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 2020년 11월 30일 오후 02시 57분
독자투고  |  기사제보  |  회사소개  |  시민기자 가입신청
인기 : , ,  
> 뉴스 > 문화·교육
       
[세계유산등재 특집-2] 동구릉 배릉(拜陵)...어가행렬
폭우 중에 차분히 치러...참여 57사단 장병에게는 큰 추억
2009년 07월 14일 (화) 21:31:06 한철수 편집위원 guji2311@hanmail.net

동구릉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기념하는 "2009년 구리 동구릉 건원문화제" 어가행렬 재현 14일 오전 장맛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거행되었다.

이 어가행렬은 구리시 주최, 구리문화원이 주관하였고 문화재청, 육군제57사단,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후원하여, 오전 10시 구리시체육관을 출발하여 '아랫교문리 4거리-돌다리-건원대로-동구릉길-동구릉" 3km의 거리에 이어지는 행렬을 재현했다.

   
2009년 건원릉문화제 "어가행렬"...돌다리육교를 지나고 있는 왕세자 행렬.

건원문화제는 2004년을 시작으로 격년제로 실시했으나 올해는 동구릉을 비롯한 조선왕릉 40기가 지난 6월27일 세계문화유록으로 등록 된 기념으로 거행됐다. 

구리시 인창동 소재 동구릉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를 비롯해 9릉 17위의 왕과 왕비릉이 있는 우리나라 최대 왕릉군으로 임금행차가 백 수십 차례 조선왕조실록에서 언급하고 있다.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배릉(拜陵)의식'에 의하면, 조선시대에 새로운 왕이 등극하면 반드시 건원릉 은 물론 부왕과 왕후의 산릉에 참배하도록 하여  조선왕조 518년 동안 왕이 친행(親行)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어가행렬은 구리시민을 대상으로 공개 선발 된 왕과 왕세자, 3정승과 문무백관 일부를 제외하고는 육군 57사단 정병들에 의해 행렬이 이루어졌다.

이번 어가행렬에 큰 역할을 맡은 사단 관계자는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가운데 오늘의 행렬은 그 어떤 훈련보다 엄숙한 실전이었다. 장병들에게는 군생활 중 큰 기억을 남길만 행사이기에 충분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어가행렬은 '노부((鹵簿)'에 의해 실행 된 최고, 최상의 행렬

   
2009년 건원릉문화제 "어가행렬"...임금의 어가를 호위하는 군사와 취타대.

노부란 조선시대 왕실의 의장제도(儀仗制度)로 조회, 연회 등의 궁정행사와 제향(祭享), 능행(陵行) 등의 외부행차 때 권위를 과시하기 위하여 동원된 각종 의장 물품과 그 편성과 운용제도를 말하며 궁정에서는 의장(儀裝), 행차(어가행렬) 시에는 노부라하고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노부는 그 규모에 따라 대장(大仗)·소장 혹은 대가(大駕)·법가(法駕)·소가(小駕) 노부로 구분되며, 신분에 따라서 태자(세자)노부, 왕비의장, 왕세손의장 등이 따로 마련하였고, 그 용도에 따라 길의장(吉儀仗)·흉의장(凶儀仗)·황의장(黃儀仗)·홍의장(紅儀仗) 등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여기서 왕이 궐 밖으로 행차할 때 타는 수레를 가(駕)라고 하고 궐내에서 타는 가마를 연(輦), 일명 덩이라 하였다. '가'는 말이 끄는 것이고, '연'은 사람들이 어께에 메는 것이나 '가'를 사람들이 메기도 하였다. 대가, 법가, 소가는 가의 규모에 따라 구별한 것이다.

왕족이나 귀족의 신분과 위엄을 과시하기 위한 의장제도는 고대 중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일찍부터 사용되었을 것이나 그 내용을 알 수 있는 것은 고려시대부터이다.

고려사를 살펴보면 고려 문종 1년(1047) 노부 정비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의종 때 "상정고금예문"에 완비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노부는 세종 때 정비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 수록되었는데, 고려시대보다 세분화되었다.

1897년 대한제국이 성립되자 종전의 모든 의장은 황제의 노부로 격상, 재정비되었다. 조선시대 노부의 관리와 운영은 병조 승여사(乘輿司)에서 담당하였고 이번 동구릉 행차는 소가노부에 해당된다.  

-노부의 의장용품은 160가지를 넘고 휘장, 무기, 우산, 악기로 나뉘어

   
2009년 건원릉문화제 "어가행렬"...각종 깃발과 휘장들.

