렸던 2회 대회 때 국가 간 대항전이 도입되기 시작했고, 3회 대회 때부터는 국가 간 대항전이 완전히 자리 잡기 시작했다. 즉 초기 올림픽의 이념은 국가 간 경쟁이 아닌 인간의 몸에 관한 투지와 의지를 발현하는 장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올림픽이 국가 간 대항전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올림픽 개막식은 국가주의를 공개적으로 과시하는 내셔널리즘의 잔치로 변화하기 시작됐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은 3천여 명의 대규모 공연단을 앞세워 아리아인의 우수성과 나치의 정치적 목적을 선전하기 위한 형식이 확고해졌으며 이후 모든 올림픽 개막식은 베를린 올림픽의 공식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2024 파리 올림픽 개막식은 1789년 혁명을 통해 왕정을 무너트려 공화제 국가를 만든 파리시민 정신을 기반으로 했다. 프랑스 국기에 담겨 있는 자유와 평등과 박애의 정신이 바로 그것이다. 개막식을 연출한 82년생 연극 연출가 토마 졸리는 도발적이고 파격적이며 혁명적인 발상으로 자유와 평등과 박애를 공연화 했다.
1936년 이후 올림픽 개막식은 스타디움을 이용한 형식주의와 엄숙주의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지만 파리 올림픽 개막식은 파리시민 모두와 함께 하기 위해 스타디움을 벗어나 센강을 주 무대로 쉴 새 없이 오고 가듯 공연했으며, 경기를 위해 참여하는 각국의 선수들은 배를 타고 센강을 통과하며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을 수 있는 열린 형식을 갖추었다.
또한, 불붙은 성화를 스타디움이 아닌 도시의 하늘 위로 비행시킴으로써 파리시민 모두가 함께 성화를 볼 수 있는 평등한 권리를 선사했다. 개막식 공연은 성소수자, 장애인, 그리고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하며 예술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누릴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모두 11막으로 구성된 개막식은 파리라는 도시 자체를 무대화하면서 파리의 역사성을 부정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역사를 덧입혀 파리가 미래 세대를 위한 도시임을 선언한다. 왕정을 무너트린 혁명의 도시 파리는 다양성을 받아들이며 무수한 사람들의 혼용과 융합을 통해 변화해 왔다. 예술적이며 퇴폐적이고, 폭력적이며 다양성이 존중되는 도시다.
그리고 연출자 토마 졸리는 그런 파리의 역사를 과거로 돌려 프랑스 헌법 1조에 있는 '인간은 나면서부터 자유롭고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당연한 선언을 우리가 잊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파리 올림픽 개막식은 이 선언을 현재의 우리에게 그치지 않고 미래의 우리에게도 그 권리가 있음을 분명히 한다. 개막식은 폭력의 부조리함을 노래하는 디오니소스가 등장하고 검은 피부의 가수가 국가를 부르고 아프리카계 가수의 노래에 공화국 수비대 군악단이 연주하는 파격을 선사하지만 이것 역시 평등과 박애라는 선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많은 장면에서 춤을 추지만 그 춤은 세계적 명성의 파리 오페라 발레단이 추는 엘레강스한 춤이 아니라 브레이킹, 왁킹, 크럼프 같은 하위 문화 스트리트 댄스들이다. 그리고 마침내 연출자 토마 졸리는 엔딩곡으로 "사랑의 찬가"를 선택했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 셀린 디옹은 '전신근육 강직인간증후군'이라는 희귀질환을 앓으며 5년 전부터 노래를 멈췄던 가수다. 그는 최근 NBC 와의 인터뷰에서 기어서라도, 손으로 말을 해서라도 무대에 오르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기어이 파리 올림픽 개막식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그가 부르는 '사랑의 찬가'는 기적에 도전하는 인간이라는 올림픽 정신의 본질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노래는 "푸른 하늘이 무너질 수 있어요. 땅도 무너질지 몰라요. 당신이 날 사랑하든 상관없어요. 세상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않아요."로 이어진다. 근육 통증으로 숨쉬기 힘들고, 성대를 움직이기도 힘든 가수가 부르는 그 노래는 국가주의에 매몰돼 있던 올림픽을 향해 혁명의 방아쇠를 당기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성별, 계층, 나이에 상관없이 87%의 프랑스 국민들이 이번 개막식이 성공적이었다고 답했다.
이번 개막식을 앙가주망(참여)과 똘레랑스(관용)의 조화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권위주의 시대는 끝났다. 사람의 시대가 이미 시작됐다. 누구나 문화와 예술을 누릴 수 있는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 그것은 국가가 개인에게 주는 것이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갖게 되는 것이다.
원영오 연출가/극단노뜰 대표 wonjutoday@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