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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論] 우리 동네 막걸리 어디로 갔을까
남양주유기농축제 '건배'...우리동네 막걸리로 어떤가
2009년 07월 07일 (화) 11:41:49 한철수 편집위원 guji2311@hanmail.net

“아무개야! 아버지 좀 찾아보렴."/초저녁 굴뚝 연기 서풍을 따라/춤출 때면 울 할머니/ 일상으로 하시는 말씀.//종종걸음으로 삼거리로 나선다./(중략)/대폿꾼 사이를 비집고/아버지 곁에 천연덕스럽게 앉으면/"우리 맏상주 맏상주"/곤달걀을 까서는 입에 넣어주시고는/툴툴 집으로 향하시는 아버지.//아버지의 거친 손으로/아이의 손을 숨긴다.//그 흔한 구멍가게 하나 없던 우리 동네/삼거리 끝자락 대폿집/그 안에는 아버지와 같은 주전부리가 있었다."-한철수의 "삼거리대폿집" 전문.

70년대 밤이 이슥해지면 흔한 풍경이다. 마을 어귀 대폿집을 찾아 나선 어린 아들과 농사꾼 아버지와의 정겨운 모습을 담은 글쓴이의 성장시이다.  6월이 오면 가뭄과 장마대비에 열을 올리고 물꼬 때문에 친하던 이웃과 다툼이 있던 날은 평소보다 일찍 연탄화덕에 둘러 앉아 시시비비도 가르고, 화해의 술잔도 나누던 사랑방이 바로 마을 어귀의 대포집이다.

-어이 대포나 한잔하지....

어디 그뿐인가 7~80년대 민주화운동이 한창이던 도심 곳곳의 막걸리 집은 대학생과 이들을 지지하던 선배들과 시류(時流)도 한탄하며 온갖 고민과 대의명분(大義名分)을 불사르던 곳 또한 대포집이다.

그렇게 어린 시절과 초기청년시절 속에서 대포로 상징 되었던 막걸리는 한 세대와 함께 자랐고 그 성징(性徵)을 함께 나누고 있는 것이다.

다른 술보다 막걸리를 마시기를 즐겼지만 젊은이의 술로 대표되는 소주, 생맥주에 밀려 그를 만나는 횟수는 점점 줄어들어 무심의 약속 '어이 대포나 한잔 하지'는 '언제 쏘주나 한잔 하지' '친구 한 쪼끼 어때'로 자연스레 바뀌었고, 막걸리 잔을 나누면 좀 특이한 군상으로 여겨져 왔다. 

가끔 술동무와 구리시장 좌판을 찾는다. 특히 요즈음 같은 장마철이면 더욱 그러하다. 슬레이트 천정을 두드리며, 바지가랭이가 촉촉이 젖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꼬막이며 닭발, 꼬마족발, 수구레 따위와 현실을 씹고, 아련한 동경을 마시며, 인간의 내성을 감성으로 만지게 하며, 찌그러진 인생과 동조하는 것이 찌그러진 주전자와 양은잔 속의 막걸리다.

-왕대포, 모래미, 술지게미. 모주첨지, 대포꾼...

대포, 왕대포는 술잔으로 그 시원(始原)은 유구(悠久)하다. 대포(大匏)란 큰[大] 바가지[匏]를 말하며, 큰 바가지에 따라 마시는 술을 말하며, 경주에서 신라의 도포(陶匏)가 출토되어 포석정에서 곡수(曲水)에 띄워 일체동심을 다진 것이 대포가 아닌가 싶다.

조선초 여진족이 북방을 자주 침범하자 세조는 신숙주에게 함길도체찰사라는 직함을 주고 조용히 편전으로 불러 궁벽을 타고 오르는 박을 바라보며 "저 박이 여물 때까지 오랑캐를 무찌르겠는가?"고 물었다. 신숙주가 평정하고 돌아 왔을 때 박더쿨에 달덩이만한 박이 열렸고, 세조는 그 박을 술잔으로 만들어 술을 가득 부어 대취하도록 나누어 마셨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군신간 의례는 물론 술동무와 배려를 나누는 것 또한 대포다.

