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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락윤 문화공간 씨앗 대표

기사승인 2019.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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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 극복한 사랑 '풍악 올렸다'

 

▲ 성락윤 문화공간 씨앗 대표.

 중학교 1학년이었던 장애 청소년이 이제 어엿한 청년이 됐다. 처음 장구채를 잡고 어리둥절했던 아이들이 이제는 장구는 물론 북도, 징도 수준급이다.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보다는 '재밌게 하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성락윤(53) 문화복합공간 씨앗 대표가 10년 전 판부문화의집 사무국장으로 있을 때 장애 청소년을 대상으로 풍물을 가르치고 싶어 장애인부모 모임인 세잎 클로버 등에 무료 강습을 제안했다. 타악기 연주가 재활운동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부모도 적극 환영했고 경증장애 청소년 5명이 참여했다. 모임 이름은 고래뜰이다.
 

 성 대표는 "이름을 정할 때 지역의 옛 지명을 따서 짓는데 문막 평야에 고래등처럼 올라온 부분을 고래뜰이라고 부른다. 곡식이 잘 되는 땅이라는 뜻이다. 곡식을 잘 거두는 아이들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지었다"고 설명했다. 매주 1회 1시간씩 아이들은 성 대표를 찾아왔고 아이들이 할 수 있는 만큼 천천히 가르쳤다. 욕심을 내지 않았다. 놀이처럼 재밌게 아이들 속도에 맞췄고 우리가락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지만 성 대표는 힘들다는 생각보다 아이들이 풍물을 재밌어 하는 것이 신났다. 1년 동안 배운 것을 발표하는 날 가슴이 먹먹했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풍물 공연을 한 번 해 본 뒤 성 대표는 비장애인과 합동 공연 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만들었다. 성 대표가 풍물 강습을 하고 있는 팀이 공연할 때 고래뜰 아이들이 함께 길놀이를 하거나 공연을 할 수 있게 기획한 것.

 원주시어린이날 축제를 기획할 때는 전야제 공연을 만들어 야간 무대에서 조명을 받으며 공연했다. 비장애인과 공연할 때의 가장 큰 장점은 사람들이 장애 풍물단으로 보지 않고 공연팀으로 본다는 것이다.
 

▲ 장애청소년 풍물놀이단 고래뜰.

 고래뜰 아이들도 비장애인들과의 공연에서 자연스럽게 제 실력을 발휘했다. 2014년에는 안동탈춤페스티벌에 출전, 단체 청소년부 동상을 수상했다. 상금으로 받은 50만원으로 아이들은 부모님께 뷔페를 대접했다. 성 대표는 "우리 상금으로 엄마아빠 맛있는 거 사드리자고 제안했을 때 아이들이 정말 행복해 했다"며 아이도 부모도 행복한 저녁식사였다고 추억했다. 
 

 지난 2년간은 원주시장애인복지관에서 실시하는 장애인식개선 프로그램에 참여해 학교 등을 다니며 풍물 공연을 하는 등 고래뜰은 이제 어엿한 공연팀으로 무대에 선다. 이때 한 명이 고래뜰에 참여해 현재는 6명이 활동하고 있다.
 

 고래뜰 뿐 아니라 장주기요셉재활원, 청원학교 등에서 장애청소년을 가르치고 있는 성 대표. 사춘기 때 개인적인 고민을 친 형에게 이야기 하듯 털어 놓기도 하고 편하게 연락을 주고 받으며 정을 쌓고 있다. 이제는 선생님이라기보다는 가족과 다름없다.
 

 성 대표가 아이들에게 풍물만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과 여행도 많이 다녔다. 밤기차를 타고 강릉에 가서 일출을 보고 돌아오기도 했고 국립중앙박물관 견학도 다녀왔다. 지난해에는 서울에서 원주까지 1박2일간 자전거 여행을 했다. 힘들어 하거나 중간에 포기한 아이들은 없었다. 워낙 오랫동안 함께 했던 아이들이고 풍물로 팀워크를 맞춰 왔기에 어디서 무엇을 해도 척척 손발이 맞는 팀이다.
 

 "아이들과 여행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한 것 같다. 오가며 아이들과 이야기 하고 웃고 즐기는 그 순간순간이 내겐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이야기 하는 성 대표.
이런 그에게 간절한 소원이 하나 있다. 아이들이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이제는 청년이 된 아이들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성 대표는 "꿈터사회적협동조합에서 바리스타와 제과제빵 교육을 받은 고래뜰 단원 중심으로 국악카페를 만들어 커피도 마시고 풍물 공연도 할 수 있는 곳을 만들어 주고 싶다"면서 "아이들이 결혼을 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내 역할 인 것 같다"는 의지를 밝혔다.
 

 대학 때 탈춤을 배운 것이 인연이 돼 문화운동을 시작한 성 대표는 1995년 몇몇 사람과 매지굿연구회를 구성해 매지농악 보존 운동을 하는 등 지역에서 교육자로서 오랫동안 활동하고 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서연남 시민기자 wonjutoday@hanmail.net

<저작권자 © 원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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