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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노예가 되느니 자유민으로 죽겠소"

기사승인 2022.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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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주와 항일의병운동 ④-영국인 메켄지가 만난 의병들

   
▲ 치악체육관 민긍호 의병장 기념상. 원주 진위대 소속 군인이었던 민긍호는 군대해산을 거부하는 진위대 소속 군인들과 원주 일대 민중들을 규합해서 정미의병을 일으켰다. 민긍호 의병부대는 원주, 제천, 충주, 여주, 횡성, 일대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치열한 전투를 벌이다 순국했다.

19세기 말 격동의 역사를 실감 있게 다룬 '미스터 션샤인'이란 드라마가 있었다. 드라마 후반부에서 영국인 기자 메켄지가 의병부대를 찾아가 인터뷰했던 사실을 실제 기록과 사진을 토대로 똑같이 재연했던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메켄지의 눈에 비친 1907년 서울의 모습은 무기력 그 자체였다. 대한제국 황제와 황실 사람들은 일본식 복식을 하고 있었고, 일본군은 서울 거리를 활보하고 대궐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일본군의 기세에 눌린 서울 백성들은 잔뜩 주눅 들어 생활했다. 반면 지방에서는 곳곳에서 의병 봉기 소식이 들려왔다. 러일전쟁 종군기자로 활동했던 메켄지는 의병들을 만나기 위해 이천, 충주, 제천, 원주, 양근 등 의병이 출현했던 지역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뒤늦게 찾아갔기 때문에 대부분 의병들이 사라진 후였다. 의병이 출현했던 마을은 일본군에 의해 초토화되었다. 경기도 이천에서 일본군은 출현한 의병을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마을을 불태워 폐허로 만들었다. 일본군에 쫓겨난 사람들은 마을로 다시 돌아와 거적으로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 살았다.

충주에서 제천에 이르는 마을 중 4/5 정도가 참혹하게 불타버렸다. 의병 활동과는 무관한 마을이라도 일본군의 약탈, 살육, 방화를 피할 수 없었다. 일본군이 휩쓸고 지나간 마을에서 의병부대로 자진해 들어가는 사람들이 점점 증가했다.

누더기 한복에 들고 있는 총 성한 것 없어
일본군에 이길 수 없다는 것 알면서도 담담

▲ 러일전쟁 종군기자로 활동한 영국인 기자 메켄지는 한국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1906년부터 1919년까지 대한제국 곳곳을 취재하고 자료를 수집해 ‘대한제국의 비극’과 ‘한국의 독립운동’을 저술했다. 경기도 양근에서 의병들을 인터뷰한 내용과 사진도 메켄지의 저술에 담겨 있다.

제천을 거쳐 원주로 향하면서 의병부대와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의병과 일본군이 지나갔다는 증언도 들었다. 실제 전투가 벌어질지도 모르는 위험한 곳이기 때문에 짐꾼들이 더 이상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일이 잦아졌다. 원주 백성들을 통해 20마일 쯤 가면 의병을 만날 수 있을 거란 말을 들었다. 경기도 양근이었다.

양근에 도착해 숙소를 정하고 저녁을 짓고 있는데 의병들이 나타났다. 누더기 한복을 입고 있는 사람, 군복을 입고 있는 사람, 한복에 군복 바지를 입고 있는 사람 등이 있었다. 들고 있는 총은 제각기 다른 종류로 어느 것 하나 성한 것이 없었다. 인터뷰에 응한 의병들은 별다른 조직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부대들은 허술한 유대 관계를 맺고 있었고, 각지의 부호들이 은밀하게 모아준 자금을 가지고 활동한다고 했다.

의병들은 무기를 구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종군기자는 어느 편도 들 수 없다며 요구를 거절했다. 형편없는 무기로 일본군에 대항해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은 의병들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병들은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어차피 죽게 되겠지요, 그러나 좋습니다. 일본의 노예가 되어 사느니보다 자유민으로 죽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메켄지가 의병을 만난 양근은 원주에서 가깝다. 메켄지 사진에 등장하는 의병 중 군복 차림이 있는데 해산 군인으로 추정된다. 1907년 원주 진위대가 군대 해산을 거부하며 의병운동에 뛰어들었던 점으로 미루어 원주에서 봉기한 의병부대였을 가능성이 높다.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 사진 설명에는 메켄지가 의병을 만난 지역을 강원도로 소개하고 있다.

이기원 북원여고 역사교사 wonjutoday@hanmail.net

<저작권자 © 원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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