 

 노부에 사용된 의장물품은 160여 가지나 되는데, 의장의 용도에 따라 길의장에 속하는 것으로는 각종 기치류(旗幟類), 무기류, 산류(傘類), 부채류, 당류(幢類), 장도류(粧刀類), 악기류 등이 있었고, 흉의장에는 삽, 우보, 만장, 방상시(方相氏) 등이 있었는데, 흉례(상례) 때에만 사용되었다.

황의장과 홍의장은 대중국 관계의 의식에서만 특별히 사용된 것으로 각기 황제와 황태자의 격식에 따라 운용되었다.
   
2009년 건원릉문화제 "어가행렬"...동구릉에 도착한 왕의 행렬. 대가에서 소연으로 갈아 탄 임금.
대가노부는 종묘와 사직의 제사 때, 법가노부는 문소전(文昭殿), 선농단(先農壇), 문선왕(文宣王)의 제사와 열병(閱兵), 무과 전시(殿試) 참관 때, 소가노부는 능행(陵行) 등 기타 출타시에 사용되었다.

이들은 각기 궁정의장의 대장, 반장, 소장에 해당되며, 이상의 각급 노부에는 또한 동원되는 병력과 취타대(吹打隊)와 기타 인원들의 수와 그들의 임무가 규정하고 있다.

의장기는 기(旗) 자체가 상징적인 표지기능을 갖고 있기 때문에 효율적으로 의장의 핵심적인 요소를 이루고 있다. 이들 의장기는 자연물인 하늘, 해, 달, 산, 동물, 그리고 신인(神人) 등을 그려 넣었다.

의장물 역시 기치와 마찬가지의 기능으로 가진다. 따라서 직접적인 권력의 표시가 될 수 있는 도끼, 칼, 창 등의 군사적인 요소가 큰 의물(儀物)과 그늘을 만들거나 시원하게 해 주는 실질적인 목적 외에 상서로운 의미를 내포하는 산, 부채 등이 있다. 그 밖에도 청각적인 상징으로 갖는 의물인 북과 관악기로 구성된 고취악대의 연주를 통하여 통치자의 절대적인 위치를 부각시키고 있다.  

-왕의 행차, 여론수렴과 각쟁, 즉석과거 시험도 치러 

   
2009년 건원릉문화제 "어가행렬"...왕의 행차는 나라의 권위를 나타내고 각쟁을 통해 백성의 고충을 들어주는 언로의 역할도 했으며, 즉석에서 과거시험도 치렀다.

 

 대궐 밖으로 행차할 때는 수많은 백성들이 몰려들기 때문에 더욱 세심한 배려가 필요했다. 왕은 도성 안 행차 뿐 아니라 경기도 밖으로 나가 능행차와 사냥 등으로 몇 달씩 머무는 일도 있었다.

왕의 행차는 백성들에게 놓칠 수 없는 구경거리인 동시에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고, 행차 길에 왕은 꽹과리를 치면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행위를 각쟁이라 하는데, 이는 왕과 백성이 직접 만나 민초들의 여론을 들었고, 그들의 억울함을 들어주기도 하였다.

왕들은 가끔 행차한 지역에서 과거 시험을 시행하거나 쌀을 나누어 주는 등 각종 민원을 해결해 주기도 했다.

   
2009년 건원릉문화제 "어가행렬"...왕은 행차에 따라 면류관과 구장포, 원유관과 강사포, 전투복 등을 입었다. 이날 행차에는 어깨에 오조룡을 새긴 곤룡포를 입었다.

어가행렬을 하다가 휴식을 취하는 곳을 주정소(晝停所)라 하는데 간단한 차나 죽을 먹으면 소주정소, 수라를 들고 오래 머물면 대주정소라 했는데, 동구릉 행차시 지금의 남양주시 퇴계원 지역은 주정소로 활용되었다.

-행차에 따라 왕은 어떤 옷을 입는가

임금의 복식 또한 규모에 따라 바뀌는 데, 대가 때는 면류관과 구장복을 착용하였고, 중국에서는 대략 2만 명 정도의 인원이 대가에 동원되었지만, 조선에서는 그 절반에 이르는 1만 명 정도가 동원되었다.

대가에 비해 약간 규모가 적은 법가는 왕이 선농단(先農壇), 성균관, 무과 전시 등에 임할 때의 행차에는 원유관과 강사포였다.

소가는 작은 수레라는 말 그대로 가장 작은 행차였다. 주로 능에 참배하거나 평상시의 대궐 밖 행차, 또는 활쏘기를 관람할 때 이용되었다. 이때 왕의 복장은 군사훈련과 관련된 전투복을 주로 입었다.