대포에는 막걸리가 제격이다. 막걸리는 백성들이 즐겨마셔 향주(鄕酒), 농부들의 술이라 농주(農酒), 집집마다 담궈 가주(家酒), 제사에 올린다 해서 제주(祭酒), 희다해서 백주(白酒), 탁하다 해서 탁주(濁酒), 술을 마시면 아름다운 싯귀가 나와 가주(佳酒), 술에 취하면 따따부따하면 고래주, 제자리를 뱅뱅 돌아 앉은뱅이 술, 막사발에 마신다해서 탁빼기 등 그 쓰임새와 흥취에 따라 다양하게 부르고 있다.

막걸리의 정체는 "막 걸러 마시는 술"이라 폄하하지만 그 제조는 경건의 극치로 육재(六材) 즉 최상의 쌀(고두밥), 누룩, 샘물(용수), 그릇(도기, 항아리), 온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성(精誠)... 이 여섯 가지 재료의 잘 조화되어야 참다운 막걸리가 된다.

'모래미(진땡이)'는 걸래미(걸치기)와 용수에 거르기 전의 원재료이며 모래미 한 됫박이면 막걸리 열 되가 나온다는 속설이 있다. 막걸리를 거르고 난 찌꺼기를 '술지게미'라 하고 이를 '모주(母酒)'라고도 한다.

모주란 인목대비(仁穆大妃)의 생모 정(鄭)씨 부인이 영창대군사건으로 제주도로 유배를 가 술지게미로 재탕한 따스한 막걸리를 섬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왕비의 어머니가 만들어 준 술이라 그렇게 부르고, 막걸리꿈을 '모주첨지'라 부르는데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의 주인공 김첨지의 대포생활이 모델이라 하겠다.

-우리 동네 대표 막걸리는 다 어디에... 

좋아서 한잔, 슬퍼서 한잔, 심심해서 한잔, 힘들어서 한잔...갖가지 이유를 대며 막걸리와 공존했고, 왜정시대 향리(鄕里)를 대표하는 근대식 양조장이 등장하여   요즈음은 다이어트. 웰빙, 특화라는 별미(別味) 아래 막걸리가 주류세계의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짧게는 몇 십년 길게는 몇 대를 이어오던 양조장의 모습은 21세기를 접어들면서 남들은 브랜드화를 외치며 상종가를 치고 있을 때 우리동네 막걸리는 그 상표조차 찾기 힘든 형편이다.

남양주시 덕소, 금곡, 수동, 송라, 묵갓골, 사릉, 화접, 광릉 구리시 대천 등 각 마을마다 누룩내를 풍겼던, 그 많았던 막걸리 술도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20세기와 21세기를 넘나들던 때 덕소와 금곡 주정공장 대표가 빅딜로 '전안이'이라는 남양주대표주자로 잠시 떠오르던 것을 제외하고는 최근 여느 구멍가게, 골목슈퍼, 대포집에서도 남양주시를 대표하던 막걸리는 구경조차 힘들다.  

-남양주유기농축제 '건배' 우리동네 막걸리로...

우리동네 막걸리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는 가운데 구멍가게 진열장에서 우연히 만난 사능의  '멧탁주'는 큰 위안이다. 타 지역에서 몰려와 주객이 전도되는 실황에 우리 동네 막걸리를 지켜내고 보전하는 것 또한 문화브랜드를 지키는 일이다. 우리동네 역시 포천, 김포, 전주에 못지 않은 우리동네 만의 향과 맛을 내고 있는 우리동네 신토불이의 막걸리가 아직 남아있다.  

조선시대 각 관청에는 한말들이 대포로 술을 돌려마시며 공동체의식을 다지는 제도가 있었다. 사헌부의 아란배(鵝卵杯), 교서관의 홍도배(洪桃杯), 예문관의 벽송배(碧松杯)가 그것이다. 대포는 무릇백성의 문화가 아닌 군신, 붕우, 상하계급을 막론하고 우리 일상에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남양주세계유기농축제"도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남양주시를 찾은 세계유기농 농민에 우리쌀, 우리물로 빚은 막걸리를 커다란 옹기항아리에 가득채워 조롱박에 넘치게 담아 건배를 외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 막걸리꾼, 대포꾼의 작은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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