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밥차가 할 수 없는 것

기사승인 2019.01.14  

공유
default_news_ad1

- 밥차가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는 없을 것. 그래서 우선 허기라도 꺼보라고, 사는 문제는 그 다음이라고 말 할 수밖에…

 

  지난해 말 한해를 정리하며 문득 한 인연이 떠올랐다. 묵은 해니 새 해니 구별할꺼 무어냐고 목쉰 가객은 노래 하지만 겨울 이파리처럼 팔랑이는 달력을 보고 있노라면 이런 저런 회한이 습관처럼 밀려 오는 게 이 시절의 일이기도 하다.
 

 지난 9월 어느 날, 한 사람이 밥차를 찾아왔다.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에 돈 없이도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라고 해서 찾아 왔다고 했다. 헝클어진 머리, 퀭한 눈 그리고 제때 빨지 못한 옷, 무엇보다 다 낡은 삼선 슬리퍼- 삼디다스라고 부른다-가 그의 처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집 나왔냐는 물음에 그는 그냥 기운없이 엷게 웃기만 했다.
 

 "배고파요" 두 번째 접시를 비우고 나서야 자기 같은 사람이 와도 되냐고 묻는다. "물론이지요. 배고픈 사람들이 밥을 먹는 곳이니 제대로 찾아온 겁니다" 그는 금새 말을 튼 몇몇 또래와 어울리느라고 열한 시가 되어도 떠나질 못한다. 텐트를 걷을 시간이 지났다.
 

 "잘 데가 없어요" "그렇군요. 그동안은 어떻게 지냈나요?" "그냥 노숙하거나 아니면 공원 화장실 같은데 들어가기도 하고, 밤을 새기도 하구요" 담배 있으면 한 대 꿔 달라는 그에게 말보로 레드-말레라고도 한다-를 사다 주었다.
 

 "이 담배가 좋은 건 찐하거든요. 자주 피울 수 없으니 필 수 있을 때 한 번에 찐하게 빠는거죠. 그런데 제가 말레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아셨어요?"
 

 그에게 비상 숙소를 알려 주었다. 그곳의 규칙은 친구를 데려올 수 없고 방에서는 음주·흡연이 불가능하고 최장 열흘까지 있을 수 있지만, 이 약속을 못 지키면 그날 바로 나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밥해 먹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모든 일을 다 스스로 해결해야만 한다는 것도 알려 주었다. 그는 그러겠다고 했다. 잠자리가 정해져서 마음이 좀 눅었는지 목소리가 편안해 졌다.
 

 "저 조두순 사건 영화 아세요? 제가 그 주인공 같아요. 나도 비슷한 일이 있었거든요". 그러면서 그는 자신을 그 피해자의 이름으로 불러 달라고 말했다.
 

 인연은 밥차의 그렇고 그런 일상에 그렇게 불쑥 스며 들어왔다. 비상숙소에서 지내는 날이 이주를 훌쩍 넘기자 그는 '언제까지 있을 수 있냐'는 질문을 자주 했다. 그러면서 주민등록이 말소가 된 것 같다고, 어머니는 없고 어려서 집을 나왔기 때문에 아버지가 어디 사는지 모른다고, 폭력을 휘두르던 아버지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냐는 물음에는 시설에 있다가 나와서 줄곧 '그 일'을 하면서 살았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저 미짜인 건 아시지요?' 했다. 고개만 자웃거리고 있었더니 '에이 아실 거 같은데, 미성년자 말이예요' 한다.
 

 그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정상적으로 신원을 회복하여 사회보장 제도의 그물망 속에 편입시키는 방법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왜곡된 기억과 오락가락하는 진술만으로는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가 '본명'을 대고 난 뒤에도 신원 확인이 안 되었다. 경찰은 미성년자는 본인이 거짓말 하면 신분을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문이라도 찍어 보려고 했지만 열 손가락 지문은 습진으로 뭉개져 있거나 물어 뜯겨서 존재를 증명해 줄만한 흔적을 남기지 못했다. 그 사이 다른 길을 열어줄 수도 있는 관계기관 몇 곳이 모여 회의를 했다. 하지만 본인이 정확한 신분을 밝히지 않는 한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이 '현행법상으로는' 전혀 없다는 사실만 확인하였다.
 

 숙소에 스무 날을 넘겨 있으면서 그는 규칙적으로 담배를 피웠고, 밥차에 나와서 또래를 만나 이야기를 하거나 따뚜 운동장을 달리거나 종종 웃기도 했고, 한 대학생 봉사자에게는 잠깐 호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어떤 날은  나가서 '친구'를 만나 치킨을 먹거나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날도 있었다.
 

 한 달이 다 되어갈 즈음, 그는 처음으로 머리에 그루브를 주었고, 목까지 감싸는 흰면 스웨터와 깡똥한 스커트로 한 껏 멋을 내고 밥차에 나왔다. 밥차에서 보낸 며칠이 행복했다는 말을 남기고 그 밤에 밥차를 떠났다. 그는 끝내 자신만이 알고 있을 정확한 신분을 말해주지 않았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은 그가 스물 두 살이었고 '본명'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의 소원은 열일곱 살로 돌아가 교복을 입고 학교도 다니고 수학여행도 가보는 것이었다.
 

 그는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그 소원을 밥차가 들어줄 수 없었다. 그리고 그가 다른 삶을 선택해서 살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도 하지 못했다. 또 다른 인연이 찾아 들어도 밥차는 여전히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선 허기라도 꺼보라고, 사는 문제는 그 다음이라고 말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강유홍 개구리밥차 활동가 wonjutoday@hanmail.net

<저작권자 © 원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