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이희춘 상지대 명예교수

기사승인 2018.10.15  

공유
default_news_ad1

- 7년간 유럽대륙 8천400㎞ 도보 횡단…1만㎞ 도전 진행형

내가 걷는 이유? "남과 다른 DNA 때문"

'산티아고 순례길(El Camino de Santiago)'은 전세계 걷기 애호가들이 가장 동경하는 걷기코스 중 하나다. 예수의 제자였던 성 야고보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걸었던 길로, 스페인 북부를 가로질러 북서쪽 끝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의 대성당으로 이어지는 중세적 순례길이다.

종교적 이유에서 시작됐지만 1천년 남짓한 세월 동안 세계인들의 '인생순례길'이 됐다. 프랑스의 국경도시 '생 장 피에 드 포르(St pied de port)'에서 시작되는 이 여정은 무려 800여㎞에 달한다. 이 길을 완보하기 위해서는 하루 수십㎞씩 산맥을 넘고 마을을 지나 평원을 걷는 노정을 한 달 넘게 이어가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버킷리스트이자 평생 한 번 경험하기조차 어려운 여정이지만 이런 길을 수차례 두 발로 걷고 있는 인물이 있다. 스스로 "남과는 다른 DNA를 가진 것 같다"고 소개하는 이희춘(66) 상지대 명예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이 교수는 2012년부터 올해까지 7년 동안 무려 유럽대륙 8천400㎞를 두 발로 걸었다.

첫 시작은 산티아고 순례길이었다. 안식년이었던 2012년 프랑스 르퓌(Le puy en velay)를 출발해 스페인 산티아고(Santiago)까지 1천520㎞를 걷고, 또 다시 스페인 이룬(Irun)에서 산티아고까지 880㎞를 걷는 등 3개월 동안 2천300여㎞를 걷는 대장정을 마쳤다.

▲ 2012년 산티아고 순례길 도전 당시 목적지인 산티아고까지 거리가 1천153km임을 알리는 이정표 앞에 선 이희춘 교수.

이듬해인 2013년에는 방학을 이용해 헝가리 부다페스트(Budapest)에서 프랑스 르퓌까지 1천850㎞를 걷고, 또 다시 스페인 이룬(Irun)에서 피레네산맥을 넘어 프랑스 '생 장 피에 드 포르(St pied de port)'까지 85㎞를 완보했다.

가족의 만류로 잠시 중단됐던 그의 도전은 2016년 다시 재개됐다. 대서양 연안 프랑스 앙다에(Hendaye)에서 지중해와 접한 바니올스(Banyuls)까지 820㎞, 피레네산맥을 따라 이어지는 '베질레이(Vezelay)길' 일부구간 500㎞, '루르드(Lourdes) 순례길'로 불리는 프랑스 루퓌에서 아레스(Ales)까지 275㎞를 정복했다. 

지난해에는 만류만 하던 아내도 동행했다. 스페인 북부 페롤(Ferrol)에서 산티아고까지 120㎞에 이르는 일명 '영국인 순례길'과 프랑스 생 장 피에 드 포르에서 산티아고로 이어지는 '프랑스 길' 일부 380㎞를 걷고 돌아왔다. 올해 들어서는 지난 6월부터 8월 사이 60여일에 걸쳐 영국 캔터버리(Canterbury)부터 이탈리아 로마(바티칸 시국)까지 1천900㎞를 걸었다.

▲ 지난 6월부터 8월까지 60여일에 걸쳐 영국 캔터버리(Canterbury)부터 이탈리아 로마(바티칸 시국)까지 1천900㎞를 걸은 뒤 콜로세움 앞에 선 이희춘 교수.

2년에 걸쳐 나눠 걸었지만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프랑스 르퓌를 거쳐 산티아고까지 걸은 최초의 한국인이라는 자부심도 함께 얻었다. 르퓌에서 산티아고까지, 또는  이룬에서 산티아고까지 걷는 순례자나 걷기 동호인은 많지만 부다페스트에서 산티아고까지 걸은 기록은 당시 국내에서 이 교수 외에는 전해진 바 없다. 무엇보다 이 같은 여정이 10여년 전 교통사고로 한 쪽 무릎이 성치 않은 상황에서 이뤄낸 결과이기에 더욱 놀랍다.

이 교수의 걷기사랑은 대학 1년 때인 1970년 여름방학부터 시작됐다. 고향인 원주에서 강릉까지 무작정 도보여행에 나섰다. '이승복 사건'이 발생한 다음해였다. 밤길을 걷는 외지인의 모습에 마을주민들의 신고가 이어졌다. 주민과 예비군 신고로 두 번이나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기도 했다. 20년 전 본격적으로 걷기운동에 입문한 뒤에는 원주부터 해남까지 국토를 종주하는 등 누구보다 앞서 길을 찾아 나섰다.

건강을 위해 무엇인가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선택한 것이 걷기였지만 지금은 스스로 걷기 전도사를 자처할 만큼 그 매력에 푹 빠져있다. 그의 권유로 함께 걷기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제자, 후배, 동료들만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 걷기동호회 '치악주행' 회장을 맡아 다양한 걷기코스를 개발하는 일에도 앞장섰다.

이 교수의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기에 더욱 돋보인다.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성치 않은 무릎이 호전되면 1천600㎞를 더 걸어 1만㎞를 채우는 것이 당장의 목표다. 내년쯤 이탈리아 베르첼리에서 알프스산맥을 넘어 스페인 푸엔테 라 레이나(Punta la reina)까지 걸어볼 참이다. 국내에서는 아직 걸어보지 못한 DMZ와 서해안 길도 늘 염두에 두고 있는 코스다.  

"현재 초등학교 4학년인 외손녀가 대학생이 되면 함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로 약속했다"고 밝힌 이 교수는 "그 때까지 스스로 잘 준비하고 관리해 반드시 약속을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김민호 기자 hana016@hanmail.net

<저작권자 © 원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