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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익은 벼일수록 고개를 숙인다
2010년 02월 17일 (수) 15:08:50 이대호(작가) daiho35@hanmail.net

   
최근 법정에서 모 판사가 자신보다 연세가 한창 높은 원고에게 막말을 한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면서 매스컴마다 앞을 다투어 한바탕 떠들썩했던 적이 있었다.

방송이나 신문 모두가 그 당시의 재판과정이나 상황을 자세히 설명한 곳이 없어서 더 깊고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새파랗게 젊은 판사가 나이가 많은 원고에게 ‘버릇없이 튀어나오지 말라’고 큰소리로 호통을 친 것이 화근이 된 것 같다.

판사는 39세, 그리고 원고는 69세의 어르신이라고 하였다. 두 사람간의 나이 차이는 충분히 아들과 어버지뻘이 되고도 남을만한 차이이니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상식 외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사건이 벌어지자 매스컴들은 일제히 ‘버릇없다’는 말은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아랫사람을 타이를 때 사용하는 말인데 어찌 웃어른에게 그런 실수를 저지를 수 있느냐며 이구동성으로 판사의 경솔한 태도와 예의까지 들먹이며 한바탕 떠들썩하였다.

우리 속담에 ‘잘 익은 곡식일수록 고개를 숙인다’ 는 말이 있다.

다른 곳과 달리 법정은 특별히 만인이 평등한 대접을 받기 위한 현장임은 두 말할 필요조차 없는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법을 역행하고 있는 법의 세계가 새삼 한심하고 답답할 뿐이다.

국어 사전에서 ‘버릇없다’를 다시 찾아보게 되었다.

‘버릇없다’는 형용사로서 ‘어른이나 남 앞에서 마땅히 지켜야 할 예의가 없다’라고 분명히 설명하고 있다.

물론 법관들 모두가 그토록 몰상식하지는 않으리라 믿고 있지만, 아마도 그런 안하무인격인 판사들은 법에 대한 전문 지식과 학식만큼은 보통사람들보다 깊고 높은지는 몰라도 우리말의 올바른 사용법과 국어의 문법, 그리고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예의만큼은 제대로 익히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심히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매우 궁금한 것이 또 한 가지 있다.

그 젊은 판사 역시 엄연히 가정이 있을 것이고, 아직은 젊은 나이이기에 분명히 그의 부모님들도 생존해 있을 게 분명하다. 그런 사람이 가정에서 자신의 아버지나 어머니에게도 법정에서처럼 함부로 반말을 하며 버릇없다는 말로 막말을 하는 것은 아닌지?

원고이든 피고이든 법정에 나온 사람들의 대부분은 어쩌다 운이 안 좋아 억울한 일을 당하고 그 억울하고 분통 터지는 일을 당사자들끼리 스스로 해결할 수 없기에 마지막으로 법에 호소하여 정당한 대접과 판결을 받기 위해 나선 사람들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 역시 인간이기에 엄연히 감정을 지닌 개개인의 소중한 인격체이며 그러기에 또한 정당한 법의 심판을 받기 위해 저마다 큰 기대를 가지고 나온 사람들이다.

그들 중에는 오랜 세월을 보내는 동안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나머지 신경이 날카로울 대로 날카로워진 사람들이 적지 않으리라 본다. 그러기에 억울하고 분통이 터질 것 같은 울분을 참다 못해 이성까지 망각한 채, 나중 일이야 어찌 되든,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상대방을 향해 마구 퍼부을 수도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자신의 울분과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상대방을 때려 죽이려고 달려드는 우발적인 거센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의지하러 온 곳이 바로 법정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자리에서 판사로부 터 위로는 받지 못할 망정 그런 뜻밖의 치욕적인 욕설을 듣게 된다면 얼마나 황당할 것인가.

그리고 기껏 의지하려고 큰 마음 먹고 나선 법정에서 그렇게 나온다면 얼마나 실망감이 뒤따를 것이며 그 다음번에는 어느 누구를 찾아가서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고 의지해야 한단 말인가.

저속하게 표현하자면 그야말로 닭 쫓던 개 지붕을 쳐다보는 꼴과 그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본인 역시 오래 전, 방청객으로 법정에 가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당시 재판 과정에서 난 평소의 버릇처럼 나 자신도 모르게 양쪽 손을 들어 팔짱을 끼는 순간, 당장 팔을 내려놓으라는 매우 위압적이며 권위적인 판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그 판사 역시 본인의 몇 번째 자식이 되기에도 충분할 정도로 새파랗게 젊은 나이였다.

난 무안을 당하기가 무섭게 바로 팔을 내려놓기는 했지만, 그렇게 창피하고 수치스러울 수가 없었다.

공연히 법정에 왔다는 후회를 하기도 하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원고나 피고 모두 나이가 적든 많든 무조건 판사의 명령에 따라 묻는 말에 간단히 대답만 해야 하고, 판사는 더 이상의 억울한 사정이나 의견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하도 답답한 마음에 무슨 말을 한 마디 더 하려고 나서기가 무섭게 바로 퇴장 명령에 따라 밖으로 내쫓기곤 하는 굴욕을 당하기가 일쑤였다.

물론 소액 재판을 하는 법정이었기에 매일매일 판결을 해야 할 건수가 너무나 많은 것은 사실이다.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 매어서는 쓸 수 없다는 속담이 있다.

재판 건수가 너무 많아서 그렇게 대강 급히 넘길 수밖에 없다는 게 그 이유라면 차라리 재판 과정이나 법을 시정해서라도 개개인의 의견을 충분히 들어줘야 하는 게 옳은 일일 것이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억울한 사정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서민들이 찾아가는 곳이 바로 법정인 것이 아닌가. 법정에서 개개인의 억울한 사정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는다면 그 다음엔 누구에게 하소연이라도 할 수 있단 말인가.

서민들의 억울한 사정을 낱낱이 귀담아 듣고 이를 공정하게 해결해 주는 곳, 그것이 바로 법정이 아니던가.

그러기에 법정은 그 어느 곳보다도 너그럽고 따뜻하고 고운 말 바른 말이 오고가야 하고, 최대의 관용이 베풀어져야 하는 곳이 바로 법정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래 전, 억울하면 출세를 하란 유행어가 한동안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가. 물론 모두가 다 그렇다고는 볼 수 없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법관들은 일찍이 출세를 하여 지위가 높아진 까닭일까.

너무나 권위적이고 위압적이며 명령조로 일관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최근 원고에게 막말을 하여 문제를 일으켰던 판사의 경우, 어쩌면 표면상으로 드러난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 사건이 아닌가 여겨진다.

앞으로 바라건대, 부디 참말로 배운 사람다운, 그리고 참된 인간적이며 예의바른 법관들의 모습을 보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다.

‘벼는 익울수록 고개를 숙인다’ 하였다.

그러기에 법정에 선 사람들을 향해 막말이나 반말을 서슴지 않는 안하무인적인 법관이 있다면 그 법관은 결코 잘 익은 벼란 대우와 취급을 받을 수 없으며 국민들의 심판을 받아 마땅한 인격이라고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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