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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레지던시와 도시재생

기사승인 2019.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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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재생에 예술을 강조하는 정책들이 잠깐의 유행이 아니길 바란다.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높은 예술성을 이룬 도시재생이 되길 바란다

 

  도시재생을 위한 예술정책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지난 정부부터 추진된 도시재생은 우리사회에 뜨거운 관심과 더불어 논란을 가져왔다. 그리고 도시재생의 붐은 지난해부터 지역의 작은 소도시, 마을까지 다른 국책사업들과 연동되어 날개를 단 듯하다.

 그리고 그 과정에 예술가들의 역할이 섣부르게 도구화 되고 있다. 도시재생이 재개발이 아니라고 말 할 사람이 누가 있을지 궁금하다. 궁색한 변명을 하다 보니 중앙정부도 지방정부도 '예술가' '예술적' 이라는 단어를 슬쩍 끼워 넣어 개발중심의 재생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정작 프로세스를 열어보면 개발위주의 관료주의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결국 도시재생은 지방선거와 맞물려 단기간에 구체적 성과를 내야하는 하나의 이슈가 돼버리는 운명에 처하거나 도시재생에서 이익을 얻게 되는 소위 전문가들만을 위한 국책사업이 되고 만다. 국내 몇몇 도시에서 예술가 레지던시를 통한 도시재생을 진행하는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그렇지만 그 성과는 여러 면에서 아쉬운 수준이다.
 

 레지던시에 참여하는 예술가들은 대부분 단기간 특정 지역에 거주하면서 창작 활동을 하고 있다. 거주를 위한 숙박공간과 작업공간, 그리고 약간의 창작지원금(이것 역시 최저 생계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을 지원 받는다. 그리고 기관에서 요구하는 창작 활동과 지역 커뮤니티 활동(예술교육 등)을 요구 받는다.

 어떤 경우는 주 2~3회의 지역민 예술교육에 참여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의 창작물에 대한 소유권을 기관이 갖기도 한다. 조금 적나라하게 얘기 하자면 예술가들로 하여금 허름한 공간(예술적 공간이라고 주장함)에 들어가 3~6개월 동안 물 마시고 공기만 마시면서, 일주일에 3일은 창작에 매진하고, 3일은 지역민을 위한 예술교육을 하고, 작품이 나오면 기관에 기증하고 떠나라는 얘기가 된다.

 공공기관에서 예술가들의 레지던시 활동을 통해 도시재생이라는 이익을 기대한다면, 먼저 이익을 제공하는 예술가와 이익을 얻게 되는 기관 사이에 맺어지는 불공정한 계약을 바로 잡아야 한다.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도구적으로 쓰고, 창작에 대한 예술가들의 직업윤리를 재능기부 쯤으로 치부해 버리는 오류를 그동안 너무 많이 봐 왔다.
 

 몇 해 전 타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레지던시 공간을 방문한 적이 있다. 원도심에 레지던시 공간을 만들어 예술가들을 입주 시키고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곳이다.
몇 년간 그 공간을 거쳐 간 예술가들이 남기고 간 작품이며, 예술가들의 흔적은 그 공간을 훌륭한 미술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가꾸어 주었다.

 하지만 예술가들에게 제공된 거주(작업) 공간은 극빈자의 쪽방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곳이었다. 난방도 되지 않아 한 겨울에 예술가들이 자그마한 석유난로 하나에 의지하며 손을 불어가며 작업하거나 추운 날에는 아예 고향으로 돌아가 나타나지 않는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지역 전체가 모두 철거되고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낙후된 도시를 문화예술의 새 옷을 입혀 되살리는 것은 더 없이 반가운 일이고 당부하고 싶은 일이다. 해외의 성공사례를 찾아보는 것도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들의 성공요인 중 가장 핵심요소는 제대로 된 예술정책과 더불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가들은 도시재생의 텃밭에 씨앗을 뿌릴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씨앗은 예술나무로 성장하여 도시와 마을에 산소를 공급하고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자정력을 키워 도시 생태계를 건강하게 할 수 있다. 그들에게 씨앗을 뿌리고 가꾸고 거둘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도시재생에 예술을 강조하는 정책들이 잠깐의 유행이 아니기를 바란다.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높은 예술성을 이룬 성공적인 도시재생이 되기를 바란다.
 

 높은 예술성은 높은 대중성이 될 수 있지만 높은 대중성은 결코 높은 예술성이 될 수 없다. '기승전-시민과 함께' 포퓰리즘이라고 비난 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예술성 강화에 방점을 찍어주기를 바란다. 그때 비로소 예술가들이 도시재생의 도구가 되지 않고 창의적 초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원영오 극단노뜰 대표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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