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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시론: 원주문화를 말하다

기사승인 2022.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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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어떤 공간을 새로 꾸몄다. 그곳의 과거를 그려보자. 상당히 복잡한 곳이었다. 좁은 2차선 주변에 상가들이 줄지어 있다. 버스도 다니고 청소년도 북적이는 거리였다. 차선이 좁다 보니 버스가 멈추면 뒤따르던 차들도 다 멈춰서야 하는 곳이다.

 나름 큰 건물 로비는 대리석이 깔려 있어 청소년들이 모여 브레이크 댄스를 추기도 한다. 주변에는 큰 재래시장이 두서너 개가 있어 시민들도 장을 보러 나오는 곳이다. 시장건물 앞 시계탑은 이 도시 사람들 누구나 했었던 약속장소이다. 5일에 한 번씩 열리는 장날에는 모여든 외지 장꾼들과 시장 구경을 나온 사람들로 거리는 더욱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 복잡한 공간을 쾌적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복잡하게 뒤엉켜 있는 차량과 그 사이를 위험하게 다니던 사람들을 위해 아예 차선을 없애 버렸다. 대신 인접한 거리는 일방통행을 시행하여 차량정체를 해소하였다. 이왕 만드는 김에 거리에서 문화공연도 할 수 있게 야외무대도 만들었고, 걷다가 쉴 수 있게 벤치도 설치했다. 화단도 만들어 나무도 심고 꽃도 심었다.

 거리 바닥은 화강암 돌을 깔아 깔끔한 느낌이 들도록 만들었다. 청소년들이 모이던 건물의 로비 공간을 없애고 전시공간을 확충하였다. 드디어 차 없는 문화의 거리가 만들어진 거였다.

 그런데 장사가 잘 될 거라고 잔뜩 꿈에 부풀었던 상인들은 울상이 되었다. 손님이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공교롭게도 세상은 온라인 쇼핑을 하는 시대로 급속히 접어들었다. 도시의 다른 공간에는 대형 쇼핑몰도 들어섰다. 도심에 모여 있던 관공서도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자연스레 은행도 지점 철수를 하거나 규모를 줄였다. 은행에 들렀다가 시장도 보고 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오지 않는다. 

 공간조성을 하드웨어라고 보면 소프트웨어는 문화활동일 것이다. 지역의 문화예술 수준 운운하는 얘기는 질 낮은 논의다. 의미 없다. 문화예술가들에게 수준이라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예술가는 창작자이며 창조자이기에 나름의 세계관을 갖고 창작에 몰두할 뿐이다. 그 창작은 이 지구에서 유일한 것이기에 그 어떤 창작도 유의미한 작업이다. 예술가의 소프트웨어가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 

 문제는 이 창작이라는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와 어떻게 만나는가에 있다. 문화의 거리에는 하드웨어가 아직도 부족하다. 덩그러니 만들어져 있는 야외무대도 그렇고 버스킹을 하라고 만들어진 박건호노래비가 있는 공간도 이상하기 짝이 없다. 작가들의 전시공간도 외부와는 차단된 벽으로 둘러싸인 실내공간이라 전시가 열린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거리에 작가들이 나와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하고 노래공연을 하고 문화체험 행사도 하지만 그게 끝이다. 야외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이 편하게 다리를 뻗고 앉을 잔디밭 하나 없고 기대고 설 객석도 없다. 뜨거운 태양을 가릴 수 있는 그늘막도 없어 버스킹 연주자는 땡볕에 얼굴을 태우고 있다. 상대적으로 높은 임대료로 작가들이 쉽게 입주할 수도 없다. 700미터에 이르는 거리에 녹색공간은 한 군데도 없다. 쓰레기가 쌓여있는 화단은 폐기해야 한다. 

 처음 얘기로 돌아가 청소년들이 모였던 곳을 살펴보자. 지금의 중앙청소년문화의집 건물이다. 건물의 절반 정도를 차지했던 입구는 서너 계단을 올라가면 대리석 바닥이 깔린 로비가 있었다. 그늘이 있었고 계단에서 쉴 수도 있었다. 그 로비를 지나면 왼쪽으로는 작지만 아담한 전시실이 있어 공간을 찾았던 청소년들, 그늘을 찾았던 시민들이 쉽게 드나들어 구경하는 곳이다. 노래하는 친구들도 곧잘 있었다. 당연히 북적였고 가장 핫한 곳이었다. 소프트웨어로는 만들지 못하는 공간의 힘이다. 

 문화의 거리는 아직도 원주시가 힘을 더 쏟아야 하는 하드웨어가 필요한 공간이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면 현재 상황을 이겨낼 수 있게 하드웨어 조성에 힘을 더 쏟아야 한다. 원주시가 앞장서서 필요하다면 대기업이 운영하는 휴식공간이라도 유치하고, 문화거점 공간을 더 만들고 작가 입주공간, 창작공간 조성을 더 해야 한다. 내리꽂히는 햇빛을 피할 그늘도 만들고, 화강암 바닥돌 하나를 캐내어 작은 나무라도 심어야 할 곳이다.

이상훈 중앙동도시재생주민협의체 운영위원장 wonjutod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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