-어가행렬은 반차도에 따라 도열 순서를 정해

왕이 행차할 때는 왕실 또는 국가적인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이나 동원된 의장물의 배치순서를 그려놓은 반차도에 따라 인원과 의장물의 자리와 순서를 미리 정하였고, 행차에 필요한 의장물의 규모는 기본 형태에 따라 실시했다. 

   
2009년 건원릉문화제 "어가행렬"...소가노부라 부르는 어가행렬은 반차도에 의해 행렬순서를 미리 정하고 출발과 환궁에까지 이른다. (얖에서 본 행렬)

행렬의 맨 앞에는 완전무장한 수백명의 군사들은 갑옷과 무기를 갖추고 행차를 보호하고, 국왕의 힘을 과시하는 효과를 나타내며 행렬에 참가하고, 두번째는 행렬에는 화려한 깃발과 의장용 창검을 든 의장행렬이 세번째 행렬에는 어가를 탄 왕이 있었고,  왕의 수레 앞뒤에는 커다란 해가리개(산)와 부채, 취타대를 배치하였다. 그 뒤로는 종친과 문무백관이 왕을 수행하였고, 행렬의 맨 뒤에는 선두와 마찬가지로 군사들이 따랐다.

   
2009년 건원릉문화제 "어가행렬"...돌다리에서 건원대로로 접어드는 행렬의 뒷 모습.

또한, 행렬의 앞뒤에서 행진하는 군사 외에 보이지 않게 숨어서 왕의 행차를 호위하는 병사들이 있었다.  궁궐부터 목적지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곳마다 매복병들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였다. 연락병들도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되어 궁궐과 왕 사이에 수시로 오가는 연락을 담당하였다. 왕은 궐 밖에서도 중요한 국정 사안은 직접 지시하고 결과를 보고받았다. 감찰관들은 매복병과 연락병들이 근무에 충실한 지를 수시로 점검하고, 왕은 목적지에 도착하여 공식 행사를 마친 후 환궁하였다.

대궐로 돌아온 왕은 행차를 준비하느라 고생한 관련자들에게 상을 내리는 한편, 행차 도중에 직접 들은 민원들을 해결하였다. 조선시대 왕의 행차는 나라의 절대 권력자와 현장의 백성들이 직접 만나는 축제의 장이었다.

건원릉 어/가/행/렬의 이모저모  

   
2009년 건원릉문화제 "어가행렬"...왕과 왕세자로 뽑혀 능행차를 한 구리시민.

   
2009년 건원릉문화제 "어가행렬"...출발전 구리실내체육관에서의 최종점검.

   
2009년 건원릉문화제 "어가행렬"...아랫교문리를 통과하는 행렬.

   
2009년 건원릉문화제 "어가행렬"...돌다리4거리로 향하는 행차의 먼 모습.

   
2009년 건원릉문화제 "어가행렬"...빗속의 행차는 힘들어

   
2009년 건원릉문화제 "어가행렬"...비에젖은 병사들

   
2009년 건원릉문화제 "어가행렬"...""이제 끝난 겨" 여유를 부리는 포도대장.
 
*본 고는 신명호의 "조선의례와 생활", 백영자의 "조선왕조의 노부에 관한 연구", 문화원형사전, 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을 참조했습니다.

**남양주투데이에서는 다음 주부터 매주 화요일 "조선왕릉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다음 주 화요일에는 동구릉 세계문화우산등록기념 특집기사는 "건원릉의 베일을 벗긴다."가 이어집니다.

전체기사의견(2)  
 
   * 4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8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남양주투데이
2009-07-20 14:37:42
지적 감사합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중복된 내용을 삭제하였습니다.
건원대로
2009-07-20 13:02:19
노부에 의한 왕릉행차라...
동구동에 사는 주민입니다.
비를 맞으며 행차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는데
군인들이었다니...
군인장병 여러분이 고생하셨네요.
그리고 왕릉행차에 대한 공부 잘 했습니다.
용어자체가 어려워 여러번 앍었고요.
그런데 반복되는 해설이 있습니다.
-왕의 행차 여론수렴....-아래의 "대궐밖으로...."부터 7줄이 중복되었습니다.
타 신문에서 볼 수없는 귀한 자료 고맙숩니다.
전체기사의견(2)
한철수 편집위원의 다른기사 보기  
ⓒ 남양주투데이(http://v479.ndsoftnews.net)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158-66 삼미빌딩 6층 / TEL : 031-592-8811 / FAX : 031-591-0065
등록번호 : 경기 아50018 / 등록일자 : 2006년 9월18일 / 발행인 및 편집인 : 정한성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정한성
C
opyright 2006 남양주투데이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nyjtod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