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원창묵의 삶과 인생

기사승인 2010.06.07  

공유
default_news_ad1

- 친구들 권유로 정치입문…출근버스에서 아내 만나

   
 
  원창묵 당선자의 원주중 졸업식 사진  
 

아버지 원대식 옹과 어머니 정양근 여사와의 사이에서 1남3녀 중 외아들로 봉산동에서 태어났다.

위로 누나 둘이 있고, 여동생 한명이 있다. 외아들이다보니 당시 지정면 안창리에 살던 조부모는 원 당선자를 무릎 위에서 내려놓지 않을 정도로 예뻐했다고 한다.

몸에 좋다는 속설이 있던 개구리와 메뚜기를 직접 잡아 구워먹였을 뿐만 아니라 막걸리도 먹였다. 애주가로 소문이 자자한 원 당선자는 주당의 역사가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말한다.

지금껏 부모는 문막에 살고 있으며, 모친은 이번 선거운동 기간 중 자택에서 갑자기 쓰러져 현재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명륜초교에 입학할 당시 부모는 문막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누나와 함께 개운동에서 자취생활을 하며 원주중, 원주고를 졸업했다. 학창시절에는 공부도 잘 했지만 만화 그리기에도 능했다.

친구들에게 만화를 그려주고 학용품을 받을 정도였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미대 지원을 심각하게 고민한 것도 만화 그리기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미대 대신 중앙대 건축과를 선택한 것은 졸업 후 진로를 고려한 이유가 가장 컸지만 건축물 설계도 일종의 예술작품이라는 소신도 있었다.

대학 졸업 후 서울에 있던 건축사사무소에 취직해 직장생활을 시작했으며, 회사를 오가는 출퇴근 버스에서 운명같은 아내 김문숙 여사를 만나 뜨거운 연애 끝에 결혼했다. 건축사사무소에 다니면서 건축사 시험에 응시, 합격하자마자 고향인 원주로 귀향해 건축사무소 '예원'을 개원했다. 서울에서 좀더 경력을 쌓아 그곳에서 개원할 수도 있었지만 고향에 부모가 있고, 무엇보다 그토록 갈망하던 건축사의 꿈을 고향에서 펼쳐보이고 싶었다.

고향에 내려온 지 1년 후인 1995년은 마침 지방선거가 있던 해였다. 그는 친구들의 권유로 시의원 출마를 결심했고, 첫 도전에서 당당히 당선되며 정치인의 길로 들어섰다. 1998년 선거에서 재선되며 더 큰 꿈을 꾸게 됐으며, 드디어 2002년 시장선거에 도전했다.

그러나 2002년에 이어 2006년 도전에서도 낙선의 아픔을 맛봤다. 이번 선거에 나서며 '8년을 준비한 후보'라고 외친 캐치프레이지는 낙선의 아픔이 지금으로 봐서는 오히려 민심을 제대로 헤아릴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자녀는 1남1녀로 딸 상아 양과 아들 치성 군이 있다. 

이상용 기자 sylee@wonjutoday.co.kr

이상용 기자 sylee@wonjutoday.co.kr

<저작권자 © 원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